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대접받는다는 것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누군가로부터 서프라이즈한 서비스를 받고 싶거나 평상시와는 다른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런 간헐적 이벤트들은 개인의 단조로운 일상에 '의미'와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의미와 생기에 대한 반응은 개인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누군가로부터 아주 작은 친절을 받아도 감동을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지위나 권력을 이용하여 그 의미와 생기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대접은 절대 흉내내거나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최근에 서울 모처에 위치한 5성급 호텔에서 숙박을 한 적이 있다. 예전과 달라진 명절 연휴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뭔가 화려한 것들을 누려보자는 의도였다.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무엇에 이끌려 럭셔리한 호텔 문화를 좋아하는지 직접 체험을 통해 알아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친절로 무장된 프런트 여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을 배정받았다. 태어나서 가장 높은 곳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2박을 하는 동안 실내수영장을 두 번 이용하고 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또 저녁에는 인근 공원길을 산책하고 밤에는 스카이라운지 바에서 값비싼 칵테일을 마시고 아침에는 TV속의 그들처럼 조깅을 했다.



그런데 2박3일동안 호텔에서 지내면서 느낀 결론은 지불한 비용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시설과 서비스로 보답받는다는 것이었다.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려 깊은 행동이나 한마디의 말로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어떤 이벤트나 혜택을 통해 특별하다는 의미를 부여받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저 내가 지불한 대가만큼 고스란히 친절과 편리로 교환해 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객이 또 다른 친절을 원한다면 그들은 또 다른 비용을 청구하는 물물교환 시스템인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대접받았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지불한 돈의 가치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았다'라고 평가할 것이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나 혹은 대접받고 있다는 마음은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최고급 호텔에서 이백만원 어치에 가까운 친절을 받고 돌아온 며칠 후가 내 생일이었다. 그날 저녁에 미역국과 잡채 그리고 볼락구이 등이 차려진 생일상을 받았다. 어중간한 시대에 태어나 부모와 자식 그리고 나라까지도 케어해야 하는 우리 6,70년대생이 중년의 생일날에 잡채를 대접받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저 볼락구이에 미역국이어도 충분히 훌륭한 대접이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날 저녁 대학생인 아들로부터 전해진 편지였다. 갓 스무 살 된 아들에게 편지를 받는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손편지를 읽고서 한참 동안 마음이 먹먹하고 황홀했다.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 일부를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 중략... 같은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같은 남자로서 너무나도 멋있는... OOO의 아들로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인생에 이런 찬사가 있었을까? 앞으로 남은 여생에서 이런 대접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그 편지의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인정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또 다른 숙제가 나에게 건네진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죽기 직전까지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그로부터 지금과 비슷한 평가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약소하게라도 진정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매일매일은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나를 돌아보려 한다. 대접받을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려 한다.



P.S.

극단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일수록 실제 일상에서 그 서비스만큼 되돌려 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기엔 그러한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보상받고 싶은 마음을 강압적인 일탈 행동이나 돈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접'은 지극히 형식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누군가로부터 진정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보라. 그러기 위해 진심 어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먼저 대접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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