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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Jan 31. 2024

커피를 100개 샀습니다

[우울증 환자 생존기] 좋아하는 거에 올인

그이와 나는 커피를 잘 안 마신다. 그래서 결혼 선물로 커피머신을 준다고들 했을 때, 다 거절했다. 우리는 테라로사 30개 드립커피 박스를 사서 몇 달씩 먹었다. 1년에 2번 정도 사는 수준으로. 그런데 내가 쉬고 나서는 거의 매일 커피를 마셨다. 요즘은 하루에 2번 마시기도 한다. 커피가 맛있다. 과일차도 사고 홍차, 녹차도 샀는데, 커피가 제일 맛있다. 하루종일 커피를 마시고 싶다. 


30개 드립박스 산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커피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100개가 들어있는 대용량을 샀다. 맛있다. 얼마전에 강릉에 들렀다가 박이추 커피와 테라로사를 갔었다. 내 입맛에는 테라로사가 더 맛났다. 그이는 박이추가 산미가 덜해서 더 좋았다고 했다. 얼마 전에 언니집에서 캡슐커피를 마셨는데 그래도 결국 나는 테라로사가 제일 맛있었다. 플라스틱도 안 나오고. 


요즘은 집에 하루종일 있다. 사랑이 산책하는 것과 교리공부 가는 것 외에는 평일에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다. 전시도 보러가고 좋아하던 걸 찾아서 다시 해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기억하고 있지만, 역시나 귀차니즘으로 게으르게 보내고 있고, 이런 게으름이 요즘 나에겐 나쁘지 않다. 그래서 집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거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 100개를 사는 과감함을 보였다. 


벌써 1월 마지막 날이라, 2월부터는 다시 사랑이 케이크를 만들러 다녀야 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나의 휴가도 끝날 것이다. 빡빡한 일정이 벌써 마음에 부담이 되지만, 그래도 케이크 만드는 건 꼭 해보고 싶던 거고 예쁜 케이크가 나오면 또 즐거울 테니까 기대중이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건 커피랑 사랑이랑 그이. 고요한 하루에 이 3요소만이 나에게 소중하다. 햇살을 맞으며 새소리 들으며 사랑이가 이끄는대로 다니는 산책도 좋고, 이렇게 내가 지낼 수 있게 배려해주는 남편도 고맙다. 요즘들어 부쩍 그이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하루종일 사랑이랑만 있다가 그이가 오면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다.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주는 그이가 고맙다. 


꼭 뭔가를 해야만 (하면 좋지만) 좋은 건 아니다. 그냥 내가 마음이 가는 걸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지금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럽다. 이렇게 나를 여유롭게 받아들였던 것이 언제였나 싶다. 운동을 좀 게으르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곧 다시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있다. 뭐 어디 믿는 구석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그럴 것 같다. ^^;; 


휴가를 잘 보내고 있어서 좋다. 이 상태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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