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늘 겪은 사건은 내일의 우리를 얼만큼 변화시킬까? 이 질문 앞에서 한 사람은 어제까지 그가 겪은 사건들의 모음집이 된다. 그 중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을 것 같은 작은 사건도 있을 것이고,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거대한 사건도 있을 것이다. 삶을 바꿔놓는 거대한 사건의 순간을 맞이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가후쿠의 경우 그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며 그를 혼란스럽게하는 사건은 아내 오토의 외도이다. 가후쿠와 오토 사이에 낳은 아이를 잃은 이후부터 오토는 직장 동료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방송작가인 오토는 같이 작업하는 남자배우와 작품을 찍는 동안 잠자리를 갖고 작품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이상 행동을 오랜시간 유지해왔다. 가후쿠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가 아는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는다. 아내의 외도만 빼면 별 문제없는 결혼생활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가후쿠는 정체한다. 러시아 출장이 취소돼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외도를 직접 목도한 이후로 가후쿠는 언제나 그 사건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운전을 할 때도 대사연습을 할 때도 언제나 아내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 그의 삶 전체에 녹내장처럼 뿌옇게 내려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와 그 사건에 대해 얘기하기로 약속한 날 아내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가후쿠의 시간은 아내의 외도를 맞닥뜨린 시간에 그대로 멈춰버린다.
어쩌면 그것은 오토와 다카쓰키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외도를 벌이는 모습을 본 관객 또한 마찬가지다. 관객 또한 오토의 외도라는 사건 앞에 정체한다. 이제 가후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후쿠의 행동 뒤엔 오토의 외도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아내의 외도를 확인한 뒤에도 조용히 현관문을 나서고, 공항 호텔에 머물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아내와 화상통화를 하면서 사건의 정리를 미루는 가후쿠의 행동 뒤로 오토의 그림자는 커져간다. ‘오토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가후쿠의 의문과 ‘가후쿠의 행동 뒤엔 얼만큼의 오토가 남아있을까‘하는 관객의 의문. 3시간의 러닝타임은 모두가 정체해 버린 오토의 외도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한발짝씩 떨어져 모두의 시곗바늘을 현재로 조금씩 옮겨가는데 필요한 시간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40분이 지난 뒤에야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가는 이 영화의 시간감각은 남다르다. 오프닝 크레딧의 배경은 빨간색 사브를 타고 히로시마로 떠나는 가후쿠의 여정이다. 가후쿠는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그가 과거에 바냐 역을 맡은 바 있는 <바냐 아저씨> 연출을 제안받는다. 오토가 세상을 떠난 뒤 2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자동차 안에서 같은 연극 대사를 외우고 있으며 그의 대사를 도와주는 녹음 테이프 또한 오토의 음성이 담긴 테이프 그대로다. 히로시마에서 공연할 연극 또한 연출 기법의 변화는 없다.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소통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연출 기법은 더이상 새롭지 않다.
변한 것이 있다면 가후쿠가 더이상 그의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연극제의 규칙에 따라 가후쿠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전자의 자리를 미사키에게 내주게 된다. 하긴 그가 언제 자신의 차를 자기 의지대로 운전했던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 가후쿠는 영화에서 언제쯤 오토라는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진정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눈 쌓인 미사키의 옛 집에서 가후쿠가 진실을 마주하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눈물을 흘리며 “우린 틀림없이 괜찮을거야”라고 말하는 이 장면 이후 가후쿠가 오토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임은 분위기상 명백하다. 어쩌면 뻔하게까지 느껴지는 이러한 상실한 자의 성장서사는, 하지만 가후쿠가 이후 운전석에 다시 앉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으로 특별해진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매혹을 나는 이 지점에서 찾는다. 오토라는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탐정의 자리에서 오토의 흔적을 수습하는 유품 정리사의 자리로 가후쿠를 이동시키는 영화 속 또 하나의 연기지도. 사건을 통제하고 주도해 오토의 비밀을 풀어내는 탐정의 자리에서 물러난 가후쿠는 이제 오토가 남긴 흔적 위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쌓아갈 수 있다.
가후쿠는 미사키와의 여행에서 오토의 흔적을 정리하고 난 뒤 비로소 조연의 자리로 물러난다. 가후쿠가 다카쓰키를 대신해 주인공 바냐 역을 맡아 진행하는 연극에서도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수화로 긴 대사를 이어가는 소냐이며, 이후 부산에서 빨간색 사브를 이끌고 영화를 마무리 짓는 것은 미사키이다. 가후쿠가 오토의 흔적을 떠나보내고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짓지 않는 마지막 장면에 특히 주목 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오토의 수수께끼가 마침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줄곧 수수께끼의 정답에 목말라하던 관객에게도 희소식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새벽녁의 어둠 속에 그림자처럼 앉아있는 오토의 첫 등장을 바라볼 때부터, 가후쿠의 시선에서 줄곧 오토의 그림자를 탐색하던 관객은 영화의 시간을 정체시킨 것이 수수께끼 같은 오토의 비밀이 아니었음을 알게된다. 문제는 오토의 시간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본인만의 시간 속에서 끝없이 시간을 지연시킨 가후쿠의 시간감각에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만이 아니더라도 사실 영화는 내내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선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듯 상대를 묵묵히 받아들여야하는 순응의 명령이 수반되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를 침범해 사진을 찍는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카쓰키가 불운한 결말을 맞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 점에서 미사키와 오토가 어딘가 비슷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토의 외도라는 거대한 사건이 그의 삶에 갑작스레 들이닥치듯 미사키는 자동차로 상징화되는 가후쿠의 세계에 갑작스레 들어온다. 녹음된 오토의 음성은 점차 미사키의 음성으로 대체되며 오프닝 시퀀스에서 운전석의 오토 옆에 앉아 있던 가후쿠는 어느새 미사키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가후쿠와 미사키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결국 오토의 비밀에 마음을 열지 못했던 가후쿠의 과거를 위로하고 재편하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시간적 해법인 것이다.
나는 오토라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추리극이 한 사람의 시간감각을 따라가는 심리극으로 변화하는 지점에서 이 영화의 독창성을 본다. 시간은 흐르고 각자의 세계에서 흐르던 개별적 시간은 자동차 해치를 열고 담배를 피우는 미사키와 가후쿠의 손이 하나의 숏에서 합쳐지듯 현실의 시간에 합쳐진다. 이제 가후쿠는 40분간 오프닝 시퀀스를 진행하던 자신만의 시간감각에서 벗어나 타인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현재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상실과 회복에 대한 <드라이브 마이카>의 이야기가 뻔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 또한 이 영화가 가진 뒤늦은 장르 변화의 순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동차를 타고 있다는 사실도 잊게 만드는 미사키의 운전실력처럼,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인지하게 되는 영화 내내 낮게 깔린 자동차 엔진소리처럼,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다가온 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