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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갈에누운백구 Jul 07. 2023

<하나와 앨리스>, 기억의 앨범을 뒤적이면

 영화 속 두 개의 색감, 두 번의 반복편집이 갖는 의미는?

기억이 비디오와 같아서 행복했던 추억을 돌려보고 또 돌려볼 수 있다면 어릴 적 풋풋한 사랑의 기억이 담긴 비디오는 색이 다 바랬을 것이다.

<하나와 앨리스>는 잊지 못해 계속해서 돌려보다 하얗게 색이 바래버린 비디오 같은 영화다. 영화의 희뿌연 색감은 하나와 앨리스의 찬란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더욱 아름답게 색칠해주는 듯하다. 그 기억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의 추억을 보정해주는 시간의 색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가지 색감의 의미     


영화엔 두 가지 색감이 그려진다. 하나는 평범한 일상의 색, 다른 하나는 파스텔 톤의 희뿌연 색. 마사시 선배가 나올때마다 파스텔 톤으로 변화하는 영화의 색채는 하나와 앨리스의 기억 속에서 마사시 선배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몇 번이고 다시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에 저장된 하나의 기억에서도 더 많이 떠올리게 되는 얼굴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파스텔의 톤은 마사시 선배에게만 한정된 색은 아니다. 하나와 앨리스가 친구들과 즐겁게 발레 연습을 할 때도, 마지막 장면에서 앨리스가 황홀한 발레 연기를 선보일 때도 화면엔 뽀얀 추억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영원히 저장해놓고 계속 떠올리고 싶은 순수했던 기억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이성 친구와의 설레는 순간만 담겨있는 건 아니다. 하나와 앨리스에게 발레는 순수했던 학창 시절,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근원지였을 것이다.     


어릴 적 앨범을 잘 뒤져보면 비슷하게 웃는 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분절된 에피소드, 파편화된 기억     


<하나와 앨리스>를 하나의 일관된 서사 안에서 온전히 감상하긴 어렵다. 파편처럼 분절돼있는 에피소드는 소녀들의 찬란했던 순수의 시간을 한데 모은 기억의 안식처를 하나씩 몰래 엿보는, 조금은 음흉해 보이는 염탐의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앨리스가 아빠와 다리 위에서 만나 추억을 쌓아가는 장면, 하나가 거품 묻은 손으로 마사시 선배와 손을 잡고 달리는 장면, 앨리스가 빗 속에서 요상한 춤을 추는 장면.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마사시 선배의 삼각관계라는 중심 플롯에선 조금 벗어나 있지만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면들을 보고서도 팔짱을 낀 채 매서운 눈으로 서사의 탈선을 지적할 방도는 없다. 이 장면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슬그머니 웃음이 지어지고 그것만으로 서사 안에 비집고 들어갈 이유를 충분히 해명한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놓은 유년의 앨범 중간에 툭 튀어나온 엉뚱한 시간의 엉뚱한 사진에 웃음 짓고 그 자리의 권리를 내어준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기억의 앨범은 그렇게 언제나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는 아름다운 추억의 돌출된 스크랩들로 가득차 있다.     


앨범엔 이런 기묘한 포즈의 사진들이 생각보다 많다

 반복 편집의 의미     


그 점에서 영화가 하나의 장면을 반복 편집하는 것은 영화의 매력을 더해주는 선택이다. 같은 숏의 같은 구도 안에서도 영화는 점프컷으로 장면을 두 번 반복해 편집한다. 이를테면 하나가 샷따에 맞고 쓰러진 마사시 선배에게 기억 조작을 감행하는 장면.      

자신에게 고백했던 사실을 기억하냐고 마사시 선배에게 묻는 순간 하나는 눈을 두 번 굴리게 된다. 하나가 눈을 굴리는 똑같은 장면이 중복돼 두 번 편집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숏이 바뀌는 순간은 하나의 기억이 왜곡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하나와 마사시 선배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더라도 그렇게 샷따에 맞아 기억을 잃는 식으로 극적으로 커플이 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무미건조한 현실의 눈에서 하나는 쓰러진 선배를 ‘일반적으로’ 도와주며 호감을 쌓고 ‘자연스럽게’ 커플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때에 따라선 없었던 일도 충분히 드라마틱하게 재구성될 수 있다. 거기다 극적인 순간들을 짜맞춰 꿈같은 순간들을 전달해주는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라면, 기억을 풍성하게 처리해주는 반복 편집은 추억을 묘사하는 가장 정확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반복편집이 아니었다면 영화의 분위기는 공포가 되었을 수도 있다

사실 영화가 조각난 추억이 담긴 한편의 기억 앨범처럼 보이는 것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하나와 앨리스>는 일본의 초콜렛 킷캣의 발매 30주년을 맞아 만든 단편영화 4편을 이어붙인 영화이다. 온라인에서 영화형식의 짧은 영상을 연재하고 상품을 홍보하던 당시의 마켓팅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이 단편영화에 더해 감독이 추가로 찍은 연결 영상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아빠, 엄마가 등장하는 앨리스의 가정사와 오디션 현장 씬을 추가 촬영해 단편영화에 덧붙였다고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이 두 시퀀스가 있어야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고 감독이 믿었다는 얘기다.     


영화의 주 플롯인 세 친구의 삼각관계는 하나와 앨리스가 겪은 학창 시절의 가장 설레고 아름다웠던 순간과 일치할테지만, 그것만으론 하나와 앨리스의 사랑의 순간을 다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들의 순수했던 사랑의 기억은 어릴 적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에 더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순수했던 나에 대한 사랑이 합쳐져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삽입되는 오디션 현장에서의 아름다운 발레 장면은 그렇기에 마사시 선배와의 사랑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한번 정확한 시간에 영화라는 앨범에 도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지된 모습으로 끝없이 재생되는 기억 속 그 시절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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