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각별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길게 이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연도 있다. 그것은 비단 인간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취미생활이나 직업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잔잔하게 늘 나와 함께한 사람이나 취미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평생 잊히지 않을 만큼의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경험이 좋은 것인지는 따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것은 각기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삶에서든 두 개의 유형이 적절히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약 2개월 전에 우리 동네에 '체육센터'가 신규 오픈했다. 이를 두고 저마다의 정치인들이 얼마나 앞다투어 홍보를 했는지, 약 6개월 전부터 오픈 일정 및 회원 모집 방법 등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그 당시 나는 골프라는 몹시 신사적인 운동과 너무 단조로운 아침 러닝으로 끌어 오르는 열정을 달래고 있었던 나는 불현듯 '배드민턴'이라는 역동적인 스포츠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픈 일정에 맞추어 접수를 하고 보니 경쟁률이 8 대 1 이었다. 보자마자 바로 기대감을 접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1순위 회원 등록 자격에 당첨이 된 것이다. 정말 신이 났다. 그 설레는 마음에 대표 브랜드 라켓 2개, 신발 2개 그리고 고급스러운 가방과 운동복까지도 미리 구매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배드민턴은 격렬한 운동이었다. 아침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진행하는 새벽반이었는데, 겨우 10분 정도만 뛰어도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고, 운동이 끝날 때가 되면 꽉 조여진 신발 속의 양말까지도 다 젖을 정도였다. 그것이 좋았다. 아침을 시작하는 그 다이내믹한 움직임이 좋았고, 여러 가지 상황에 맞는 타격 기술을 익혀나가는 재미가 너무 좋았다. 특히 강습이 끝나고 회원들과 두루두루 돌아가면서 게임을 할 때는 약간의 긴장감이 맴돌기도 했다. 그것은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승부에 대한 욕구를 불사르기에 충분했다. 매력 넘치는 스포츠 종목이었다. 그렇게 점점 새벽 배드민턴에 빠져들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자세가 잡히기 시작했고, 점프 스매시 등 고공 타격의 짜릿한 손맛에도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큰 착오가 있었다. 내가 오십 대 중반의 나이임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 아침에 몸에서 땀이 소진될 때까지 격렬하게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면 세상 살아갈 참맛이 났다. 처음에는 중간 점프해서 스매시를 하다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높이 솟구치는 점프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쉴 틈이 없고 그래서 몸이 지쳐갈수록 운동 후의 뿌듯함은 컸다. 그리고 출근길에 느껴지는 그 짜릿한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 있게 점프 스매시를 하고 마룻바닥에 발을 착지하는 순간 눈앞에서 태양이 폭발하듯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지?' 하며 돌아보는 순간, 이미 내 기우뚱한 자세가 오른쪽 종아리를 디딜 수 없는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너무나 당혹스러우면서도, '이제 당분간 배드민턴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 심각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실제 통증은 약 5초 후부터 밀려왔다. 처음에는 앉아서 조금 쉬면 좀 나아질 수도 있겠거니 기대했으나, 그 생각은 1분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통증은 점점 더 크게 몰려왔고, 이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일단은 가까스로 차를 몰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인근 정형외과에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홀로 침대에 누워 있으니, 갑자기 큰 우울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쉽게 낫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함과 더 이상 운동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이 상태로 회사를 다니며 회의도 하고 고객을 만나야 한다는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긴 했겠지만, 그 우울감의 한가운데에는 '늙음'이라는 부연 설명이 크게 써져 있었다. 진료 시작 30분 전에 병원 진료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그때 누군가가 이 근육 통증에 대한 진통제를 처방해 주기보다는, 우울하고 아픈 마음에 진통제를 놔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누가 '늙어감'을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생명이라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인데 말이다.
역시나 '비복근 파열'이었다. 의사는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은 초음파를 갖다 대면서, '이거 보세요. 근육이 여기부터 여기까지 엉망이 되었어요. 정상화되려면 6주 이상 소요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조건 덜 쓰면서 쉬시기 바랍니다.'라고 실실 대며 말했다. 나에게는 그 말이 '늙은 당신이 잘못을 했으니, 당신이 다 감당하면 된다.'라는 말로 들렸다. '이런... , 이런...'. 생각해 보면 정말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허접하게 감아 놓은 깁스를 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이 내 삶의 반환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소 3분이면 충분한 길을 15분 이상 걸려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다시 발길을 돌렸다. 주차장에 들러 차에서 배드민턴 백을 꺼내어 들고 왔다. 그리고 베란다 창고에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 배드민턴 옷들을 모아서 백에 넣고는 지퍼를 닫았다. 그 불편하고 짜증스러운 통증 속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내가 얼마 후에 저 백을 다시 꺼낼 수 있을까?' '아니, 다시 꺼낼 수는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40일이었다. 배드민턴과의 인연은 너무 강렬했지만, 너무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