미쳐가는 중이 아닙니다

[우울증 환자 생존기] 조울증약과 내면가족상담

by 마담 J

'선생님. 저는 미쳐가는 중인가요? 조울증이라뇨. 그런데 제가 생각해도 조울 같아요. 어제까지 아무 맥락없이 울어제끼다가, 오늘은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산책도 하고, 이렇게 웃고 다니다뇨. 이런 저를 보는 것이 무서워요. 진짜 미쳐가는 것 같아요.'


양극성장애 2형으로 의심되어 약을 받았다. 우울증과 양극성장애는 잘 구분되지 않아서 우울증 약이 잘 안 들어서 양극성장애 약을 먹고 낫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봤다. 몇 달 전 재투약을 시작했을 때 혹시 양극성장애는 아닐까 물어봤을 때는 양상이 좀 다르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정할 만한 사건이 없음에도 전원이 나가버리듯이 울증으로 훅 떨어졌기 때문에 양극성장애가 의심된다고 했다. 약을 먹고 난 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이해할 것 같은데, 울증이 좋아지면 내가 혹시 조울로 가고 있는 거 아닌가 또 걱정이 된다. 기분이 좋아져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순간이 왔다.


양극성장애 2형은 조증이 심각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냥 남들 좋은 수준. 일상을 보내는 것보다 조금 좋은 정도. 막 예수님이 되거나, 막무가내 사업을 저지르거나, 쇼핑을 미친듯이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기분이 좋은 거다. (이게 뭔말인가 싶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알 수 있다.) 다만 울증이 기존의 울증과 다르게 훅 떨어져서 나타난다. 바닥을 치는 거다. 우울증과 양극성장애 2형의 구분은 그만큼 어렵고 조심스럽다. 어쨌든 나는 이제 양극성장애 2형 환자다. 환장할 노릇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상하다. 정말 미쳐가고 있는건가 생각이 든다. 숨도 못 쉬어서 운전도 못하고 내리 온 몸에 멍이 들듯이 울어제끼고, 맥락없이 눈물바람을 하다가, 막 쇼핑을 하고, 갑자기 배가 고프고, 웃고 떠든다. 그냥 객관적으로 봤을 때, 미친사람이다.



휴직서에 낼 진단서를 받고, 상담을 갔다. 긴급상담을 받았다. 미국에서 최근에 많이 회자되는 내면가족상담이라고 했다. 내면아이랑은 다르다. 모든 사람은 80~1,000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다중인격이라는 것인가?' 생각했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마음의 다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속에 많은 마음이 있는데, 그 중에 억눌리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 '이제 제발 그만하자'는 마음이 모든 마음의 전원을 꺼버린 것이다. 그 아이를 옆에서 도와주는 아이들이 인내와 끈기다.


나는 인간관계도, 일도 끝까지 파는 성격이다. 끝이 보이는 걸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그게 비록, 어쩌면 실패일지라도 끝까지 인내하고 버텨서 몸과 마음이 망가지더라도 끝이 나야 진짜 끝낼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그랬다. 그러고도 나는 스스로에게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라는 명찰을 붙이고는 했다. 그게 인내와 끈기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망가지더라도 끝을 보아야만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은 안 변한다. 그 끝을 못 봐서 여기까지 왔다. 10년 넘게, 아니 업계로 치자면 20년을 그렇게 버텼다. 그러니 병이 날 수 밖에. 선생님은 그 마음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귀를 기울이고, 좀 편히 쉬게 하고 또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나누라고 했다. 미친게 아니라고, 미쳐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미친게 아니다. 미쳐가고 있는 게 아니다.


상담 주기를 늘리기로 했다. 내 마음 속의 마음들을 더 많이 찾아보기 위해서. 내면 아이나 다른 치료법보다 이 치료가 더 즉각적으로 이해되었다. 그래. 그만 하자. 좀 더 편안하게, 고통스러울 때에게 통각으로 인해 자각하는 것을 반복하는 걸 바꿔보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미친 사람이 아니다. 나를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내 마음들을 돌보자.


그 이후로 나는 꿈일기, 감사일기, 칭찬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나는 꿈을 칼라와 4D로 꾼다. 겨울 벌판에 서서 흩날리는 눈가루의 차가운 촉감까지 느끼는 식이다. 좀 특이한 케이스라고 했다. 그래서 꿈일기를 한번 써보자고 했다. 예전에도 한번 써보자 했는데 못했었다. 사람이 절박하니, 꿈에서 깨면 잊지 않기 위해서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고 다시 잠들기도 한다.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꾸고, 그렇게 깼다가 잠들면 꿈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내면의 무의식들을 더 잘 찾아볼 수 있기를 원한다.


감사일기와 칭찬일기는 쓰고 명상이라도 해야하나 싶게 뭐 큰 동요는 없다. 너무 빨리 써진달까. 하나 더해서 그날 그날의 반성도 함께 한다. 한 두가지씩. 고쳐야 할 것들에 관해서. 오늘도 아침에 4시에 일어나서 썼다. 그리고 2시간 가까이 청소를 했다. 예전에 아빠가 매일 아침 청소를 하고, 현관을 걸레로 닦았는데, 아빠는 그게 수련이고 기도라고 했다. 나도 아빠처럼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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