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싫은 사람은 싫은 대로 살게 두자
회사에 갔다. 본부장님이 연말이라고 부서마다 돌면서 점심을 사주시는데 나까지 생각해서 고기 말고 다른 메뉴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추천까지 하셔서 일부러 출근했다. 부장님도, 직원들도 반가워해주고 배부르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 다시 본부장님이 오셔서 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본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뜨는 이름을 보니 본부장님은 친하지만, 나랑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다. 아직도 본부장님에게 살랑거리고 있구나 싶었다. 결과보고서도 하나 마치고 무사히 퇴근해서 저녁시간도 잘 보냈다. 어제의 피곤이 오늘 계속 몰리는 것 같아서 스트레칭 요가를 했는데, 유투브 선생님이 그 싫은 직원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길지 않은 요가를 마쳤는데도 계속 그 싫은 사람이 떠올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그 사람을 마주친 것도 아니고 이름과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이렇게 잔상이 계속 남는다고? 싶다. 정말 싫기는 엄청 싫은가보다.
하지만 내게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본부장님도, 부장님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는 남편도. 사랑이까지. 이 좋은 사람들을 놔두고 왜 나는 싫은 사람을 생각하며 싫은 감정을 더 키우고 있나 한심해졌다. 좋은 사람만 생각하며, 좋은 사람과만 함께하며 살기도 벅찬 시간이다.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만 생각하며 살기도 모자라다.
싫은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다. 나와 너무 달라서, 내 상식선에 들어오지 않아서 싫은 거니까. 좋아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안 변한다. 나도 안 변하고, 그 사람도 안 변한다. 그냥 각자의 인생을 살면 되는 거다. 싫은 사람은 내가 싫은 짓을 계속 할 거다. 그렇게 살다가 죽으라고 내버려두면 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면 된다.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을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지, 나를 괴롭히고 음해하고 못살게 구는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함께 살아갈, 살아가야할 사람들은 나와 사랑과 우정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며 살자. 내가 아끼고 챙겨야 할 사람들에게 집중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주고 받으면서 건강하게 살자. 몸도, 마음도.
세상 제일 고통스러운 지옥이 싫은 사람들과 붙어있는 거라고 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나는 사람들에게 정을 잘 안 주었던 것 같다. 모두와 잘 지내는 것 같지만, 모두와 거리를 두며 지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사람이 한 두명 뿐이다. 학교에서는 그런 것이 문제가 없었는데, 회사 생활에서는 문제가 되었다. 이 회사는 서로를 언니, 동생, 형님, 동생이라고 부르며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들어와서는 거리두기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겉돌 수 밖에 없었다. 10년이 지나니 젊은이들이 들어오고 분위기가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내 또래의 사람들은 여전해서 나는 여전히 겉돌고 있다. 그래서 병이 온 것이기도 하다. 어디 하나 정 붙일 곳도 없고, 일은 하고 싶고 잘 하고 싶고 잘 하고 있는데, 인간관계가 안 풀리니까. 안 풀린다는 말도 이상하다. 애초에 얽히고 설킨 실타래에 나는 껴들고 싶지 않고, 그들은 왜 같이 뭉치지 않냐고, 외계인 취급하니까. 일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 사귀는게 우선인 회사에서 하는 계속 헤맸던 것 같다. 나는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우선순위는 중요하다. 우선순위가 다르면 모든 관계가 꼬인다. 꼬인 관계를 푸는 가장 빠르고 깔끔한 방법은 끊어버리는 거다. 굳이 하나가 되려고 할 필요가 없고, 풀려고 하면 더 꼬인다. 내가 좀 짧아지더라도 끊어내는 것이 제일 좋다. 어차피 섞이지 못할 거니까.
나이가 들고, 인간관계의 여러가지 상황을 겪다보니 나의 타인을 향한 잔정들이 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런 소소한 것들을 챙겨주는 내가 좋았던 것이고, 정말 타인이 좋아서 해줬던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엄마가 굉장히 사회적인 사람이라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 나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타인이 보는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많이 만나는 사람이지만, 내면의 나는 아주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며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마음을 여는 느린 사람이었다.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춰서 살다 보니 병이 난 것 같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 사람을 사귈 때는 더 조심해야겠다. 나를 돌보는 방법 중에 하나는 나의 인간관계를 내가 잘 돌보는 거다.
사랑과 우정을 주고 받는 관계에 더 집중하며 양보다 질로 잘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