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채우느라 공간을 잃는 오류를 다시는 범하고 싶지 않다.
2013년 해외 이주를 위하여 물건을 처분하였다.
중고나라, 나눔, 버리기 등등을 하며많은 물건을 처분하였다.
살림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참 힘들었다.
사실, 물건을 버리는 행위는 쉽다.
그러나 버리는 품목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판단하는데 많은 시간을 잡아 먹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힘들어서 아무 생각없이 다 버리게 된다.
버리는 일에는 정말이지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물건을 처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이제는 집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고 싶지 않다.
나의 작은 집에서 활기찬 몸, 가벼운 정신, 변화와 성숙하는 좀 더 나은 내일의 모습을 기대하며 살고 싶다.
작은 집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
이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할 때 작은 집에 맞는 가전제품을 골랐다.
사실 가전제품 중 심플 라이프를 적용할 만한 것이 냉장고이다.
요즘엔 냉장고 파먹기도 유행할 정도로 냉장고에 대한 스토리가 많다.
음식을 잔뜩 쟁여놓고 산다는 증거이다.
냉장고는 346리터를 골랐다.
한국에서 살 때는 676리터의 양문형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사용했었다.
싱가포르 집에는 364리터의 파나소닉 냉장고가 있었다.
상 냉장, 하 냉동형. 처음에는 ‘이 작은 냉장고로 어떡하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는데 이 작은 냉장고로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싱가포르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아는 친구가 외국인 아줌마를 초대해서 같이 그 집에서 식사한 적이 있다.
친구 집에는 빌트인 냉장고, 본인이 한국에서 가져온 700리터 대의 양문형 냉장고, 김치 냉장고가 있었다.
그걸 본 외국인 친구가 '너네집.. 레스토랑을 하니?'라고 묻는 것이다.
외국인들 눈에는 이렇게 많은 냉장고를 갖고 사는 한국인들이 생소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한국에 가서도 346리터의 냉장고를 선택했다.
2년 동안 364리터의 냉장고에 익숙해졌으니까.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사서 신선하게 먹는다.
다행히 크고 작은 마트가 많고 집에서 가깝다.
될 수 있으면 소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음식재료를 구입한다.
스스로 단순한, 소박한 삶을 선택하여 작은 집을 구하고,
음식을 쟁여놓고 살지 않고, 적게 소비하고, 물건을 쌓아두지 않는 등등의 생활을 한다.
남들이 작은 집에 산다고,
벽걸이 에어컨으로,
저렇게 작은 냉장고로 어떻게 살림을 하느냐고 비웃는다 할지라도,
공간을 채우느라 공간을 잃는 오류를 다시는 범하고 싶지 않다.
‘옷장에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입을 옷이 없다’ 과 같은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