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추억이 더 깊이 새겨지니까.
10년째 장롱 면허를 탈출 기념으로 작은 경차 한대를 중고로 구매했다. 운전에 익숙해질 즈음 엄마와 함께 외갓집을 다녀온 적이 있다. 고속도로를 타고 편도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시외버스를 타도 휴게소에 들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였다. 그런데 외가댁을 다녀오는 길에 엄마는 콕 짚어 'ㅇㅇ휴게소'에 들렀다가 가자고 했다. 우선 알겠다고 하고 휴게소로 가는데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외갓집에 갈 때는 휴게소를 들르지 않았고, 더군다나 중간에 화장실이 급해 갑자기 들렀다 가자는 것이 아니라 출발하면서부터 'ㅇㅇ휴게소'를 콕 짚어 가자고 하다니. 뭔가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은 휴게소에 도착해서야 풀렸다.
"예전에 너희 아빠랑 항상 여기 휴게소에 들러서 호두과자를 사 먹었어."
돌아가신지 30년도 더 된 아빠와의 추석이 있는 휴게소라니. 그제야 엄마가 이해됐다. 휴게소부터 집까지 이동 거리는 20분이 채 되지 않고 휴게소에 들르지 않고 간다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오랜만에 이곳에 오고 싶었던 것이다. 호두과자를 한 박스 가득 사들고서 집으로 가는데, 왠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한 번도 'ㅇㅇ휴게소'를 가보지 못했을 거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엄마는 외가댁을 갈 때면 늘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중간에 휴게소를 들를 만큼의 먼 거리가 아니기에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혹여 들른다고 할지라도 엄마가 원하는 휴게소를 갈 수는 없었을 때문이다. 그런 엄마는 오래간만에 'ㅇㅇ휴게소'에서 오래전 추억을 되새기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가끔 놀라곤 한다. 엄마는 돌아가신 지 30년도 더 된 아빠와의 추억을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할 때가 가끔 있었다. 어제 뭘 했고 뭘 먹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아빠와 함께한 오래전 기억은 사뭇 생생하게 얘기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애잔했고 한편으론 놀라웠다. '어떻게 아직도 기억하는 걸까. 엄마에게 아빠는 어떤 존재였고 어떤 의미였던 걸까.' 생각하게 된다. 지금도 감히 과거 형으로 말할 수 있는지, 아직 현재 형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했다. 그리고 부부로 엮인 '인연의 무게'가 매우 무겁게 생각됐다.
우리는 살면서 '꽤 오래전 일'을 마치 '어제 일'마냥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내가 예전에 운동할 때는 배가 하나도 없었는데.."
"언제?"
"군대 막 전역했을 때 말이야."
"음..."
30대 중반의 친구와의 대화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이없는 표정을 치며 무반응으로 대응하곤 했다. 상대를 일부러 속이려고 하거나 불순한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물론 잘 안다. 물어보기 전까지 정확한 시기를 언급하지 않았을 뿐 아닌가. 또 이야기의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어제 일처럼 생생한 일이기에 신이 나서 하는 말이니 이해할 만하다.
기억이란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된다. 그리고 나와 관련되었던 흐뭇한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답게 '미화'된다. 그러다 보니 내 과거 경험담을 얘기하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더욱이 그 시간을 공유한 사람과의 대화를 할 때면 시간이 순삭 돼 버린다. 하지만 그 시간을 함께한 적 없는 누군가에게 오래된 일을 최근 일인 것처럼 말하다 보면 듣는 사람에게는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나중에 사정을 알고 나서는 허무해지는 것이다. '지금 10년 전 얘기를 어제 일처럼 얘기한 거야?'라며 말이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는 어이없는 반응을 보냈던 나도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그 순간을 함께했던 누군가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그때로 돌아가 "그때 그랬는데, 기억나?"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대화하곤 했으니까.
보통은 어릴 때, 그러니까 지금보다 젊었을 때(;)의 기억들이 최근 기억들보다 좀 더 강렬하게 저장된다. 기억의 데이터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들어온 정보이고, 나이가 찰수록 기억의 양은 많아지는 반면 기억력은 쇠퇴하면서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 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릴 때 경험한 것에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까지 붙는 것들이 많아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처음은 서툴긴해도 특별함이 더해지니깐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추억에 기대어 한참 전 기억을 꺼내어 공유하며 살아간다. 과거에 지나치게 연연하지는 않아야겠지만, 힘겨운 순간에 꺼내볼 마음속의 따뜻한 기억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추억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다소 과장되거나 왜곡되었을 때, 또는 안타깝게도 청자를 잘 못 골라 상대의 공감을 얻지 못할 때, 우리는 꼰대의 "라떼는~"이라고 명명한다. 라떼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경계가 느슨해지는 순간 우리도 결국 누군가의 꼰대가 돼 버리니 슬픈 일이다. 내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 누군가의 라떼 이야기쯤은 측은지심을 갖고 들어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가 오랜 기억에 의존하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도파민에 관한 이야기다. 도파민은 나이가 들수록 감소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작은 것에도 까르륵 웃고 즐겁지만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를수록 재밌는 걸 찾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어떤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연구 결과 도파민은 10년마다 10프로는 감소한다고 한다. 살수록 어려운 일 투성인데, 점점 재미 없어지기까지 하는 삶이라니 애석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재밌는 것을 늘 찾아야 한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나의 도파민을 끌어올려줄 무언가를 말이다.
기억과 도파민에 관한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어렸던 그때 그 시절, 젊었던 시절의 경험이 더 오래가고 나이 들어 경험한 것을 흘려보내는 것이 많아지게 된다. 돌아가신 지 30년도 더 된 아빠와의 추억을 마치 몇 년 전 이야기처럼 문득 꺼내는 엄마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젊었을 때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아야 한다. 어쩌면 그게 더 오래 기억될 테니까 말이다. 미리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하루라도 더 젊은 순간에 더 행복하기 위해 애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