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특별한 날에 더 불행해질까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이유 없이 마음이 설렌다.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연말이 되고 성탄절이 다가오면 괜히 기분이 들뜬다.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고, 아주 작은 변화 하나가 내 일상을 새롭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길거리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고, 반짝이는 장식으로 가득한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 빛과 크기에 압도되어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서 있게 된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 짧은 인사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계절. 서로의 안무를 묻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평소보다 서로에게 좀 더 다정해지고 관대해지는 크리스마스의 마법.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혹시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크리스마스 이브다.
크리스마스 이브. 미리 잡아놓은 약속에 나갈 준비를 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들뜬다. 옷 하나, 액세서리 하나에도 괜히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완벽해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면, 나와 같은 설렘을 안고 길을 나선 무수한 사람들과 마주친다. 약속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이리저리 부딪히다 보면 어느새 도착이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로 붐비고, 식당 웨이팅이 당연한 하루.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 나는 누구와 '메리 크리스마스'를 주고받았을까. 문자로는 수도 없이 오갔던 인사였지만, 정작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과는 하지 못한 인사라는 사실이 조금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를 조용히 보내게 되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대신, 최대한 한적한 공간을 찾거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소소한 파티를 연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특별한 날이니 즐겁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크리스마스에는 늘 무언가가 어긋났다. 미리 주문해 둔 케이크가 크리스마스 다음 날 도착하거나, 아무 일도 아닐 것 같은 사소한 말로 친구와 다투게 되거나. 하필이면 그날에만 작은 사건들이 겹쳐 일어났다. 어느 순간에는 이번 크리스마스도 망치면 어쩌지 하는 조급한 마음도 생겨났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하면 한없이 쓸쓸해지는 것이다. 몹쓸 크리스마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은근히 필사적인 사람들이 된다. 이 특별한 날, '세상 모든 사람들' 속에 무사히 섞여 최소한 ‘남들처럼’은 보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이날과 관련된 어떤 이상적인 이미지를 의식하면서 그 이미지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게 된다. 크리스마스의 역설이 그렇게 생겨난다. 평소보다 훨씬 더 행복해야 마땅한 날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흔히 겪는 어떤 사소한 불행 앞에서도 '오늘은 크리스마스인데!'라고 생각하면 더 서러워져서, 결국 우울한 날이 되어버리고 마는 역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문학들은 흔히 이 크리스마스의 역설에 초점을 맞추고 '너만 그런 게 아냐, 다 그래'하고 우리를 위로한다.
-신형철 작가의 <느낌의 공동체> p.159 중에서-
크리스마스의 역설. 결국 내가 몹쓸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이유는 나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고대했던 크리스마스는 당연히 특별해야 하고, 평소보다 행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작은 어긋남에도 의연하지 못했다. 사소한 불행 앞에서 의연하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인데 케이크가 도착하지 않다니.’
‘크리스마스인데 약속 시간에 늦다니. 기대한 건 나뿐이었나?’
케이크 하나, 약속 시간 하나에 괜히 마음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걸 깨닫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더 이상 특별함에 집착하지 않고, 꼭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평범했으면 좋겠다. 특별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결국 크리스마스는 누가 더 근사하게 보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함께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잘 버텨온 서로를 조용히 다독이는 하루.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그런 하루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