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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Jan 10. 2024

1 다음은 2

[우울증 환자 생존기] 운동이 좋아지는 이유

오늘은 눈이 계속 온다. 낮 일정이 없는 날이라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사랑이도 잠만 잔다. 그래도 20층 계단 오르기 운동을 했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아무렇게나 입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 어쨌든 집밖으로 나가는 운동이라 기분이 좋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나 할까? 집에만 있는게 아니라서 마음이 좋다. 총 5번 오르기 하는데 시작이 어렵지 시작하면 금방 3번 되고 3번 하면 금방 5번 되서 시간은 한 40분 걸리지만, 체감으로는 한 30분 정도? 꾸준히 하고 싶은 운동이다.  


몇 년전에 108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알았다. 1 다음에 10이 될 수 없다는 걸. 어쨌든 하나하나 겪지 않고는 108배에 이르지 못한다. 나는 살면서 1 다음에 10이 되길 바라며 조급하게 살아왔다는 걸 알았다. 그 때의 깨달음이 강렬했다. 운동이 그렇다. 1 다음에는 2다. 10번, 20번, 3세트, 5세트를 하려면 그 사이의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108배를 할 때 느꼈던 마음을 운동하면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운동이 좋아진다. 운동하면서 내 몸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도 좋고, 이런 마음도 놓치지 않을 수 있어서 좋고, 마치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도 좋다. 


스무 살에는 마흔이 되면 진짜 불혹이 될 줄 알았다.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절로 얻어질 것처럼 느껴져서 빨리 마흔이 되고 싶었다. 중간 과정이 이렇게 혼란하고 길 줄 몰랐다. 마흔을 후루룩 지나가고 늘 그렇듯이 나는 조금 마흔앓이를 하고 있다. 마흔 중반에 아직도 흔들리는 마음, 산란한 마음으로 사는 나를 보며, 그럼에도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한다. 만약 스무살부터 지난 20여년간의 한 계단, 한 계단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흔들리는 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은 못 했을 거다. 수 없이 무너지는 나를 다시 건져올리고, 쌓아올리는 과정이 없었다면, 만약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때 내가 나를 잘 돌볼 수 없었다면, 남편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는 것보다, 과정이 되는 그 수많은 순간들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1, 2, 3, 4, 5... 운동을 하고 생긴 습관인데 무슨 일을 하든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다. 원래 숫자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계단을 오르거나, 계란을 정리할 때나 숫자를 센다. 하나 하나 밟아가는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빨리 흐르고 있다. 1월도 벌써 1/3이 지났다. 이제 집에서 쉬는 것이 조금 적응이 될랑 말랑 한다. 적응이 다 되면 회사에 나가야 할 것 같다. 그 사이에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꼭 일이 아니더라도 이미 새로운 것들은 시작되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강아지 간식 만드는 것도, 훌라를 배우는 것도 생각만 하던 것들을 쉬면서 하게 되어서 좋다. 푸바오를 보고 온 것도. 사랑이랑 종일 있으면서 눈을 맞추는 것도. 


교리공부에서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이웃, 공동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 내가 있는 것 같다. 우울과 조증을 오가며, 약 기운에 졸고,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무기력한 나와 들뜬 나를 봐주며 휴가까지 허락해준 부장님, 들어가는 나에게 건강해져서 보자고 해주신 본부장님, 늘 나를 응원해주는 상담 선생님, 포기하지 않고 나를 받아주는 담당 의사 선생님, 나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이자 동료들, 나의 속 이야기까지 들어주는 언니, 그리고 모든 것을 다 함께 해주는 남편.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수많은 이웃들. 강아지 산책하며 따뜻한 말을 주고 받게 되는 이웃들, 인사를 나누는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 6층 할머니, 택배기사님, 나의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을 만들어주고 보내주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는 살고 있다. 


1 다음이 2 이듯이, 내 옆의 한 사람 옆에도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에 감사하다. 나를 아껴주시는 선생님이 생태피정을 권유하셔서 이번달에 남편과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 피정은 처음 가보는 건데,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오게 될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시는 몯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건너뛰지 않고, 하나 하나, 차근 차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가는 하루, 순간을 아쉬워하지 않고 충만하게 보낼 수 있도록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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