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술 권하지 않는 사회

(PP)

by 윤호준

한때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 전통과 비정상적인 회식문화의 덫에 걸려 술 때문에 휘청거린 적이 있었다. 직장에서 승진을 잘하기 위해 ‘음주량’이 하나의 덕목으로 작용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원시적인 문화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선천적으로 술을 못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약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사회와 직장, 친구와 동료 모두가 ‘술 권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달라졌다. 얼마 전 비슷한 연배의 대학생들에게 술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답은 예상 밖이었다. “술, 담배에 1도 관심 없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젊은이가 절반을 넘었다. 게다가 코로나19는 회식문화에 결정적인 변화를 던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 ‘술 권하는 사회’는 경고를 받았다. 그 결과, 개인이 주량에 맞춰 마시는 문화가 상식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이제 강요하는 술자리는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거리 두기가 완화되자 곧바로 회식이 늘었고, 2차, 3차까지 이어지는 일도 다시 잦아졌다. 자제하던 동호회와 친목모임까지 재개되면서 예전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분위기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지난주에는 접대와 동기 모임을 연이틀 이어가야 했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월요일 약속은 건강한 술자리였다. 셋이 저녁을 하며 현실적인 이슈를 나누고,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반주처럼 나눠 마시며 두 시간 정도를 흐뭇하게 보냈다.


문제는 수요일과 목요일이었다. 수요일은 접대 명분의 자리였지만, 결국 네 시간 넘게 이어졌고, 모두가 주량을 초과하며 과음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난 그 자체였고, 다음 날은 숙취에 시달렸다. 숙취해소 음료, 칡즙, 콩나물 해장국의 도움을 받아 정오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이 들자 목요일 약속이 걱정됐다. “오늘은 동기 모임인데, 술은 정말 보기조차 싫은데…” 마음은 갈등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첫 만남이었고, 빠질 핑계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그래, 술만 안 마시면 되지. 동기들이 이해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모임에 나갔다.


3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동기들의 말투와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누군가는 공격적으로 말하고, 누군가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살리려 애썼고, 또 다른 이는 여전히 말없이 웃기만 했다. 나는 만나자마자 “오늘은 사정상 술을 마시기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대꾸는 없었고, 대화는 흘러갔다. 테이블 위에는 술병이 하나둘 쌓여갔다.


한 시간이 지나자 불만이 터졌다. “정말 안 마시는 거야? 이제 마셔도 되잖아.” “몸 다 회복됐을 텐데?”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대응했지만, 8시, 9시가 지나자 압박은 노골적이 되었다. 결국 10시가 넘었을 무렵, 테이블 위에는 소주 12병이 놓였고, 한 동기가 정색하며 말했다. “네가 지금 그러는 건 우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를 무시하는 행동이야. 왜 술을 안 마시는 거냐?”


순간 아찔했다. 쉰 살이 넘어 처음 겪은 인격적 모욕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원인이 다름 아닌 내가 좋아하는 ‘술’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단순히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길들여 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술 권하는 악마들’은 경고받아야 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격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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