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1. 아랫동네 악마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향마을에서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동창들 넷이서 어울려 아랫동네인 '중황마을'의 한 친구 집에서 놀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지리산 골짜기 외딴 시골마을의 전형적인 겨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가끔씩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는 것 외에는 화젯거리가 될 수 있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더불어 우리들의 이야기도 놀이도 순박하고 평범했다. 그런데, 땅거미가 지고 저녁이 되자 평화로웠던 마을에 잔혹한 살기가 드리워졌다. 갑자기 그 중황마을에 거주하는 2년 선배 6명이 우리를 대문 밖으로 불러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마을 어귀의 다랭이 논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이 찾아오기 전 한 친구는 송아지에게 여물을 주기 위해 일찌감치 귀가했으나, 그 어린 악마들은 그 친구까지 기어코 다시 불러냈다. 그러고는 이유 없는 구타가 시작되었다. 산짐승도 견디지 못할 길고 긴 구타가 시작되었다. 몇 시간 동안을 버려진 샌드백을 차듯 발로 차고 또 힘자랑하려고 펀치 머신을 때리듯 주먹으로 가슴을 때렸다. 그러다 지치면 우리를 몸이 휘청일 정도의 계곡 바람의 중심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서있으라고 하고는 그들끼리 모여서 킥킥대며 숨 고르기를 했다. 그리고 약 10분이 지나면 다시 잔인한 구타를 시작했다. 혹독한 추위가 이어진 12월의 자정이 다가오자 바람은 더욱 예리한 칼바람으로 바뀌었고 가끔씩 소용돌이와 함께 시린 눈발이 흩날리기도 했다.


6인의 악마 중 한 명이


"야! 이런 추위면 쟤들 죽을 수도 있어. 모닥불을 피워서 녹이면서 하자."


"그래! 그러자! 밤새워야 할 테니."


라며 낮은 목소리로 마치 들짐승의 신호 같은 것을 주고받기도 했다. 정말로 그들은 들짐승들이었다. 한 논두렁에 피워놓은 모닥불이 어느 정도 꺼져가면, 한 계단 아래의 논두렁으로 끌고 내려가 거기서 다시 불을 피웠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정신은 혼미한 상태였지만 불현듯 그들의 눈동자가 스쳐 지날 때마다 영화에서나 봤던 연쇄살인마의 그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공포감에 휩싸였다.


새벽 3시가 넘어서자 더 이상 통증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할 정도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그들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야! 그런데, 쟤들이 뭘 잘못했다고?"


"응? 나도 잘 몰라. 그냥 OO가 쟤를 보면 기분이 나쁘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내일 쟤네들 집에서 신고하면 일이 커질 텐데."


그때부터는 집에 얘기하지 말라며 동이 틀 때까지 때리기 시작했다. 누구든 집에 이야기하면 '모두 죽여버리겠다'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같이 '절대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차가운 달빛을 향해 연거푸 애원했다.



날이 밝아오면서 일생일대의 최악의 악몽 같은 하룻밤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그 잔혹한 범죄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일을 내 인생의 첫 번째 모욕감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연쇄살인마와 같은 그들의 눈빛이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나라 어디에선가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그 악의 DNA가 되풀이될지도 모를) 자식들을 향해 인자하게 웃고 있을 그 인간쓰레기 6인방을 생각하면 온몸이 떨리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내 주먹의 생명선을 따라 식은땀이 흐른다.



2. 나 몰래 훔쳐다 쓴 돈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벽에 부딪히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대개 친구나 동료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끼리의 거래나 상호 관계에서 발생한다. 아마도 가족에게는 끝없는 기대감과 폭넓은 배려가 적용되기 때문인 것 같다.



약 2년 전 일이다. 상속과 관련된 집안 문제로 인해 형제자매 모두가 끝물의 봉선화 꽃봉오리처럼 예민해져 있었다. 정말 잘 못 사용된 단어 하나가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었고, 엉뚱하게 터져 나온 감탄사 하나가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자, 결국은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이 대화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형제들과의 단독방에서 형이 우리 둘에게 공동으로 할당된 상속분을 나와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혼자 매도해 버린 일에 대해 '아주 옛날 내가 준 돈들과 나 몰래 훔쳐다 쓴 돈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그 문장을 보자마자 정말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억울하고 무서웠다.



