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퇴근길 좌회전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직장인들은 저녁 6시가 되면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를 토대로 건강 혹은 취미를 위해 기꺼이 투자하거나 또는 가족을 케어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8시간을 직장에 머물러 있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보통 마음이 설레고 또 들뜨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저녁시간에는 단 5분도 매우 소중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30분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여유를 부릴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은 또 다른 나의 하루를 위해 가급적 빨리 목적지로 가는 것이 최고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의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길에서는 매일 특이한 '행운'이 작용을 한다. 좌회전 신호를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10분 혹은 15분의 시간을 벌거나 뺏길 수 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지하 2~5층에서 동시에 빠져나오는 수많은 차량들을 가장 원활하게 소통시키기 위해 좌회전 차선을 막아 놓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빌딩의 주 출입구에서 좌회전, 직진, 우회전을 할 수 있는 각각의 차선에서 기다렸다가 신호체계에 맞게 제 갈 길로 방향을 틀면 된다. 하지만 퇴근길에는 한 차선만 운영하기 때문에 좌회전이나 직진을 하고자 하는 차량들은 '운'좋게 신호가 맞아떨어져 야만 원래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좌회전 차선에 차량들이 5~6대만 줄을 서 있어도 직진, 우회전하는 차량마저도 복잡하게 뒤섞이게 되어 지하 5층 주차장까지 차량 정체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좌회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좌회전 신호에 딱 걸리는 경우는 겨우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90%의 퇴근길은 어쩔 수 없이 우회전을 한 후에, 약 1km를 이동하여 사거리에서 다시 유턴을 해서 그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다. 수많은 차량들이 같은 상황이기에 큰 사거리의 신호를 2~3세트 거쳐야만 내 차량이 유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유턴할 수 있는 공간을 확 줄여놓고 기다랗게 중앙분리대를 설치해 놓았다. 그러니, 좌회전 차량이 3~4만 대기하고 있어도 유턴을 할 수 없게 해 놨다. ㅎㅎ 설상가상이라고 해도 될까?
그러니,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차단기를 통과한 차량들은 희비가 엇갈리는 운명을 맞이한다. 매일매일 신호등에 의해 '운수 좋은 날'인지 아니면 10분 이상의 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하게 되는 '운수 없는 날'인지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차단기를 통과하면서 녹색 좌회전 화살표를 바라보며 상반되는 감탄사를 외치는 것이다. 퇴근길의 직장인들에게 그렇게 작은 복권을 하나 쥐여주는 방법 외에 좀 더 스마트하게 평등한 기회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내가 교통 전문가가 아니기에 적용해 볼 만한 설루션을 제시할 순 없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을 동원하여 연구해 보면 개선안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의 인생에서 이렇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정해놓은 작은 규칙들에 의해 행운을 얻거나 혹은 기회를 잃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2반이 아니라, 3반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내 인생 최초로 쓴 풋내 가득한 산문이 OO 북도에서 장려상을 받았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이 3반 선생님이었다면 내 인생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논산훈련소에서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는 그 순간, 내가 1열이 아닌 4열의 뒤쪽에 앉았더라면 내가 가야 할 부대의 위치와 28개월간 담당했던 보직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가 현재 27년 동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입사시험 최종 결과를 맨 처음 ARS로 들었을 때, 불합격이었다. 그런데 보통의 상황이라면 그냥 체념하고는 돌아서서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방황했을 텐데, 이상하게 그때는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다시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무 의미 없이 '운'으로 결정지어지는 것들이 그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줄을 잘 못 서서 혹은 누군가의 손짓으로 결정되는 많은 것들이 합리적 판단이나 확률적 근거에 의해 결정되는 신인류 사회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내용 없는 '운'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자가 있는 자동차에 대해 한국형 레몬법을 마련하여 '뽑기의 부작용'을 없애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운'을 기회의 균등과 노력의 결과로 개선해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