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얼마만의 평온한 일상인가
모처럼 주말에 일정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책 빌리고, 보리밥 먹고, 사랑이 산책하고, TV 좀 보다가 같이 책 읽고, 저녁먹고, 밤 운동을 했다. 평온한 일상들이 계속된다. 중간에 회사도 나갔지만, 사랑이와 남편이 함께 있는 걸 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난 상담에서 남편과 약속한 이후인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난다. 일상 생활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생각이 사라졌다. 일상을 흐트러트리는 생각이 사라지고 나니 삶이 한결 평안해졌다.
여에스더는 뇌자극 치료를 받고 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니 살 것 같다"고 했다. 일상을 덮쳐오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덮쳐오는 때가 있다. 잘 지내고 있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면 정말 내가 미쳤나 싶은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세상이 살아갈만해지고 숨을 쉴 수 있다. 숨 쉬는 사이사이 그런 생각이 덮치지 않으니까 숨 쉴 구멍이 생기는 거다.
투약, 상담, 운동, 일기쓰기, 브런치 글쓰기, 병가, 책 읽기 중 무엇이 내 숨통을 텄는지 알 수 없다. 모두가 제 역할을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얼마만의 평온한 일상인가. 날마다 함께해주는 남편이 고맙고, 무엇이든 의논하고 나눌 수 있는 언니가 고맙고, 늘 위안을 주는 사랑이가 고맙고, 지칠 때도 있지만 계속하고 있는 내가 고마운 하루하루다.
불과 6개월, 3개월 전만해도 당장 죽을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끊임없이 조종하는 것처럼, 나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뜻 없이 죽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가 무망감(無望)이다. 아무런 기대나 희망이 없는 것이다. 당연히 삶의 이유도 없다. 지금은 아니다. 엄청 대단한 희망과 기대가 있는 건 아니다. 예견되는 경제적 손실도 있고, 예견되는 고됨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를 살아갈 모습을 그리고 있다.
뜻과 의미가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났으니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법륜 스님 말씀이 생각난다. 요즘은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고 있다.
오후에 짧은 하이킹을 했다. 오늘은 남편이 나보다 힘들어했다. 어쩌면 이 사람은 매일 운동하는 것보다 푹 쉬는 것이 더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에게 쉬는 시간을 더 만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이 하루에 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어떻게 남편을 도울 수 있을지, 끊으려고 했던 영양제를 더 구매해야할지 고민이다. 내가 먹는 걸 잘 못해줘서 그런가 싶고.
대림초 세번째 초를 켰다. 이제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올 한해가 가고 곧 우리의 8번째 결혼기념일이 온다. 세월이 참 빠르다. 좀 있으면 10년일테다. 꽤 긴 시간동안 내 옆을 묵묵히, 처음 그 다짐처럼 든든한 나무로, 바위로 살아준 남편에게 고맙다. 이런 나를 지켜주는 그를 나도 지켜주고 싶다.
오늘은 바람도 없고 봄날씨처럼 따뜻했다. 기후위기가 코앞이긴 한가보다. 날이 더워지면 우리 신랑은 힘든데. 날씨야 추워져라.
평온한 날이 계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