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했다

[우울증 환자 생존기]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by 마담 J

결국 휴직을 했다. 주말을 어떻게든 잘 보내고 월요일 아침, 신랑이 출근하고 터져버렸다. 병원으로 달려갔고 휴직을 권유받았다. 휴직을 하면서 병명을 알리느니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아예 움직일 수가 없어서 급하게 휴직을 했다. 일단 짧게 했다. 긴급 상담 대기중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우울증은 아주 오래 되었고, 공황증이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공황증을 앓고 있었다. 내 우울감이 병이라고 생각한 건 이십년도 더 된 일. 돌이켜 보면 일만 하면 병이 도진다. 부잣집 맏며느리 사주라더니 그런가. (부잣집 맏며리들이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는데.. >.<) 일만 하면 이렇게 힘들어지니.


십대시절부터 기획자 일을 하고 싶었고, 그 일을 하고 있고, 나름 성과도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판을 떠날 때가 된걸까. 이렇게 준비 없이 떠나도 되는 걸까.


당장 죽을 것 같으니 경제적인 걱정이니, 뭐니 하는 건 생각도 안 났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거나 뭐를 잘 하고 싶다거나 그런 건 생각도 안 났다. 그냥 당장 죽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났고, 그래도 죽으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판단인지 병원으로 달려갔다. 운전을 어떻게 해서 갔는지도 모르겠다. 병원 대기실에서도 계속 울고, 선생님 보자마자 오열을 했다. 약 받아온지 일주일도 안 되서 나타나자마자 오열을 하는 나를 선생님이 챙겨줬다. 뜻없이,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죽고 싶고 눈물이 터졌다고. 주말동안 막고 있던 눈물이 신랑이 출근하고 나자 터져버렸다고. 통원을 한지 3년이 넘어가는 병원이다. 일단 회사를 쉬라고 했고, 나는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일단 약을 바꾸고, 추가 수면제를 더 받았다. 필요시 약을 하루 2-3번 먹어도 되니까, 공황 때만 먹는게 아니라 죽고 싶거나 자해를 하고 싶거나 분노가 일어도 먹어도 된다고 했다. 수납해주는 분도 내가 계속 우니까 그저 말없이 눈으로 위로를 해줬다. 차에서 더 오열을 하고, 몇 일째 망설이던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그 전부터 우울증이 있었다고 해도, 어쨌든 발병을 한 건 이 회사가 맞으니 이젠 정말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작은 언니에게 전화했다. 역시 회사를 그만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도 나의 건강이 먼저니 회사를 그만둬도 된다고 했다. 오열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바꾼 아침약과 필요시 약을 한번 더 먹고 사무실에 갔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걷기가 힘들었지만 괜찮은 척 일처리를 하고, 오후에 부장님이 시간을 내 주셔서 부장님과 이야기를 했다.


부장님이 지난 몇 년간 나를 엄청 보호해주셨다. 부장님 덕분에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 부장님이 말했다. 나처럼 아픈 사람 많다고. 사람들 생각보다 관심 없으니, 당장 그만두지 말고. 단축근무도 해보고, 휴직도 해보고, 보직도 바꿔보는 등 많은 제안을 해 주셨다. 프로젝트 마치고 할 수 있으면 제일 좋지만, 몸이 먼저라면서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둬도 된다고 해주셨다.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황이 왔다. 당분간 운전은 못 할 것 같다. 주차장에 거의 쓰러져 있는 나를 신랑이 발견하고 데려왔다. 약 먹고 한 시간 즈음 지나니까 숨이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약을 먹고 쓰러져서 잤다.


다음 날,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걸 했다. 휴직을 했다. 전날 너무 울어서인지 몸이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무것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음에도 예민해져서 아무 것도 틀어놓지도 못했다. 언니랑 엄마가 잠깐 들렸다 가서(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억지로 일어나서 조금 움직이고 다시 쓰러졌다. 일을 마무리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래도 약 때문에 흐릿하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회사 관련 꿈을 꿨다.


오늘, 그래도 밥도 먹고 TV도 봤다. 또 왈칵 맥락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이제 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안정도 되는 것 같아서 글도 쓰고 있다. 우울증 치료와 완치에 대한 유투브를 엄청 찾아본다. 제때 치료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재발률이 엄청 높은 질병이다. 두렵다.


선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 있다고, 감당할 수 없는 걸 감당하려고 해서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몸, 감정,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질문해본다. 도대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 나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만 하며 살아온 것인지. 내 인생을 통채로 흔들어야 하는 것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있기는 한지. 겁이 나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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