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악마의 유혹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자세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뜻밖의 회사일로 인해 가볍지 않은 화병이 생겼고 또 그에 따른 합병 증상으로 인해 '불안장애'가 생겼다. 처음 이 현상을 발견했을 때는 금방 회복될 거라 예상하고 무심하게 몇 개월을 보냈는데, 예상외로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결국 3주 정도를 고민하다가 결국 집 근처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고, 의사는 약 5분 정도 나의 설명을 듣고는 내 증상에 맞는 약이라며 처방해 주었다. 볼록한 약봉지를 들고 나오는데... 뭐랄까?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씁쓸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3일 연속해서 약을 복용했다. 몸이 곧바로 약의 효능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군 복무 시절 이후에 낮잠을 자본 적이 없는 내게 아침부터 졸음이 밀려왔고 또 머리 윗부분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전체적인 컨디션이 마치 내 몸 같지 않은 것 같은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했다. 현재 나를 둘러싼 이 현상들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어떤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늦기 전에 '해결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처방받은 일주일 치의 약봉지를 아직 여유가 있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날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해서 평일에는 보통 10,000보, 주말에는 15,000보 정도를 걸었었는데, 걸음 수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먼저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아파트 단지 내 산책길을 30분 정도 걸었다. 평일에 업무를 하다가도 짧은 휴식 시간들을 모아 틈틈이 걸었다. 점심시간에도 식사 후에 남는 황금 시간을 주변 공원이나 뒷동산을 걷는 데 활용했다. 오후에도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자투리 시간들을 선택하여 건물 내부를 걸었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도 식사를 한 후에 곧장 밖으로 나가 탄천변을 걸었다.


언제 어디서든 걷기 시작하면 곧바로 지원군들이 합류했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영특한 재주가 있는 바람이 함께해 주었다. 나에게 오라며 끊임없이 몸을 흔들면서 모두를 다 안아주는 숲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줄기차게 노래하는 산새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혹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낯선 동시대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길이 있었다. 어디에든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이 익숙해질 무렵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했었는지 그 이유 조차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아마도 그 한 걸음마다 털털털 또 한 걸음마다 털털털 그 이유들이 작은 조각들이 되어 하나둘씩 흩어져 버린 모양이다.




끝으로, 워킹과 러닝이 스트레스를 비롯한 다양한 병의 극복에 효과적인 이유들을 하나둘씩 살펴보자.


#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의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몸의 컨디션이 항상 최상일 수는 없다. 처음 워킹을 출발할 때 몸의 어딘가가 불편할 수도 있다. 요추의 한 곳이 찌릿찌릿하게 저려올 수 있고, 무릎이나 종아리의 어떤 특정한 근육이 통증을 일으킬 때도 있고, 혹은 발바닥의 특정 부위가 신경 쓰일 정도로 욱신거릴 때가 있다. 그리고 어떤 때는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하복부의 어딘가가 불편하게 당기기도 한다. 그런데 일정한 속도로 계속 걷다 보면 내 몸이 자정 작용을 하고 자가 치유를 한다. 어느새 그 통증들은 저절로 사라지고 건강한 발걸음이 빠르게 땅을 차고 오른다.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 몸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이다.



# 뇌가 긍정적인 작동을 하도록 컨트롤한다.


우리의 뇌 구조는 복잡하고 신비스럽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원리들을 조금씩 적용해 보면 어떤 특별한 상황들에 대해 응급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일례를 들자면, 편도체는 우리 뇌에서 두려움이나 불안감과 같은 반응을 유발하는 뇌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이 편도체를 우리 뇌의 어떤 기능이 컨트롤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이성적 사고, 자기 조절 그리고 감정의 균형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전전두피질은 불안한 편도체가 과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전전두피질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을 해줘야 한다. 이 편도체와 전전두피질의 균형을 위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 워킹, 러닝, 스트레칭, 요가 등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는 '불안증'을 다스리기 위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하나의 사례이다.


# 갖춰야 할 환경이 필요 없고, 특별한 복장이나 도구가 필요 없다.


아무런 투자 없이 언제 어디서든 실행 가능하고 게다가 그 효과는 가장 좋은 운동이 바로 워킹과 러닝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운동이 바로 '러닝'이다.


# 일상에서 보지 못한 또다른 세상을 발견한다.


현시대의 공간 이동 방식은 속도와 편의성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그러니 주변의 작고 소소한 일들은 잊고 살아가게 된다. 아마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내 공원에 어떤 종류의 나무가 살고 있는지 혹은 어떤 꽃이 피고 지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무를 발견하고 꽃을 발견하고 그리고 길을 발견하는 일들은 참으로 소중한 일들이다. 우리는 그들과 친해져야 한다. 누구든 삶의 끝이 있고,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 하체가 튼튼해지고 온몸에 근육이 생긴다.


최근 주변에서 관찰되는 헬스클럽의 숫자가 거의 편의점 수준이다. 건강과 외모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헬스클럽에 다니면서도 근력운동은 하지 않는다. 몸의 근력도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방식이 좋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근력운동은 워킹과 러닝이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을 훌륭한 근육질로 만들 수 있다.


# 생각이 정리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난해한 일들에 파묻혀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어떤 고민이나 문제들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그것들에 대한 해결책이 곧바로 강구되지는 않는다. 그럴 때는 무조건 걸어라. 터벅터벅 걷다 보면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결정되고,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도 될 것이 정해진다. 그리고 불현듯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 내 몸에 도파민이 생성된다.


계절에 상관없이 햇볕을 쬐면서 걸으면 각성효과로 인해 도파민이 분비된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 다른 일들과 병행하면 더욱 조화롭다.


걷기가 단조로운 동작의 반복이라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동반자와 함께 하면 된다. 음악,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 통화 등을 병행하면 더욱 조화롭게 워킹을 실행할 수 있다. 물론 워킹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다른 부가적인 요소들이 저저로 필요 없게 된다.



P.S.

보통은 우리 몸의 어느 한 곳이 아프다가 그곳이 어느 정도 치유가 되면 또 다른 곳이 아프기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 몸의 가장 신비로운 기능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화병'으로 인해 유발되는 증상들은 다양하게 또 한꺼번에 닥쳐왔다. 먼저, 안면홍조 현상이 가장 심했다. 그리고 우울감, 불안 증세, 이명, 가슴답답증, 새벽눈뜸증(2~3시), 안구건조증, 소화불량, 두통, 잇몸병 등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창과 방패를 휘두르며 그들과 맞서 싸워봤으나, 한꺼번에 떼로 달려드는 바람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한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늘 희망은 찾을 수 있는 법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지금 나에게 워킹은 삶의 희망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79. 응급구조용 백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