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길 바라지만 변하지 않는다.
은은한 우울감이 지속될 때가 있다. 크게 우울한 사건도, 나를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특별한 계기도 없는데, 어느 순간 나는 이유 없이 고요한 침체 속에 가라앉아 있다. 마치 음료 바닥에 가라앉은 잔여물처럼, 몸을 낮춘 채 가만히 존재한다. 스스로를 무기력하다고 느끼지만, 예상치 못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나 나를 마구 휘저어 주지 않는 한 나는 절대적으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 깊은 곳에는 무력한 나 자신에 대한 경멸과, 이렇게 계속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불안, 그리고 ‘뭐 어때’라는 체념이 뒤섞여 둥둥 떠다닌다. 그 복잡한 감정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결국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나를 집어삼킨다.
우울과 불안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불쑥 얼굴을 내민다. 어느 날 아침에 출근을 위해 눈을 떴는데 하루의 시작이 유난히 버겁게 느껴질 때, 별반 다를 것 없는 날들이 계속되며 내 인생이 이 자리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할 것만 같을 때. 그런 순간마다 불안은 물결처럼 밀려왔고, 곧 우울로 가라앉았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그래서 더 설명하기 어려웠고, 더 답답했다.
뇌는 기본적으로 새로움을 좋아한다고 한다.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다. 반면 반복은 ‘정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일상이 지나치게 고정되면 활력이 떨어지고, 그것이 곧 무기력함으로 이어진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자극은 줄어들고, 예측 가능한 일들만 계속된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생은 꾸준히 재미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실천하려 애쓰며 취미를 가져보려 하고, 자기 계발을 위한 강의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우울감은 어느 순간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어쩌면 ‘원래 타고난 성향이 그런 거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울한 기분으로 촉발된 생각이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속삭이면 우리는 당장 우울한 기분을 제거하려 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의 삶 전체가 제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감옥에 갇혔다고 느끼는 나머지 어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한다.
이때 문제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해결하는 식으로 우울한 기분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데 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왜 늘 우울한 기분에 휩쓸릴까?' 자신과 자신의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 그것을 고치려고 강박적으로 노력한다. 문제 해결에 온 정신력을 쏟는다. 이때 우리는 비판적 사고에 의존하지만 불행히도 비판적 사고는 우울한 기분을 해결하는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 p.56
-마크 윌리엄스의 <마음 챙김으로 우울을 지나는 법> 중에서-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은은한 우울감에 의문을 갖고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인드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니. 문제를 개선하려고 애썼던 마음이 되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되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우울감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보려고 한다. 강박적으로 변화하고 개선하려는 시도대신, 우울감이 밀려올 때 이렇게 말해보는 것이다. ‘아, 내가 지금 우울한 기분을 느끼고 있구나.’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원인을 밝혀 내려는 시도보다는 내 감정을 먼저 헤아려 주기로 했다.
마음 챙김은 의도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판단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현상에 주의를 기울일 때 일어나는 깨어있는 마음이다. 또 마음 챙김은 행위 모드에서 존재 모드로 전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존재 모드로 전환하면 경험이 제공하는 정보를 놓치지 않고 받아들인 뒤 행동할 수 있다. 마음 챙김으로 깨어있다는 것은 판단을 중지하고 미래의 목표를 잠시 접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려운 대상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작동하는 자동조종장치를 의도적으로 끄는 것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온전히 알아차리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생각이 실체가 아니라 잠시 마음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정신적 사건(mental event)임을 아는 것이다. p.73
-마크 윌리엄스의 <마음 챙김으로 우울을 지나는 법> 중에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내던 순간들로부터 벗어나, 같은 행동이라도 마음 챙김으로 깨어 있어 보려 한다. 똑같은 하루일지라도,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같은 것이라도, 특별해질 수 있다고 믿어보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