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일상의 뜨거움이 최고치의 경계를 넘나들 무렵, 친구 세 커플이 도망치듯 강원도 속초 설악○○리조트로 여행을 떠났다. 빡빡한 일정으로 방파제 낚시와 청정 어촌 먹거리들을 향유하고 다시 카페와 바다를 순서 없이 즐기다가 지쳐갈 무렵, 문득 목욕탕의 열탕과 냉탕이 떠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작은 향유, 소시민의 행복 그리고 나를 위한 최소한의 보살핌이었던 목욕탕 레저! 우리는 역대급 무더위를 예고한 이 여름을 독특한 방법으로 기념하기 위해 ○○리조트의 목욕탕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목욕탕 갈 때 무엇을 챙겨서 갔었지?'라고 잠시 생각해 볼 정도로 아주 오래된 방문. 남탕과 여탕이 엇갈리는 중앙 복도에서 잠시 혼자만의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약 3년 만에 기어코 두꺼운 목욕탕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15시경이 제일 한산할 거라는 친구의 말이 맞았다. 남성 락커룸에만 약 300개가 넘는 락커들이 즐비해 있었지만 보이는 사람들은 겨우 다섯 손가락 안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입었던 옷을 순식간에 훌러덩 벗어던지고는 온탕으로 뛰어들었다.
정확히 38.2도의 행복탕이 뽀글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내 지친 몸도 내 찌든 마음도 단숨에 화~악 풀리면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 예! 오~~~'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바로 옆 열탕에서 서서히 삶아지고 있던 친구가 그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잠깐 망설였으나 이내 다른 온도의 행복도 느껴보고 싶어졌다. 와우! 42.8도는 정말로 매우 '뜨거운 행복'이었다. 친구는 뜨거워 주저하는 나에게 물을 한 움큼씩 쥐어 등에다가 수차례 쓸어내려 주었다. '그러면 금세 적응된다고, 쉽게 익숙해진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42.8도는 참 행복한 온도였다.
열탕과 냉탕 그리고 습식 사우나와 냉탕을 오가면서 문득 살아있음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그 행복탕에서 빠져나오기 싫었다. 다시 그 독한 스트레스와 위세 당당한 여름의 중심부로 찾아 들어가기 싫었다. 한마디로 행복했다. 1인당 6천 원으로 몸과 마음이 두루두루 기분 전환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 코로나19가 불현듯 앗아가 버린 이 소박한 행복을 우리는 언제쯤 온전히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까? 아니, 다 돌려받을 수는 있을까?
코로나19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이 여름날의 목욕탕처럼 우리가 가진 작지만 필수적인 혜택과 행복들이 다른 환경적인 요인들로 인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 작은 예로 만약, 양말을 신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바이러스가 유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등산, 골프, 낚시를 비롯한 레저생활과 각종 스포츠에서도 양말을 착용하지 못한 채 해야 한다면 제대로 실력 발휘가 될까? 또 한겨울에는 자유롭게 야외활동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바이러스가 몇 년간 세상에 창궐했다가(그러니까 양말이란 것을 착용하지 못한 채 살다가) 아주 오랜만에 양말이라는 혜택을 착용할 수 있게 된 그 순간. 지금 이 목욕탕의 행복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고마움이 느껴지지 않을까?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바이러스가 몇 년 동안 창궐했다가 종식된 후 맨 처음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의 기쁨은 어느 정도일까? 남자와 여자를 한 장소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괴상한 바이러스가 10년 정도 세상을 지배하다가 끝내 종식된 직후의 세상은 어떨까? 그 직후에 찾아온 남녀 간의 첫 만남은 서로에게 얼마나 애틋하게 느껴질까? 또 얼마나 큰 마음의 맹세로 이어질까? 지금까지 어떤 형태로든 나와 인연이 되었던 사람들, 지금 내 주변에 늘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매일 사용하는 내 주변의 소소한 물건들을 한 번쯤 주~욱 돌아보자. 그리고 다시 한번 보살피고 또 그 존재 자체를 고마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