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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목욕탕 예찬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높은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 좀 살만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누구에게나 중요해진 '건강한 삶'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규칙적인 운동과 절제된 식사 그리고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누적되는 스트레스의 해소일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의료혜택과 지원을 받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 한방치료나 각종 건강보조식품도 도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누릴 수 있는 건강한 삶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도 있다. 다시 말해 수면습관이나 걸음걸이 습관 그리고 일하는 자세와 목욕 습관 등이다. 오늘은 이러한 요소들 중에서 목욕 습관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한바탕 휩쓸어버린 최근 3년 동안에는 감염 위험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목욕탕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수많은 목욕탕, 사우나, 찜질방 등이 폐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류의 위기라 생각했던 전염병의 창궐까지도 인류가 발 빠게 백신을 개발하고 또 적극적으로 위기관리를 함으로써 잘 극복해 냈다. 그렇게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되면서 그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온탕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몇 개월 전부터는 아예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이용하는 정상적인 일상을 되찾게 되었다. 잃어버렸던 소중한 물건을 다시 찾은 듯 반갑고 또 고마운 일이었다. 왜냐면 목욕탕이라는 공간이 특히 우리 서민들의 건강한 삶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목욕탕을 '건강한 시민들의 힐링센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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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목욕탕에서의 건강한 루틴을 이야기해 보자. 나는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샤워 부스 옆 전신 거울을 통해 내 몸의 현재 상태를 스캔한다. 그 시간은 3~5초 정도로 매우 순식간이다. 내 몸의 현재 상태라는 것은 아주 구체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배가 나왔는지' 혹은 '얼굴 표정은 괜찮은지'를 살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면 클래식 비누 거품을 활용하여 깔끔하게 샤워부터 한다. 그때부터 몸이 작은 변화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세상과 맞닿아 바쁘게 생활하면서 피부와 머리카락에 쌓인 미세먼지들과 바이러스들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로 씻어내리는 것이다. 적당하게 거친 타월로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주면 그 즉시 몸이 개운하다는 반응이 느껴진다. 어느새 마음까지도 정화되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곧바로 체온보다 2~3도 정도 높은 온탕으로 들어가서 귀 아래까지 온몸을 담근다. 그렇게 온몸을 담그고 있으면 내 몸속 나쁜 요소들이 조금씩 치유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불어 그 온탕 안에 수압 마사지가 있으면 온탕과 마사지의 기능을 동시에 만끽한다. 일주일 동안 심신에 누적된 크고 작은 긴장과 그리고 두어 번의 숙취 그리고 아침 러닝으로 인한 다리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기 시작한다. 그 순간이 되면 이미 삶의 책임과 의무도 스르르 풀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온탕에서 5~7분을 담근 후 비로소 '뜨거운 습식 사우나'로 향한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숨이 턱턱 막히고 곧바로 땀샘은 활짝 열려버린다. 처음에는 못 버틸 것 같아 불안하지만 금세 적응이 되어 5~7분을 버티고 나오면 적어도 100ml 정도의 땀은 배출된 느낌이 든다. 내 몸속의 노폐물이나 기타 부정적인 요소들이 모조리 밖으로 빠져나가 뭔가 치유가 되는 것 같은 느낌말이다.


사우나 문을 밀치고 나와 폭포수 아래에 서서 다소 붉어진 몸을 잠시 식힌 후에 냉탕으로 들어간다. 냉탕에 발을 담그자마자 몸은 화들짝 놀란다. 그러나 그 차가움은 곧 짜릿함이 된다. 그렇게 온몸을 찬물에 담그고 있다가 나오기 직전에는 잠시 머리까지 잠수를 하기도 한다. 특히 냉탕에 수압 마사지 기능이 있다면 짧고 굵게 활용하면 좋다. 허리와 어깨 부위에 대한 강력한 냉 마사지는 근육과 정신을 최고조로 자극한다. 온도가 미치는 영향일까? 온탕에 있을 때보다 냉탕에 있을 때가 훨씬 깔끔하다는 느낌이 든다. 몸이 뜨거워진 상태에서 다시 급격하게 차가워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강력한 상쾌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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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세트를 끝내고 나면 온탕 앞에 있는 비치체어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이제부터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목욕탕 여기저기의 수많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가 모여 마치 험준한 산맥에 길게 이어진 계곡의 물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거기서 조금만 더 상상력을 보태면, 바람으로 인한 풀잎 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새소리들도 그 계곡의 합창에 참여한다. 그렇게 되면 목욕탕 비치체어가 아닌 인적이 드문 산속의 낮은 해먹에 누워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멋진 오케스트라를 감상한 후 스르르 눈을 뜨면 냉탕과 온탕의 물결 위로 신비로운 윤슬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각도를 유지한 채 천장을 올려다보면, 봄의 아지랑이들이 쉼 없이 살랑살랑거리는 아름다운 광경과 마주하게 된다. 목욕탕의 윤슬이다. 그걸 바라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저절로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것이다.



'이 계곡의 물멍이 내 마음을 풀어주는 이유는

그 물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물소리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 00년 2월 25일 발리(라는 이름의) 목욕탕에서




그렇게 목욕탕이 선사하는 휴식과 힐링을 경험한 후에는 수압마사지탕으로 간다. 누운 자세에서 내 몸을 향한 약 10개 이상의 구멍을 통해 분출되는 수압 마사지는 한마디로 의료행위 수준이다. 다만, 고정된 장치에 의한 마사지인 만큼, 개개인이 자신의 취약한 곳을 선정하여 조금씩 몸을 움직이면서 단련해야 한다. 특히, 발가락에서 뒤꿈치까지 발바닥 전체를 골고루 서비스해야 한다. 그렇게 1~2분만 집중 서비스를 받으면 웬만한 한의원의 침이나 뜸 치료를 하는 듯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평소 과도하게 사용하는 발목과 손목 그리고 허리 부분의 근육들은 좀 더 신경 써서 마사지해 줘야 할 것이다. 나는 보통 2회 연속해서 그 무상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그렇게 마사지까지 완료되면 그대로 다시 한 서클을 반복한다. 그러고는 약 50분 정도의 치유와 정화의 시간을 마무리한다. 마지막 샤워를 할 때에는 들릴듯 말듯한 콧노래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50분 동안 힐링 되어 행복한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좋은 목욕탕은 언제 가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이 세상의 모든 신선한 출발이 그렇듯 목욕탕도 새벽에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문을 열자마자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새로운 물이 채워진 온탕에 맨 처음 내 몸을 담근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보통 목욕탕은 6시에 오픈하기에 그 시간에 맞춰 가면 그 조용하고 넓은 공간을 마치 나의 전유물처럼 즐길 수 있다. 특히, 새벽에는 동반자들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다. 그들은 아주 느긋하고 젠틀하게 목욕을 한다. 누군가가 그 분위기를 깨뜨리기 전까지는 목욕탕 안에서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로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성격과 품성도 보이기 때문이다.




P.S.

동일한 1만 원을 지출하고 어떤 사람은 사우나를 2나 3만큼 활용하고, 어떤 사람은 9나 10만큼 활용한다. 모든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동일하게 주어진 인생에서, 어떤 사람은 2를 느껴 본 것으로 만족해하고, 또 어떤 사람은 8과 9를 느껴보기 위해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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