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우리나라가 가부장적 전통과 비정상적인 회식문화의 덫에 걸려 사회 전체가 술 때문에 헤롱헤롱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게 위해 필요한 덕목의 하나로 '음주량'이 한몫을 차지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원시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던 시기가 바로 얼마 전이라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약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그리고 직장이 또한 친구와 동료가 모두 '술 권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얼마 전에 비슷한 연배의 대학생들에게 술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 답은 예상 밖이었다. '술 담배에 1도 관심 없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딱 잘라 말하는 젊은이들이 60프로가 넘었다. 더불어, 최근에 창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회식문화의 변화에 획기적인 도전장을 찍었다. '술 권하는 사회'에 경고성 일침을 놓은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개인별로 자신의 주량껏 마시는 음주문화가 일반화되고 상식화되고 있다. '술 권하는 사회'는 이제 끝났다.
그런 줄 알았다. 이제 어느 누구든 타인에게 술을 강요한다거나 혹은 술 때문에 남에게 예상치 못한 피해를 준다거나 하는 일은 이 나라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아직 아니었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국면에 이르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자, 곧바로 회식자리가 늘었다. 아니, 2,3차까지 가는 횟수도 늘었다. 급기야 그동안 사회적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 자제하거나 미뤘던 각종 동호회나 친목모임들이 하나둘씩 일정을 찾기 시작했다.
솔직히 내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애써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술 접대와 동기 모임을 연이틀 진행하는 아주 부담스러운 일정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실제 지난주에는 월요일, 수요일 그리고 목요일에 저녁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월요일의 약속은 아주 젠틀하고 기분 좋게 끝났다. 셋이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관심사와 현실적인 이슈들에 대해 진지하고 흐뭇하게 대화를 나눴고, 약 두 시간 정도를 함께하면서 소주 1병과 맥주 1병을 반주로 나눠마시는 건강한 분위기였다.
문제는 수요일과 목요일 저녁이었다. 수요일은 애초에 접대라는 명분으로 마련된 자리지만, 비슷한 연배의 통하는 사람들끼리 기분 좋게 '각자의 삶'을 공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한자리에서 네 시간 이상을 머물게 되었고, 다들 기분이 업되어 한계치가 넘는 주량을 번갈아서 주문했다. 결국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과음을 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고난 + 역경이었다. 그런데 그 대가는 다음날 눈이 떠진 순간부터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다. 한참을 오버해 버린 숙취는 좀처럼 내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결국 숙취해소 음료 여* 2개와 비*칡즙 그리고 콩나물 해장국의 도움을 받아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정신이 차려지자, 그날 저녁 일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늘은 동기 모임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술은 쳐다보기도 싫은데 말이야.' 하면서 일찌감치 갈등에 쌓여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첫 만남이라 마음 한편에는 그들의 근황도 알고 싶었고, 이미 다른 핑계를 만들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래, 가보자, 술만 안 마시면 되지. 동기들은 이해해 줄 거야.'라고 위안을 삼으면서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약 3년 만에 보았지만 각자의 스타일이나 풍기는 이미지 등은 예전과 똑같았다. 누군가는 간간이 욕을 섞어가며 공격적인 말들을 이어 가고 또 누구는 단조로운 대화에 농담과 위트를 넣으려고 애쓰고 또 누군가는 여느 때처럼 웃기만 할 뿐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는 만나자마자 얼른 양해부터 구했다. '여차여차해서 내가 오늘 술을 마시기가 곤란하니, 이해해 달라'라고 말이다. 나의 이러한 간절한 선언에 대해, 동기들은 아무 상관없는 듯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화는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고, 테이블 위엔 술병이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흐르자 이따금씩 불만 섞인 목소리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정말로 안 마시는 거야? 이제 마실 때도 됐잖아!' 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래 이제 저녁이 훨씬 지났어. 몸이 회복되고도 남았겠다.'라고 거들었다. 난 그저 말없이 미안한 표정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8시가 넘자 누군가가 한 번 더 강한 어조로 언급을 했고, 9시가 넘어서자 여섯 명 모두가 '제발 쟤가 술을 먹어줬으면...' 하는 표정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10시가 넘어서자 테이블 위에는 12병의 소주가 놓였고, 어느새 동기들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주인장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결국 한 동기 녀석이 정색을 하며 나를 향해 일갈을 질렀다. '네가 지금 그러는 것은 우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네가 지금 우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있어! 왜 술을 안 마시는 건데?'라고 어린아이를 타이르듯이 화를 내는 것이었다. 아찔하고 끔찍한 순간이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도 아닌, 오십 대 중년들의 동기 모임에서 이토록 유치한 워딩이 나올 수 있을까?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쉰 살이 넘어서 처음으로 당한 이 인격적인 모독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원인이 다름 아닌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술' 때문이라는 것이 더욱 뼈저리게 아팠다. 이는 전적으로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이렇게 길들여 놓은 것이다. 아직도 이 사회의 곳곳에 기생하고 있는 '술 권하는 악마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으면 간헐적으로 격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