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
뜻밖의 회사 일로 인해 화병이 생겼고, 그로 인한 합병 증상으로 ‘불안장애’까지 찾아왔다. 처음에는 금방 회복되리라 여겨 무심히 몇 개월을 보냈지만, 예상외로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3주 정도 고민하다가 집 근처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의사는 내 설명을 5분쯤 듣고는 증상에 맞는 약이라며 처방전을 내주었다.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약봉지를 들고 나오는데,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저녁부터 3일 연속으로 약을 복용했다.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 군 복무 시절 이후 낮잠이 없던 내게 아침부터 졸음이 밀려왔고, 머리 윗부분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찾아왔다. 마치 내 몸 같지 않은 기묘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지금의 현상들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될 수 있다. 늦기 전에 해결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일주일 치 약봉지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날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해 평일에는 보통 만 보, 주말에는 1만 5천 보를 걸었는데, 걸음 수를 더 늘렸다. 아침 5시에 기상해 단지 내 산책길을 30분 걷고, 업무 중에도 짧은 휴식 시간을 모아 틈틈이 걸었다. 점심시간에는 식사 후 남는 황금 같은 시간을 공원이나 뒷동산 걷기에 썼다. 오후에는 자투리 시간에 건물 내부를 돌았고, 저녁 식사 후에도 곧장 나가 탄천변을 걸었다.
걷기 시작하면 지원군들이 합류했다. 먼저 바람은 기분 좋게 마음을 흔들어 주었고, 숲은 품 넓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새들은 평화를 위해 노래했고, 낯선 동시대인들이 같은 방향 혹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이 있었다. 어디에든 길이 있었다. 길이 익숙해질 무렵에는, 정작 무엇 때문에 힘들어했는지 그 이유조차 잊게 되었다. 걸음마다 ‘털털털’, 또 한 걸음마다 ‘털털털’, 이유들이 작은 조각으로 흩어져 버린 듯했다.
1. 걸으면 걸을수록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몸의 컨디션이 항상 최상일 수는 없다. 워킹을 시작할 때 요추가 찌릿하게 저려오거나 무릎·종아리 근육이 통증을 일으키고, 발바닥이 욱신거리기도 한다. 어떤 날은 가슴이 울렁거리거나 하복부가 당기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 속도로 계속 걷다 보면 몸은 자정 작용을 하고 자가 치유를 한다. 어느새 통증이 사라지고 건강한 발걸음이 땅을 힘차게 차고 오른다.
2. 뇌가 긍정적으로 작동한다
뇌 구조는 복잡하고 신비롭지만, 과학이 밝혀낸 원리를 조금만 적용해도 응급 대처가 가능하다. 두려움과 불안을 유발하는 편도체는 전전두피질의 제어를 받는다. 전전두피질은 이성적 사고와 감정 균형을 담당하며, 편도체가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이 균형을 위해서는 글쓰기, 워킹, 러닝, 스트레칭, 요가 등이 효과적이다. 이는 불안증을 다스리는 과학적 방법의 하나다.
3. 특별한 장비나 환경이 필요 없다
워킹과 러닝은 언제 어디서든, 별다른 투자 없이 실행할 수 있고 효과도 탁월하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부유한 이들이 즐겨 하는 운동이 바로 러닝이다.
4. 일상에서 보지 못한 세상을 발견한다
속도와 편의성 중심의 현대 생활은 작은 것들을 잊게 만든다. 아파트 단지의 공원에 어떤 나무와 꽃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나무와 꽃, 그리고 길을 발견하는 일은 소중하다. 우리 삶의 끝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니, 자연과 친해져야 한다.
5. 하체가 튼튼해지고 온몸에 근육이 생긴다
헬스클럽은 편의점만큼 흔해졌지만, 나는 근력 운동을 따로 하지 않는다. 근력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워킹과 러닝만으로도 온몸을 훌륭하게 단련할 수 있다.
6. 생각이 정리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우리는 복잡한 일들에 둘러싸여 산다.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 때는 무조건 걸어라. 터벅터벅 걷다 보면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갈라지고,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될 일이 정리된다. 그리고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7. 도파민이 생성된다
햇볕을 쬐며 걷다 보면 각성 효과로 도파민이 분비되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8. 다른 활동과 병행하면 더욱 조화롭다
걷기는 단조롭지만 동반자, 음악, 오디오북, 통화 등과 병행하면 더 즐겁다. 그러나 걷는 자체를 즐기게 되면 부가 요소조차 필요 없어진다.
P.S.
보통은 몸의 한 부위가 아프다가 치유되면 또 다른 곳이 아프기 마련이다. 그런데 화병이 유발한 증상들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안면홍조, 우울감, 불안, 이명, 가슴 답답증, 새벽 눈뜸, 안구 건조, 소화불량, 두통, 잇몸병까지… 처음엔 맞서 싸우려 했지만, 몰려드는 증상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워킹은 삶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