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시작한 이유는 이사였지만

줄어들지 않던 하루

by 조용한 선택

미니멀리즘을 시작했을 때는

그냥 물건을 줄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집이 복잡하다고 느꼈고,

정리만 하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버리고, 나누고

다시 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상했다.

물건이 줄어들수록 피로가 사라지기는커녕,

다른 종류의 피로가 더 선명해졌다.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떠나고 싶지 않았던 이사

2024년 7월, 이사 준비를 하면서

미니멀리즘을 처음 시작했다.
원해서 떠나는 이사는 아니었다.
집주인이 갑자기 실거주로 들어오게 되면서,

전세계약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게 됐다.


기능만 하던 집, 그래도 내 집이었던 곳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 속에서,

어렵게 신혼집으로 구했던 전세집이었다.

이 집은 처음부터 '잘 갖춰진 집'은 아니었다.
가구는 새것도 아니었고,

자취방을 채우듯 제각각이었다.
서로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각자 제 기능만은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집에서 아이 둘을 낳았다.
아이들 물건과 내 물건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이 공간을 나만의 집으로 만들기 위해 3년을 애썼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내가 살아낸 흔적이 있는 집이었다.


떠나기 직전, 눈앞에 남은 것들

막상 떠나려니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건이 너무 많았다.

포장이사라지만,
'내가 이걸 정말 다 옮길 수 있을까'
'이 많은 걸 또 그대로 들고 가야 할까'
하는 불안이 밀려왔다.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그때는 아직 몰랐다.


비우기 시작한 이유

그 무렵 우연히 네이버 미니멀 카페를 알게 됐다.
처음엔 그냥 이사 준비를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하나를 비우고, 또 하나를 비웠다.
그러다 보니 물건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아주 조용하게 시작됐다.


비우면 칭찬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물건을 비워 사진을 찍어 올리면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미니멀 선배들의

'비운 물건' 사진을 보며
'이것도 비울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댓글로 '많이 비웠다' '고생하셨다'

칭찬을 받은 날이면
괜히 집안을 한 바퀴 더 돌며

비울 만한 것을 찾게 됐다.


마침 둘째의 돌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비울 수 있는 물건도 늘어났다.
아기용품, 시기가 지난 옷과 장난감들.
비움의 속도에도 가속이 붙었다.


그런데도 사라지지 않는 피로

그렇게 비우고 또 비우면
끊임없는 육아와 집안일에서
조금은 해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집이 가벼워지면,
나도 같이 가벼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피곤했다.

물건은 줄었는데,
피로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비우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지만,
내 하루는 이상하게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내가 정리하고 있던 게
정말 물건이 맞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