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이상한 누나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나에겐 이상한 누나가 있다. 내가 20대 초에 '좋은생각'이라는 월간지에 게재했던 '칫솔 하나의 행복'이라는 글의 주인공이다. 그때 그 글에서 누나의 집에는 40여 개의 칫솔이 있고 그 칫솔마다 제각각 다른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고 했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왜 누나집에 칫솔이 그리 많았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요즘은 갈수록 가족 구성원이 해체 되고 있고 직계가족들도 최대한 분리되어 생활하려고 한다. 그러니 실제로 1인 가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현대인들은 가급적 다른 사람들과 어떤 형태로든 부딪히면서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특히,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과 그에 따른 각종 SNS의 활성화로 인해 타인과의 소통 방법이 간접적인 것으로도 충분해졌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요즘은 직접 만나는 일과 그리고 전화로 소통해야 하는 일 그리고 카카**등 SNS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일들을 적절히 구분하여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1차적으로 SNS를 먼저 선택하는 경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들과의 소통은 아직까지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고 또 손잡고 온기를 느끼는 것이 좋다.



그 이상한 누나집엔 항상 사람들이 북적댄다. 누구든 잠깐이라도 머물면서 차라도 한잔 마시고 싶어 하고, 어쩌다 술자리가 만들어지면 좀처럼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그 집이 쓸쓸하거나 고요하거나 적막한 적은 없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 집을 감싸는 공기가 사람을 편하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공기라는 것은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맞장구 그리고 마음 씀씀이와 생각의 방향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집이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5초도 경과되지 않아, 그 집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나는 고향인 지리산과 어머니의 품을 떠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누나들과 함께 부산의 어느 달동네 같은 언덕에서 살았다. 시내버스 정류소에서 지독한 비탈길을 걸어서 한참을 오르고 오르면 길모퉁이 한켠에 우리만의 훌륭한 아지트가 있었다. 겨울이 오면 밤새 연탄을 갈아가며 방바닥의 온도를 유지해야 했던 언덕배기 작은 방이었다. 그 방 한 칸에서 네 명의 형제자매가 함께 살았지만, 다들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었다'라고 입을 모아 회상한다. 그때는 이 큰 도시에서 저녁이 되면 되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작은 방이 우리 4명에겐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비슷하거나 조금씩 나아지는 규모로 7번이나 아지트를 옮겨야 했다. 그러다가 투잡을 하면서 동생들을 케어해 왔던 셋째 누나가 결혼을 하자, 나는 자연스럽게 이 이상한 누나네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함께 살다가 서울로 취직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독립을 했다. 물론, 그 사이에 형이 운영하던 전자제품 대리점에 딸린 다목적 방에서도 몇 개월 살았고 또 할머니의 거침없는 잔소리가 생생한 다세대주택의 원룸에서도 살았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청소년기를 셋째, 넷째 누나들과 함께했다. 심지어, 대학교 2, 3학년 때는 친구 재석이와 함께 누나집 작은 방에서 함께 거주했다. (실은 위의 대리점 쪽방과 다세대 원룸에서도 재석이와 함께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살았던 재석이와 나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수용해 줬던 이상한 누나와 이상한 자형이 너무나 놀랍다.



이제부터 그 이상한 누나의 작은방을 직접 거쳐가거나 혹은 차지하려고 서성대던 사람들의 케어 변천사를 정리해 보려 한다. 처음 누나들과 생활한 지 오래되지 않아,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동갑내기 사촌인 학순이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질풍노도 절정의 시기라 집에 머문 시간이 거의 없어서 행복하거나 안타까웠던 에피소드 등 기억나는 일들이 많지 않다. 다만, 아침이면 5명이 틈나는 대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말리고 하느라 매일 정신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주변에 동전을 넣고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내가 취직을 하자 조카(큰 형님 딸)인 '저희'(*실제 이름이 저희임)가 누나집 작은 방을 쓰면서 대학을 다녔다. 그 방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거주하다가 취업과 동시에 독립했다. 그즈음하여 학교 앞 승락이네 집에는 이상한 누나의 시동생이 혼자 살고 있었으며, 누나는 학원일과 집안일을 하면서 동시에 그 집의 밥과 빨래와 청소까지도 담당했었다고 한다.


그 후 곧바로 누나의 시누이의 딸인 '미화'가 그 방에 들어왔다. 아마 고등학교 때 들어와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나 독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저희'와 '미화'는 나이가 비슷해서 대학생활 시기가 겹칠 수밖에 없었기에 둘이서 그 방에 함께 거주하기도 했다.


중간중간에 시부모님께서도 한번 오시면 보통 열흘 정도 머물다가 가셨고, 시아버지의 대장암 수술 후에는 그 방에서 약 두 달간 병간호를 도맡아 해야 했다. 또 그 사이사이의 어떤 시간과 공간의 틈에는 친정어머니의 한 달 겨울나기 혹은 큰 형님발 사건들의 화풀이를 위한 아지트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둘째 누나의 둘째 딸인 정민이를 학원에서 공부시켰고, 셋째 누나의 딸들인 도연이와 민주를 공부시키고 또 케어했다. 그리고 시동생의 자녀들과 시조카 미화의 자식들도 공부시켰다. 심지어 친척인 정자누님의 자녀 4명을 공부시키기도 했다. 지금도 그 변천사의 주인공들과 좋은 인연을 맺고 살고 있으며, 특히 셋째 누나와는 평생의 절친이자 동반자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한 참을 지나고 나서야 그 방은 비로소 이상한 누나의 자식들인 준형이와 성연이에게 돌아갔다. 정말로 먼 길을 돌고 또 돌아 진짜 주인에게 돌아간 것이다.



지금은 준형이도 취직을 해서 독립을 했다. 그리고 그 방은 준형이가 키우다가 누나에게 맡긴 검은 고양이 '섭이'의 차지가 되었다. 게다가 준형이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거북이와 독거미까지 키우다가 엄마한테 맡겼었다. ㅋㅋ. 그리고 성연이는 나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의 섭이까지 작은방 거주자들을 다 지켜보며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공무원이 된 지금까지도 '끝까지 엄마 곁을 떠나지 않겠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상한 누나의 마법에 제대로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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