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돈이 없어요
지난 1년 간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운동샘이었다. 운동샘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생겼다. 그러나 조증이 시작되고 나서 통장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은 돈이 없다. 운동샘과 그만 만나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엄마도 운동샘을 추천해줬는데, 엄마도 통장이 비었다. 엄마도 운동샘을 그만 만나게 해야 한다. 그이는 내가 운동을 그만 두는 걸 생각해보자고 했다. 아마 감정적으로 내가 운동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 걸 알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얼마전 운동샘 결혼식에도 같이 가줬다. 집안 살림을 거덜내면서 운동을 할 수는 없으니 그만 두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내 밑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상담도 2주에 한번 받아야 하고, 연말에는 겁없이 덜컥 사랑이 간식만드는 창업반에 들어가서 또 기백만원을 썼다. 쇼핑도 했지, 병원도 다녀야지. 애는 없는데 내가 웬만한 집 자식들만큼 돈을 쓰고 있다.
이 집에 이사온지 2년 반이 넘었는데 통장잔고가 늘지를 않는다. 버는대로 다 쓴 거다. 그 동안 가계부를 쓰지 않았다. 올해는 그래서 손으로 쓰는 가계부를 쓰는데 일주일에 몇 십만원씩. 백만원 가까이 쓴다. 이대로 계속 살다가는 나중에 큰 코 다칠 것 같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하는데, 펑퍼짐하게 살았다.
요즘의 컨디션은 괜찮다. 컨디션 점수가 40점 밑으로 안 내려오고 유지되고 있다. 고상 목걸이를 커플로 하면서 가지고 있던 다이아, 금, 은수저까지 다 팔았다. 금값이 엄청 올랐기 때문이다. 내 월급 빼고는 정말 다 오르는 것 같다. 내 컨디션 점수도 같이 오르면 좋겠다.
운동샘과의 결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예측이 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번, 그래도 분위기 전환되는 지점이 있어서 좋았는데,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마음이 좀 흐리다. 그래도 그동안 샘에게 배운 운동 하면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주문을 걸어본다. 운동도 많이 배웠고, 운동하는 마음 가짐,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도 많이 배웠다. 매일 운동하는 것도 배웠고. 작년 설 이후부터 했으니까 거진 1년이다. 그 동안 내 삶도 많이 바뀌었다. 1년이 2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매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울증까지 겪고, 공황장애로 일상이 어려운 상황까지 겪은 지난 1년의 변화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지금 운동샘과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더 건강해졌기 때문일수도 있다. 실제로 팔도 못 들어올리던 사람이 이젠 싱크대 높은 접시도 꺼낼 수 있게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현재 안정적인 상태라 선생님과 헤어질 생각도 하는 것 같다. 때 되면 선생님 선물도 챙겨주고 결혼식에도 갔었는데, 헤어지려니 마음이 몽글해진다. 사랑이도 이제 선생님과 좀 친해졌는데. 그래도 선생님과 좋은 경험을 해서 내 인생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샘에게 운동 그만하겠다는 말을 해야하는 것이 좀 걸리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돈이 없어서 그만 둔다는 이야기도 해야지. 요즘은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좀 더 거리낌이 없다. 솔직하게 말해보니 마음도 편하고 좋다.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하다. 그러려면 집중을 해야 하는데 사업화에 대한 생각이 아이디어만 있고, 구체화가 잘 안 된다. 쉬면서 지금 당장만 생각하기로 해서 그럴 수도 있고, 어려운 것은 피해가는 습성 때문일 수도 있다. 남은 쉬는 기간 동안 그래도 사업에 대해서도 시간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생각을 해야겠다. 귀차니즘도 버리고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을 해야겠다.
운동샘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서, 내가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먼저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장하다. 돈이 없어서 하는 결정이기는 하지만 마음으로도 잘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설이 지나고 새로운 삶이 다시 찾아올 거라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