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권씩 짝꿍에게 추천해주고 읽기를 하고 있다. 내가 사 놓은 책이 많아서 그 중에서 신랑이 골라준 책을 읽고 있는데 사회학 책이라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좀 어렵다. 결혼하고 엑셀로 가계부를 쓰다가 2년 정도 안 썼더니 돈이 안 모여서, 올해는 손으로 쓰는 가계부를 도전하려고 온라인 서점에 들어갔다. 안 읽은 책이 그렇게 많은데, 책을 또 샀다.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
송길영 작가의 책이다. 데이터 분석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핵개인'이라는 말에 이끌려 샀는데, 이렇게 술술 읽힐 줄 몰랐다. 하루만에 다 읽었다. '시대예보'라는 말에 맞게 딱 지금을 잘 설명하고 있다. 나는 고령화 사회에 관심이 있는데, 꽤 많은 부분이 AI 시대의 고령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 사회로 젊은 세대의 의존에서 벗어나 평생을 홀로 잘 살아야 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 쇼펜하우어의 책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같은 듯 다른 의미에서 개인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60대의 자기 효능감'이다. 60대가 자기 효능감이 가장 높은 나이라고 한다. 경험한 것도 많고, 시간적/경제적 여유도 있고, 이제는 건강까지 있으니 자신감이 넘칠 때.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주변에 5060이 많은데, 그들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도 않고, 그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물론 외모는 이제 나이가 보이지만, 외모에 비해 생활인으로서의 빠릿함은 여느 청장년 못지 않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3-40년의 생이 더 남아있다. 김미경 강사가 유투브에서 요즘에는 자기 나이에서 17세를 빼야 '라이프 에이지'가 된다고 했다. 과거에 비해 신체적/사회적 나이가 그렇게 젊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직 서른 즈음이다. 한창 고민하고 일을 할 시기다.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인지 고민하고, 내가 60이 되어서도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요즈음 나에게 시사하는 것도 많다. 공공기관은 변화에 반응하는 속도가 느리다. 2010년대에 입사해서 내가 느낀 조직의 분위기는 1986년 아시안 게임 즈음같았다. 10년여가 지난 지금은? 조금은 달라졌지만 우리 조직에서는 뭔가 하나 변하려면 5~7년은 지나야 한다는 한 부장님의 말을 떠올려보면 그렇게 많이 바뀌진 않았을 거다. 그나마 최근 젊은 사원들이 계속 들어오면서 좀더 회사다워졌달까? 그 전에는 친목공동체에 더 가까운 분위기였다. 나는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빠르게 관심이 변하는 사람이라 회사에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그러다가 이제는 나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두려움도 생기고, 안정과 모험, 도전 사이에서 내적 갈등도 많았다. 송길영 작가는 도전하고 자신만의 내러티브/서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성공과 실패, 시도의 내러티브를 통해서 자기 전문성, 고유성을 가져야만 한다고 한다.
나만의 서사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 '예술의 힘을 믿는' 나의 신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기획자의 마음 등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해 온 일을 돌아봤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가보지 않은 길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나도 두렵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이길보라 감독 부모님의 말씀처럼 '괜찮아,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도전하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여본다.
전통적인 공동체에 의존할 수 없는 세상, 혈연에 의존할 수 없는 세상, AI와 협력해야 하는 세상, 전 지구적이면서도 지역적인 고유성을 지닌 아티스트가 되어야 하는 세상에 내가 던져졌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스스로 의연하기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 즐겁기 위해서 연결되어야 하는 사람. 그러기 위해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하는 상황. 내면을 응시하고 수시로 몸과 마음과 지식, 지혜, 언어를 현행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을 살고 있는 나란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