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다음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우리네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 미묘한 차이에 대한 결정적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현상에 대한 공감 능력과 일상생활에서의 포용력 그리고 소유에 대한 절제력과 선악에 대한 분별력 등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 '일상에서의 작은 발견과 수용 그리고 그에 따른 삶의 변화'라고 하는 행복의 요소에 대해 언급해 보려고 한다.
나는 기계에 대해 잘 모른다. 혹시 자동차 관련 업계의 장남으로 태어났거나 혹은 공대에 갔더라면 상황은 또 달라졌겠지만 보통 사람은 그러한 기계와의 친밀함이 주어진 환경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차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도 하고 또 각 부품이 어떤 역할을 하고 또 어떠한 신기능이 생겼는지 크게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자동차를 구매해서 주행거리가 10만 km 정도에 가까워지면, 스스로 안전성에 대해 마음이 불안해져서 신차로 갈아타게 된다. 마침 그 시기가 찾아와 얼마 전에 자동차를 갈아탔다.
이번에 선택한 차량을 풀옵션으로 구매하면서 기술의 발전에 의한 다양한 기능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중에서 나의 삶에 획기적이고 포괄적인 변화를 가져온 기능이 하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오토홀드' 기능이다. 이 기능은 차량이 주행을 하다가 신호를 받기 위해 혹은 일시적으로 멈췄을 때, 차량의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정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신호 대기 구간이나 정체 구간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계속 밟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운전 중의 불편함을 줄여준다. 또 오르막길에서 멈추게 되었을 때 자동차가 미끄러지며 뒤로 밀리는 현상을 방지해 줌으로써 안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물론 모든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에 일부 단점도 있다. 먼저 주차할 때의 작은 불편함이 있다. 좁은 공간에서 주차를 하려고 하면 보통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오토홀드가 걸려서 주차에 걸리는 시간이 약간은 지연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동세차장을 이용할 때도 평소처럼 '오토홀드' 기능을 켜 놓으면 바퀴가 잠겨버리기 때문에 세차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차장에 들어가지 전에 '오토홀드' 기능을 해제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오토홀드 기능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바로 0.5초의 여유가 주는 '느긋함' 때문이다. 오토홀드 기능을 꺼놓은 상태에서는 차량의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차량이 자동으로 스르르 움직이고 그래서 연이어 엑셀을 밟으면 빠르게 가속할 수가 있다. 그래서 늘 신호등에서 멈췄다가 출발할 때 브레이크와 엑셀 사이의 여유 공간이 없었다. 그러니 시간과 공간이 주는 어떤 작은 여유나 틈이 없이 운전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좁은 공간에 주차를 할 경우에 자주 앞으로 뒤로를 반복해야 하는데 그때 마음의 속도에 비례하여 차량이 눈치껏 움직여 준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0.5초가 나에게 찾아왔고 또 나의 삶을 바꾸고 있다. 평상시 무슨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처럼 숨가쁘게 운전을 하다가, 오토홀드가 선물한 0.5초의 여유로움을 일상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신호등에 멈춰 서거나 혹은 정체로 인해 멈췄다가도 브레이크와 엑셀 사이를 차지한 0.5초에 익숙해져 버렸다. 게다가 오토홀드 상태에서 엑셀을 누르면 그 반응속도가 다소 더디다는 점도 0.5초의 여유로움에 한 몫을 더해준다.
그렇게 운전습관에 0.5초를 적용하면서 내 일상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어떤 민감한 사안을 두고 논쟁을 할 때나 혹은 결국 후회할 게 뻔한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0.5초의 오토홀드 기능이 동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오토홀드'라는 글자만 봐도 자동으로 반 박자 혹은 한 호흡이 멈춰진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오토홀드가 내 마음까지 컨트롤하기 시작했음을 인정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능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나 성격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에서 0.5초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게 되는가? 그들의 삶에 0.5초의 오토홀드 기능을 옵션이 아닌 디폴트로 장착해 주고 싶다. 우리 모두의 여유와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P.S.
실은 이번에 중고차로 떠나보낸 2014년식 그랜저에도 오토홀드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약 10여 년 동안 동고동락을 하면서 그 기능은 한두 번 켜봤을까 말까 했던 것 같다. 그때는 그 새로운 기능이 답답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활용가치가 캐바캐인 섞어팔기 '옵션'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 탓인가? 지금은 이 기능이 참 신기하고 고맙게 느껴질 뿐이다. 내 운전습관을 큰 맥락에서 변화시켜 주었고 또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