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종교를 갖는다는 것에 대하여
딱히 종교가 없다. 성당에도 가고 절에도 가고 교회도 간다. 교회는 어릴 때 집앞에 있어서 친구랑 놀러 가고 크고 나서는 주로 결혼식 때문에 갔다. 절에는 관광차 들렸다가 108배를 하고 오기도 하고, 성당에는 몇 년에 한번씩 혼자 가서 훌쩍거리고 오기도 한다. 특히 성당은 울기 좋은 곳이다. 낯선 곳에서 혼자 고요히 앉아서 훌쩍거리기 좋아서 종종 간다.
카톨릭은 외가집의 배냇종교다. 어릴 때 자주 가기도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정갈하게 빚어지고 근엄한 성당이 좋았다. 당연히 성당신자들이 주변에 많다. 그리고 남편도 어릴 적 세례를 받은 냉담자(성당에 주기적으로 가지 않는 세례자)이다. 내 병이 깊어지자 남편이 성당을 같이 가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 동안은 내가 가보자고 해서 지난 7년동안 한번 갔었다. 이번에 남편이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연속 네번 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기도문을 몰라 제대로 참여할 수 없지만 예전부터 내가 좋아하던 부분이 있다. 고백기도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절절함이 묻어난다. 우울증 환자는 대체로 자책을 많이 한다. 모든 것이 내 탓 같다. 그래서 어쩌면 이 기도문은 병을 악화시키는 것인가. 싶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제 탓이요'를 외치는 경험은 색다르다. 모두가 병이 있듯이 모두가 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빈다.
성당 성경 말씀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일상의 상식으로는 '뭔 소린가?' 싶은 게 하루에 하나씩 있다. (말씀이 하루에 하나다. ㅡㅡ;;) 알고 싶어졌다. 어떻게 그런 사고가 가능한지. 얼마 전에도 교리 공부를 생각했던 적이 있다. 6개월을 매주 빠지지 않고 나가야 한다.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남편과 함께 한달을 미사에 나가보니 성경말씀을 알고 싶었다.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기내어 교리 공부를 신청했다. 오늘 입교식을 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축하한다"고 인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축하한다"라..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거라고 했다. 이제와는 다른 삶을 열어보게 될 거라고 했다. 카톨릭의 장점은 나의 독립적인 종교생활을 보장한다는데 있는 것 같다. 큰 언니도 신부님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나의 단독 대담'이라고 했다. 신부님이야 인간이다 보니 다 다를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신부님을 합치면 그것이 하느님의 모습이라는 말이 있다'며.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입교식의 수념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당은 친절하지 않다. 그냥 혼자서 독립적으로 잘 하면 된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붙임성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성당은 자립하는 종교다.'라고 말씀하셨다. 개인주의자에게 이보다 안심되는 것은 없다.
앞으로 6개월. 그 후 세례를 받게 된다. 6개월의 과정과 그 이후의 과정이 기대된다. 6개월이 아니라 하루하루 출석하다보면 어느새 6개월이 되어있다고. 하루하루에 충실하면 된단다. 이것도 마음에 들었다.
아. 요즘 나는 최근에 조증 약을 한번 바꾸고 나서 좀 안정되었다. 그 전에는 하루 종일 뭔가를 먹고, 입에 달고 살았다. 약의 부작용일 수 있고, (열흘만에 7키로가 쪘다. 2키로 밖에 안 빠졌다. ㅠㅠ) 조증 증상이 아직 잘 안 잡혀서 일수 있다고 했다. 성당에서 가만히 50분을 앉아있는 것이 쉽지 않아 필요시 약을 먹기도 하지만, 하루 동안 롤러코스터를 쉴 새 없이 타던 감정기복이 많이 진정되었다. 참. 추석 끝나고 복직해서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병원에서는 책임감이 너무 강하다며 휴직을 다시 한 번 권고했지만, 사정이 그렇지가 않아서복직하게 되었다. 올해 안에 휴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게 될 듯 하다.
어쨌든 중년이 되어서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성당에 다니면서 신랑과 나눌 이야기가 하나 더 생겨서 참 좋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어서 좋고, 어쩌면 앞으로는 기댈 수 있는 존재가 하나 더 생겨서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우울과 조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 가지를 더 하게 되었고, 한 가지를 더 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