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나쁜 놈이 저질러 놓으면 착한 이가 해결한다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엔 나쁜 놈들과 착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좋든 싫든 그들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 보통 그 나쁜 놈들은 단조로운 일상에서는 좀처럼 분별하기 어렵지만, 매우 특별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는 곧바로 본색이 드러난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주변에서 마주하게 되는 선한 것들과 악한 것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 눈앞에 보이는 생명들의 표정과 손길 그리고 목소리와 체온 등 오감으로 느껴지는 다양한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이 매우 안정적이라면 평생 특별하고 극단적인 상황에 맞닥뜨려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아 속에 어떠한 형태의 나쁜 기운이 존재하는지 아예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는 주변의 특정 인물에 대해서 나쁘다거나 착하다고 단정 짓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일일이 그 명암을 따지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을 규명하려다가 오히려 불편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스스로도 힘들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폭과 횟수를 좁혀 나가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된다. 암튼 대인관계의 범위와 상관없이 나쁜 놈들과 착한 사람들은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정과 직장에서 혹은 사회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자아 속에서도 착한 기운과 나쁜 기운의 역할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 역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나쁜 놈이 뭔가 저질러 놓으면 착한 이들이 그걸 해결한다."



가족

구성원이 단출한 핵가족이 아닌 한, 어느 집안을 들여다봐도 그 내부에는 문제나 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은 상속의 타이밍이 왔을 때 절정에 이른다. 바야흐로 상속에 대해서는 누구든 만족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 시즌이 오면 그동안 우애가 각별했던 집안도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나는 경우들이 많다. 물론 부모가 건강하게 살아계실 때에는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부모 중의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게 되면, 모두의 욕심이 모두의 불신으로 확장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쁜 놈이 나타난다. 공평하게 배분해야 할 유산을 독식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고 그런 경우 대부분 부모의 노후 생활비까지도 다른 착한 형제들의 몫이 되고 만다. 어느 집안이든 욕심 많은 나쁜 자식 하나가 사건을 저질러 놓으면, 나머지 착실한 형제들이 그것을 해결해줘야 한다.


직장

그런 경향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개인적으로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회사와 동료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알량한 백그라운드와 노동조합의 힘을 빌려 한량처럼 회사일을 한다. 그런데 그 갭이 너무 크다. 성실한 이가 10의 일을 하는 반면, 어떤 이는 1만큼도 처리히지 못한다. 그런데 그 공헌도가 인사 고과나 급여에 고스란히 반영되지 못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직장 생활은 적당히 눈치껏 하면 된다'는 생각이 대세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나쁜 놈들은 업무 관련한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발생시켜 놓고는 황급히 다른 부서로 도망쳐 버린다. 그러면 남아 있는 착한 사람들이 이미 저질러 놓은 그 사건들을 해결해줘야 한다. 결국은 그 리스크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어느 직장에서든 나쁜 놈들이 저질러 놓은 문제들을 성실하고 착한 직원들이 해결하고 감당한다.


사회

현대 사회에서는 나쁜 놈들이 우선권과 기득권을 가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권력을 이용하여 죄가 없는 사람을 얼마든지 감옥에 가둘 수 있고, 조직이나 종교의 힘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힘이 없다. 그래서 시민단체를 구성하거나 혹은 집회를 통해 이를 널리 알리고 힘을 모으려 한다. 그러나 우선권과 기득권을 가진 나쁜 이들의 억압과 횡포는 끝이 없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을 지치게 하고 결국 무관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사회에서든 이기적인 나쁜 놈들이 저질러 놓은 부조리와 불평등을 착한 시민들이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


역사

역사적으로 이 지구에서는 회고하기도 싫은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은 극심한 억압과 잔인함으로 킬링필드에서 국민의 25%인 약 250만 명을 숙청이나 기아로 죽게 만들었고, 일본의 군국주의를 이끌었던 히데키 도조는 약 500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고, 히틀러는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 민족을 학살하고 제2차 대전을 일으켜 1,700만 명이 사망하게 했다. 또 스탈린은 대숙청을 통해 2,300만 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으며, 마오쩌둥은 중국을 혁신하려는 정책으로 약 7,000만 명의 인명을 앗아가게 만들었다. 이 희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참담하다. 인류 역사에서 이러한 대표적인 나쁜 놈들이 저지른 만행을 남아 있는 착한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있는 과정이다. 물론 이미 발생한 끔찍한 이 사건들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 그저 온 인류가 함께 나서서 다시는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반성하고 연구하고 학습하는 일 밖에 없다. 그리고 허탈하게 생을 마감한 그들을 위해 애도해야 한다.


마음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어떤 나쁜 놈들이 있다. 그것은 보통 순간적인 '화'에서 출발한다. 때로는 '시기'와 '질투'에서 시작될 때도 있다. 우리는 그것들이 동작하는 순간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컨트롤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얼마나 더 공을 들이고 도를 닦아야 나쁜 생각과 나쁜 기운을 마음 안에서 박멸할 수 있을까? 물론 나이가 들수록 그 빈도가 뜸해지고 또 그 세기도 약해지지만 '화' 혹은 '시기와 질투'라는 나쁜 놈들에게 자아가 정복당하는 꼴을 보면 한참 동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 나쁜 놈이 마음을 한번 헤집어 놓으면, 결국 착실하고 순수한 기운들을 조용히 불러와 나를 보살피고 치유해야 한다. 그렇다. 세상엔 나쁜 것과 좋은 것이 공존하고 있고, 나쁜 것들이 저질러 놓으면 좋은 기운이 그것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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