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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대문간(大門間)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간절히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뒷동산 언덕배기에 올라 하염없이 동구 밖을 바라본다고 해서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인생살이의 최고의 대명제는 ‘행복’이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가치는 노력과 정성을 다해 꼼꼼히 하나둘 쌓아가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태어날 때부터 행복이라는 선물을 지니고 왔다면 그것은 진짜 행복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지원으로만 얻은 행복 역시 가짜 행복일 것이다.
나는 최근 다양한 경로를 통해 행복한 할아버지들을 연거푸 만났다. 직접 마주하기도 했고, 대중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기도 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지금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그분들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 지나온 시절과 무관하게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는 점이다. 이제 나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현재를 소개하고, 누구에게나 다가올 노후의 삶에 참고가 되길 바란다.
올여름 휴가로 여수를 여행하기로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2박 3일 일정을 잡았다. 네 번째 여수 여행이었지만 이번에는 더욱 다양한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여수섬섬길’을 시티투어버스로 돌아보는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다. 여수섬섬길은 2026년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앞두고 여수 돌산에서 고흥 영남까지 11개 섬을 잇는 해상교량들을 일컫는다. 버스에 오르자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여정의 기원과 특징, 여수의 대표 먹거리와 관광지를 꼼꼼히 설명했다. 7시간 동안 5개의 대교와 7개 명소를 거치는 동안 모든 관광객은 그의 맛깔스러운 해설에 빠져들었다. 유머와 전설 같은 이야기를 곁들인 말솜씨에 모두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한여름이라 기온이 36도를 넘었고, 불쾌지수도 극에 달했지만 할아버지의 노련한 진행 덕분에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그의 열정과 프로의식이었다. 오후 세 시경 ‘여자만’의 갈대밭과 갯벌을 둘러보는 일정이 있었는데, 뜨거운 햇볕에 관광객 대부분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두 번째 권유 끝에 우리 가족을 포함해 단 7명만이 동행했을 뿐이다. 땡볕 아래에서 편도 1km를 걸어야 했으니 무리가 될 만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윗옷이 다 젖을 만큼 지친 상황에서도 코스를 생략하지 않았다. 끝내 둑길에 이르러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일행 모두의 독사진을 찍어주셨다. 그 모습에서 ‘이분은 직업에 분명한 사명감을 가진 분이구나’라는 존경심이 절로 생겼다. 행복하게 일하는 진짜 프로였다.
며칠 전에는 집 도어록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배터리를 갈아도 해결되지 않았고, 포털을 검색해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스티커에 적힌 열쇠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분은 연로한 할아버지였다. 그는 상황을 자세히 묻더니 “말씀만 들어도 회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델명을 보니 내용연수도 다 된 듯합니다. 수리해도 재사용할 확률은 5%도 안 되니 교체 제품을 가격대별로 준비해 가겠습니다.”라고 하셨다.
1시간도 채 안 돼 두 대의 짐수레에 장비와 제품을 가득 싣고 오셨다. 현장에서는 무려 15분 이상 꼼꼼히 점검하며 집중하셨다. 내가 감히 말을 걸 수 없을 정도였다. 이윽고 그는 말했다. “예상대로 회로 이상이 심각해 기존 제품을 쓰기 어렵습니다. 제가 가져온 네 가지 제품 중에서 선택하셔도 되고, 다른 제품을 알아보셔도 됩니다.” 그의 진지한 태도와 전문성 앞에서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장인 정신을 가진 프로였다.
회사 프로젝트를 위해 별도의 제안룸을 꾸려야 하는 일이 생겼다. 책상 2개와 의자 2개를 옮겨야 했는데, 용달차를 부르기엔 애매하고 승용차로는 무리였다. 떠올린 것이 다마스퀵이었다. 가까운 업체에 전화를 하니 “30분 안에 도착합니다. 저희가 상·하차를 해드리면 4만 원, 직접 하시면 2만 원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곧 카니발 차량이 도착했는데, 2열과 3열은 짐칸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이윽고 할아버지 두 분이 웃으며 내리더니 짧은 구령을 맞춰 부르고, 순식간에 책상과 의자를 싣고 출발했다. 손발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능률적인 움직임이었다. 목적지에 물건을 내려놓고 돌아가서는 아마 장기나 바둑을 이어 두셨을지도 모르겠다. 효율적인 호흡의 듀엣이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 속에서도 행복한 할아버지들이 많이 등장한다. 36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산속에서 장풍을 수련하는 강수상(강키호테) 할아버지, 무술 18단으로 동물들의 아버지 역할을 하며 “죽을 때까지 일하며 살겠다”는 헬로우 미스터장 할아버지, 풍향계와 물뿌리개, 개밥통과 도르래 같은 발명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노석환 할아버지,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며 그날그날을 즐기는 정민영 할아버지, 하루에 1억 원어치 행복을 누린다며 연봉을 365억이라 표현한 심정규 할아버지, 시를 쓰며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응선 할아버지까지. 569편에 달하는 방송 속에는 개성 넘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행복한 할아버지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분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이 시대의 어른’ 김장하 할아버지다. 그는 평생 장학사업을 이어왔다.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배우지 못한 이유가 오직 가난 때문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후대가 이어받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또 한약업에 종사하며 번 돈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얻은 이윤이니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학생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했다. 그들은 ‘김장하 키즈’가 되어 돌아왔다. 그들이 “대학 가서 공부 안 하고 데모해서 죄송하다”고 하면 “그 역시 국가를 위한 봉사”라며 격려했고, “장학금을 받았는데 특별한 인물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면 “힘 있는 자들이 겁 없이 설치면 사회는 몰락한다.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해 간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 모두가 새겨야 할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최고 품격의 어른이다.
이 행복한 할아버지들의 삶을 떠올리며 나는 몇 가지 단어를 정리했다. 첫째, 변함없는 소신. 둘째, 크고 작은 봉사정신. 셋째, 자유로운 영혼. 넷째, 자신을 향한 진솔함. 그리고 눈을 감고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 지도자들을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 문장은 이것이었다. “힘 있는 자들이 겁 없이 설치면 사회는 몰락한다.” 이 행복한 할아버지들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이자 고마운 어른이 아닐까.
P.S.
김장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20~30년 후, 나는 이런 모습으로 늙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