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투약의 초입에서
오늘도 안정제를 먹었다.
몇 일 째인지 모르겠다.
마음이 불안하다.
할일이 없어서 불안하고 할일이 있어서 불안하다.
뭐라도 써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쓴다.
이제 글 쓰기 능력이 내게 남아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내게 남아있는 건 무엇일까.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복권이라도 되면 좋겠는데.
되긴 됐다. 이천원. 이십억이 되면 더 좋을 텐데.
평생 현역이라고 생각하고 일 하라는데 나는 ...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 능력도 없는 것 같아.
의지도 없고. 뭘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이렇게 평생 살다가 가는 걸까.
하고 싶은게 없다는게 가장 큰 무기력인것 같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꼭 일일 필요는 없는데.
삶의 의지가 없다는게 이렇게 허무한 일인가.
왜 사는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던 치열하던 나의 시절은 다 어디로 간걸까.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는 글을 읽었다. 우울증을 앓는 임상심리학자의 글에서. 당신은 살아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그런가. 나는 살아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사람에게는 기운이라는 것이 있는데 요즘 나에게는 활력이라는 것이 없다. 생동감이 없다고 할까. 사람들이 다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떻게 하면 활력이 생길까. 젊은 시절로 돌아갈수는 없는데. 젊지 않다는 사실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을까.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치열했던 순간들이 그립다. 치열했던 순간들은 그만큼 힘들었던 순간들인데 왜 그럴까.
죽을 것 같지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충만했기 때문이었을까. 죽고 싶었지만 살고 싶었기 때문일까. 지금은 이렇게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일도 재미가 없고. 무엇에도 집중하기가 어렵고. 무엇보다 뭘 하고 싶은게 없다. 무엇에도 감정이 동요하지도 않고. 항우울제 덕분인가. 역시 뜨거운물을 잠그면 찬물도 잠기는 건 약물도 마찬가지인 것인가. 약물 치료를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줄 알았다. 단번에는 아니라도 다시 삶이 생기로 그득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삶에 생기가 없다. 퍽퍽하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하는데 뭘 하기는 너무 힘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