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영태의 지적질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지적질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것이 나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인지 혹은 다소 까다로운 이미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군대에서 '왜 그렇게 잘난 체를 하냐?'라며 초소로 끌고 가 약 40분 정도를 연속 구타했던 아버지뻘 선임이나,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왜 도전을 안 하려고 하느냐?'라며 소위 잘 나가는 방향으로의 로드맵 설정을 줄기차게 요구한 M 상무님 외에는 크게 떠오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누군가를 향해 지적질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거나 혹은 정말 아끼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진짜 보기 싫은 사람일 경우일 것이다. 왜냐면 그 지적질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게 되면, 그 관계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혼자서 놀 수 있는 여건이 많이 조성되어 있고, 또 동호회 활동에 대한 접근성이 너무 좋기 때문에 더더욱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는 쉽게 결별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과 같이 풍부한 애정을 바탕으로 더 나아지길 바라는 응원의 지적질은 그 긍정적 효과가 크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뜻밖의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지적질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 친구 중에 역대급 지적왕이 있다. 그는 정치 상황과 사회현상에 상당히 관심이 많으며, 사고의 성향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나와 매우 비슷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와 사회를 마주할 때,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의해 지지 여부를 판단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는 정책이나 공약의 본질을 파악한 후에 정의를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른 주관적인 생각들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 그 전파력이나 영향력이 비록 근거리밖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늘 올곧게 주장한다.



사람들을 향한 지적질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리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부러워할 정도로 편하게 지적한다. 심지어 허허실실 웃으며 쏘아댄다. 마치 정확하게 잽을 날리고서 곧바로 백스텝으로 물러났다가 또 갑자기 다가와 잽을 날리고는 사이드 스텝으로 피하고, 또다시 다른 잽을 날릴 기회를 노리는 아웃복서 같다. 조금은 얄밉지만 훌륭한 기술의 보유자다. 그러니, 3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나도 피해 갈 재주가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에 '매우 중요한 지적질'을 몇 번 당했다. 이제부터 그 지적질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 시대 우리는'이라는 시에 대한 평가다. 내가 20대 초에 대부분의 시간을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보낼 때 즉흥적으로 썼던 시인데, 이에 대해 '(그래도) 나는 친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라는 평가를 했다. 그때 꽤 당황스러웠다. 액면상으로 보면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만하다. 그러나 그렇게 응수한 이가 영태라서 아쉬웠다. 정치와 사회를 평가할 때와는 달리, 전체적인 맥락과 행간의 의미를 일부러 무시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우리'라는 존재를 '우리 여섯 친구들'로 착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를 만나러 갈 때와 우리와 헤어져 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라는 시구였다.



다음은 내 생애 최초의 습작 소설인 '바람개비'에 대한 평가다. 약 15년 정도 된 사건이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무모한 도전이었다. 거의 하루에 1시간 이상을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3개월 정도를 투자하여 완성한 것이 약 200페이지 분량의 단편 소설이었다. 내가 '소설'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참 어색하긴 하다. 말 그대로 '습작' 이하의 수준이었다. 소설의 주제와 문체 그리고 이야기 전개 등이 전반적으로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그래도 첫 습작을 기념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건네봤다. 친구들은 그래도 '습작치고는 괜찮다' 혹은 '이야기 전개에 긴장감을 더해줄 뭔가를 더 찾아봐' 등 절망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 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예상은 참혹하게 빗나갔다. 특히 영태는 '형편없는 졸작'이라고 혹평했다. 그 후 소설에 대한 어떤 희망도 갖질 않았고,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더불어, 최근 약 3개월 전부터 중년의 인생을 돌아보고 또 '나'라는 존재에 대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 다양한 소재로 산문들을 작성 중이다. 처음에는 정식으로 출판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의 발자취나 성취감을 남기기 위해 제본 정도를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독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점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산문들에 대해 영태는 '내 글은 늘 판타지에 가깝다'라고 지적했다. 내 글은 생활밀착형 현실 소재의 글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어학사전에서 판타지를 찾아봤다. '터무니없는 가상 세계에서 일이 벌어지거나,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예상을 깨며 빈번히 일어나는 사건을 담은 문학 작품'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 산문에 판타지는 1도 없었다.



최근에는 연거푸 내 자세에 대해 지적을 했다. 왜 그리 자꾸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거나 걷느냐는 거다. 내 주변에 그걸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내 스스로는 약간 구부정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을 이따금씩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그것이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태로부터 반복해서 그 얘기를 듣고 난 이후에는 쇼윈도 혹은 엘리베이터 내부의 전신거울을 통해 그리고 화장실에서 내 자세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고, 어느 정도 지적당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직후부터 러닝머신 위에서도 탄천에서 파워워킹을 할 때도 그리고 일상의 수많은 의자에 앉을 때에도 척추와 허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영태의 진심 어린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올바른 자세 교정에 성공했으면 한다.



P.S. 그와 함께한 수많은 추억들 중에서 가장 시그니처 한 것은 408km 자전거 여행이었다. 즉흥적인 생각이었지만 20대 청년만이 누릴 수 있는 대담한 결정이었다. 그러니까, 부산 사직동에서 자전거를 빌려 지리산까지 왕복하는 여정이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누가 적극적으로 주도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친구 5명 중에서 3명이 찬성했고, 결정 직후 즉각 실행에 옮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준비 기간이 없었던 만큼 장거리 라이딩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하루 종일 비탈길과 내리막길을 오가며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모아 죽도록 달리고 달렸다. 그래야 계획했던 다음 목적지까지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강행군이었다. 그렇게 달리다가 배가 고파지면 코펠과 버너를 꺼내어 김치찌개나 라면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했고, 숙박비가 없어서 땅거미가 질 무렵이 되면 가장 가까운 대학교를 찾아가 강의실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편도로 2박 3일이 걸리는 일정의 3일째가 되던 날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산청군 인근의 뻥 뚫린 내리막길에서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달리다가 순식간에 영태가 넘어져 버린 것이다. 영태는 발목을 다쳐 절뚝거려야 했고, 우리는 아스팔트 길 옆에 나란히 앉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고민 끝에, 성원이와 나는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로 달리고, 영태는 혼자서 히치하이킹을 이용하여 목적지로 가기로 했다. 영태가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았다. 발목이 삐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부의 트럭을 얻어 타고 시내 병원으로 가서 간단하게 치료를 받고, 다시 기차와 경운기를 얻어 타고 기어이 지리산에 도착한 것이다. 여정의 동반자인 나조차도 그의 변통력에 감탄했다. 히치하이킹을 활용하여 이동하는 영태의 임기응변도 대단했지만, 그 구간과 구간 사이에서 기꺼이 도움을 주셨던 농부들의 마음씨도 놀라웠다. 그렇게 부상당한 발목과 자전거를 동시에 질질&틸틸 끌고서 영태는 나의 고향 집 앞마당에 들이닥쳤다. 그날 내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벌써 두 번째로 눈이 휘둥그레진 가족들과 함께 시골밥상에 마주 앉아, '영태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 (참고) 가족들이 두 번 놀란 이유

• 첫 번째는 형국이 에피소드

• 두 번째는 영태 에피소드


영태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이토록 솔직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이렇게 위태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암튼 이런 친구가 있어서 좋다.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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