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 '말'을 들으면 3초 동안 생각한다.

담을까? 버릴까?!

by 담하

말이란 과연 무엇일까. 형체도 없는 그 '말'이라는 것이 뭐길래, 나를 천국에도 보냈다 지옥에도 보냈다 하는 것일까. 우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풍성해지기도 하고, '날 선' 말 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상처가 된 그 말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박제되어 반복해 나를 괴롭힌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방심하는 순간 다시 그때로 돌아가 상처받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그 말의 주체를 미워하고 싫어한다.


이쯤에서 그만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나는 말에 상처받고 연연하는 자신도 싫었다. 상처받은 말을 곱씹고 곱씹으며 그때 느꼈던 분한 마음을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괴롭혔고, 급기야는 '이렇게 말 한마디에 나약하게 상처받다니.' 하는 자책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답답했지만 뫼비우스 띠 같은 무한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걸까. 남들의 말에 상처받는 유리멘탈로 타고났다고 해서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상대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독불장군 같은 사람이 되긴 싫었다. 그것은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그 말에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깊은 고민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상처가 되는 말을 한 사람의 마음과 입장은 어땠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명료해졌는데, 상대방 말의 ‘의도’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내가 상처받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 의도가 있다. (물론, 의도를 생각조차 할 필요 없는 말도 있다. 감정을 주체 못 한 가벼운 욕설과 같은 그런 말들은 논외로 치자.) 첫 번째는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쓴소리의 말이고, 두 번째는 단지 나를 상처주기 위한 말이다. 후자는 겉보기게 나를 위한 말처럼 포장된 경우가 많으므로 잘 걸러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상대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방이 대체 왜? 어째서!?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마음의 담아둘 말과 흘려보내야 하는 말을 구분한다.


현실 상황에서 적용해 보자. 나는 4년 동안 고시공부를 한 고시생이고, 친구는 2년 전 고시공부를 그만두고 사기업에 취업을 했다. 1년 더 시험까지 준비할 거라는 나의 말에 친구가 걱정을 한다. "내년 시험까지 준비하기로 했구나.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구나. 근데 앞으로의 상황은 잘 고려해 보고 결정한 거야? 공무원이 좋은 직업이긴 하지만 더 이상 평생직장이라는 게 무의미할 수 있으니 다시 잘 생각해 봐." 이 말은 고시공부를 연장하기로 마음먹는 나의 결정이 혹여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심어주긴 하지만,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받아들이고 내 미래를 위해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면? "내년이면 5년짼데 괜찮겠어?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해? 뭐, 그래도 사기업보다는 공무원이 낫긴 하지. 근데 우리 나이가 벌써 삼십 대잖아. 집에 눈치도 보이고, 결국 떨어지면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아. 시간 낭비잖아. 그럼 남들보다 더 늦어지는 건데 괜찮겠어?" 이 말은 얼핏 보기에 나를 걱정하는 듯하는 말이지만, 내 상황을 비관적으로 단정 짓고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말로 가급적 담아두지 않는 것이 좋은 말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분별이 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말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법보다는 상대를 공격하는 말로 자신의 의도를 전하는 서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기 때문이다. 말이란 게 '아'다르고 '어'다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선조들의 지혜로운 교훈이 있지만, 모두가 그 말을 지키며 살진 않는 것 같다. 사실 최고의 방법은 그런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겠지만, 외면하고 피할 수 없는 관계라면 내가 그들의 말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문자에 그대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내용에 집착하기보다, 그 말속에 의도만 파악해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상황을 살펴보자. 회사에서 나의 업무상 실수가 있었고, 직장상사에게 혼나는 상황이다. "OO 씨, 일 처리를 이렇게 하면 어떡해. 여기 수치 계산이 틀렸잖아. 제대로 해서 다시 가져와." 기분 나쁘다. 혼났으니 당연히 드는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말이다. 지금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 넘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나중에 회사에 더 큰 손실을 안겨줄 수 있기에 어쩌면 지금 바로잡아준 것이 다행인 일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말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직장상사가 이렇게 말했다면? "OO 씨, 경력도 있다면서 일을 이렇게 밖에 못해? 채용 전에 역량시험을 봤어야 했는데.. 나원 참. 답답하다 답답해." 역시 기분이 나쁘다. 아니, 아까보다 더 나쁘다. 이 말은 나의 업무 실수를 지적하기 위한 의도로 꺼낸 말이지만, 이 말에는 현재 나의 실수와는 무관한 개인적인 인격을 모독하는 내용이 섞여있다. 이럴 때는 나만의 필터를 가동해 말의 의도만 받아들여야 한다. '아, 업무를 제대로 하라'는 말이구나.


말이 겉보기에는 같은 의도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숨은 의도는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선별해야 한다. 이 말을 '담을 것'인가 '버릴 것'인가. 그것은 오직 우리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버렸어야 하는 말들을 부여잡고 반복해 상처받으면서,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지 말자.


그래서 나는 이제 나만의 필터를 돌린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3초'동안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

둘.

셋.


그리고 결정한다.


담을까!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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