내 생애에서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기간은 경제적으로 가장 궁핍한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상당한 부동산을 축적한 부농이었지만, 우리 형제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불우하게 생활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신 두려움 탓인지, 어머니와 큰 형님은 그 논밭을 팔아서 자식들과 동생들을 케어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자존심과 욕심 때문에 어린 형제자매들은 많은 상처들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그 청소년 시절이 가장 필요한 시절이었고 또 가장 서러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교 시절에 형이 운영하는 소규모의 전자제품 대리점에 들러서 온갖 심부름을 해주고 그 대가로 조금씩 용돈을 받아서 썼다. 고객이 맡긴 '밥솥'을 갖고 버스를 타고 A/S센터를 다녀오기도 하고, 물건을 구매한 고객에게 다리미, 카세트 레코드, 선풍기 등을 직접 배달하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학원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서 썼지만, 고등학교 3년 동안이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아마도 형이 '나 몰래 훔쳐다 쓴 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때의 어느 순간을 표현한 것 같다. 그러나 하늘에 맹세코 내가 형의 돈을 몰래 훔친 적은 없다. 배달하는 과정에서 수리하고 남는 비용의 일부를 용돈으로 활용한 것에 대해서는 다소 오해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나 몰래 훔쳐다 쓴 돈'이라고 표현한 것은 내 생애에서 개인적으로 들은 '최악의 독설'이다. 내 삶과 내 이미지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망언이다.



3. 영원한 게스트


나는 주변에서 그 횟수가 다소 지나칠 정도로 동호회나 친목모임을 주도하면서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또 노는 것을 좋아하고 모든 스포츠와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지리산에서 다져진 탄탄한 체력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친목회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OO 모임'이라는 모임과 관련된 일이다. 이 모임의 회원들과는 약 13년 정도 인연을 맺고 있다. 그래서, 이들 중에서 80% 이상은 다른 모임과 중복되어 만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도 절반이 넘는다.



그런데 이 모임의 1박 2일 여정에 두 번을 '동행'했고, 그 이상한 동행이 결국 내 인생의 세 번째 '모욕'이 되었다. 약 11년 전 일이다. 'OO 모임'에서 강원도 여행을 가니, 게스트로 동행하자는 제안이 왔다. 이번에 게스트로 참여한 후에 '정회원'으로 활동하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주도하고 있는 모임들이 너무 많아서 잠시 주저하다가, 이들과의 친분을 생각해서 결국 찬성했다. 그리고 1박 2일 동안 재미있고 유익하게 놀았다. 내가 게스트 자격으로 참여했다는 생각을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이 모임까지 참여하면, 더욱 바빠질 텐데 어떡하지?'라고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났는데도 조용했다. 살짝 섭섭했다.



그러고는 10년이 훌쩍 흘렀다. 그 세월 동안 그들과의 개별적인 교류는 더욱 성숙해졌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1박 2일 게스트로 참여해 달라는 제안이 왔다. 당시에는 옛 생각이 문득 떠올라 알 수 없는 웃음으로 응수를 했으나, 복수의 회원들로부터 제안이 들어오자 결국 수용했다. 그리고 다시 1박 2일을 여정을 떠났다. 나는 웃고 떠들고 먹고 놀고 하는 그들의 세계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 모임의 생존이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위태위태하다는 느낌도 여러 번 들었다. 아무튼 다시 게스트(?)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두 번이나 1박 2일 여행을 함께 했는데, 이번에는 당연히 정회원으로 영입을 하겠지?'라고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아무리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관계 일지라도 서로에게 취해야 할 인간적인 매너가 있다. 이들은 10년 간격으로 두 번씩이나 게스트로 초대해서 여행을 함께한 나를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에게 어떤 '부적격' 사유가 없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알고 있다. 이들은 단 한 번의 '감성적 터치'도 없이, 단 한 마디의 '의례적 설명'도 없이 내 인생에 3번째 '모욕감'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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