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뒷면까지 보여주는 크로스스티치 수놓기
올해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옷에 자수를 놓아달라고 남편이 요청해왔다. 별로 필요한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는 남편이 종종 나에게 자수 선물을 원할 때가 있는데 기쁘면서도 난감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처음 남편의 요청이 있었을 때는 기쁜 마음으로 자수를 원하는 옷을 가져오라고 말했는데 글쎄 기모 맨투맨이나 코듀로이 셔츠와 같이 자수 놓기에 난이도가 높은 원단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평상시에 리넨과 코튼 원단에 자수하는데 익숙했던 나는 울퉁불퉁하고 신축성이 있는 의류에 도안을 옮기기도 힘들거니와 수를 놓으려 바늘을 찌르기도 버거웠다.
국내에서 프랑스 자수로 알려진 일반 자수의 경우 아무리 작은 수를 수놓더라도 기본적인 도안을 원단에 그리고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처음 기모 맨투맨에 먹지와 도안을 깔고 철필로 눌러가며 도안을 옮길 때 원단에 먹지가 하나도 옮겨 그려지지 않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코듀로이는 또 어떤가, 울퉁불퉁하여 먹지는커녕 수성펜으로 그리기도 힘들다. 게다가 이번에는 검은색 코듀로이 셔츠라니 남편이 나를 은근히 골탕 먹이려는 것은 아닌지 정말 궁금해졌다. 하지만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니 나도 이런 상황에서 대처 능력이 생겼다. 바로 크로스스티치로 원단에 수를 놓는 것이다.
크로스스티치라고 하면 처음 들어보는 자수 같지만, 단어를 직역해보면 우리가 모두 학창 시절에 한 번 정도 해보았을 십자수를 뜻한다. 크로스(cross), 즉 십자 모양으로 수를 놓는 것인데 이 간단한 자수에도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십자수를 놓을 때 왼쪽 사선 (/) 방향의 수와 오른쪽 사선 (\)방향의 수를 겹쳐 놓는데, 항상 일관된 방향으로 수를 덮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방향의 수를 놓고 그 위를 \방향의 수로 덮기로 하면 모든 수를 동일한 방향으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수놓은 뒷면을 보았을 때는 대각선으로 이동한 부분이 없이 수직으로 또는 수평으로만 이동해야 한다. 말로만 들으면 이것이 가능한가 의문이 들지만 막상 해보면 뒷면으로는 수직 또는 수평으로만 바늘을 옮겨가며 앞면에만 크로스스티치가 보이게 놓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깐 크로스스티치는 다시 말하자면, ‘앞면에서 보았을 때만 크로스’라고 불러야 한다.
크로스스티치에는 없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도안을 옮기는 과정이 없고, 두 번째는 매듭이 없다. 크로스스티치 원단은 십자수 원단과 마찬가지로 칸을 셀 수 있는 조직이 굵은 원단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매듭을 만들어도 구멍 사이로 빠지기 쉬우므로 처음과 끝은 항상 뒷면에 수 놓여 있는 실에 두세 번 되감아 돌아와서 마무리한다. 칸을 세어가며 자수를 놓으면 되기 때문에 도안을 옮길 필요가 없다는 점은 도안을 옮길 수 없는 종류의 원단에 수를 놓을 때 이 자수를 써먹기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검은색 코듀로이 셔츠에 내가 자수 놓은 방법을 참고하여 어디에든 원하는 수를 마음껏 놓길 바란다.
우선 크로스스티치 도안을 고른다. 내가 중학생 때 짝사랑하는 선배에게 밸런타인 날 선물하려고 십자수를 처음 했을 때는 시중에 구할 수 있는 도안이 하나같이 모두 촌스러웠다. 캐릭터나 이모티콘과 같은 종류의 도안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도안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 크로스스티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인 만큼 나는 눈사람 도안을 골랐다. 이 도안이 실린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결혼 직후 남편과 오사카에 놀러 갔을 때 린넨버드(Linen Bird)매장에서 고르고 골라 한 권만 집어온 얇은 크로스스티치 도안집이다.
눈사람을 수놓는데 몇 칸이 소요되는지 세어본 다음 십자수 원단을 넉넉히 자른다. 여기서 십자수 원단을 고를 때 유념할 점은, 원단의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여 생기는 칸이 작을수록 촘촘하고 완성도 높은 자수가 완성되는 대신 완성품의 크기가 작고 마지막에 십자수 원단의 올을 푸는 과정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칸이 너무 큰 원단을 고르면 픽셀이 깨진 사진처럼 어설프게 보일 수 있으니 디자인에 알맞은 적당히 촘촘한 십자수 원단을 고르는 것이 좋다.
십자수 원단을 잘라서 수를 놓고자 하는 원단, 즉 나의 경우는 코듀로이 셔츠의 가슴 부분에 잘 고정해 놓고 원하는 위치에서부터 수를 놓기 시작한다. 보통 크로스스티치 원단에 수를 놓을 때는 찔려도 아프지 않을 만
큼 뭉툭한 바늘로 칸에 맞춰 수를 놓는다. 이때 칸과 칸 사이 원단을 임의로 뚫고 지나가거나, 이미 수가 놓인 실의 올을 가르지 않기 위해서 뭉툭한 바늘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코듀로이 원단에 수를 놓느라 일반 자수바늘처럼 뾰족한 바늘로 수를 놓았지만, 이럴 경우 내가 원단이나 실의 올을 무작위로 찌르고 있지는 않는지 신경 써가며 칸에 맞춰 수를 놓는다. 앞서 말한 사선 스티치의 덮는 방향과 뒷면에서 실이 이동하는 방향을 유념하며 완성하고 나면 이제 십자수 원단의 씨실과 날실을 한 올씩 뽑아 코듀로이 원단에 수만 남겨놓고 십자수 원단을 제거해 나가면 된다. 아무리 성격이 급한 사람도 이 과정은 서두를 수도 대충 할 수도 없는 과정이다. 차분히 앉아 한 올씩 십자수 원단을 뽑다 보면 이제 코듀로이 원단 위에 완성된 크로스스티치만 남게 된다.
크기는 작지만 남들이 보지 않아도 뒷면까지 신경 쓰는 마음과 한 칸씩 착실히 십자를 수놓은 성실함이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작은 선물이 되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한다고 하면 나는 종종 크로스스티치를 놓은 선물을 생각해내곤 한다. 면 전체를 메꾸는 큰 스케일의 자수도 멋지고 아름다운 꽃 자수도 좋아하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선물은 크로스스티치를 선택하게 된다. 남편과 오사카에 다녀온 그해 지인들에게 보내는 크리 스마스 선물로는 린넨버드에서 사 온 도안집에 있는 작은 크로스스티치를 수놓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달하기도 하였고, 이안이가 태어난 해에 만든 크리스마스 양말에는 선물을 포장하는 요정 도안으로 크로스스티치를 수놓았다. 그리고 자수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며 만든 나의 첫 핀쿠션에는 작은 도토리와 다람쥐가 크로스스티치로 수 놓여있다.
지금은 신년 선물로 이안이에게 줄 작은 파우치를 만드는데 중앙에 넣을 크로스스티치 도안으로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에 나오는 막내 돼지가 집을 지으려고 열심히 벽돌을 옮기는 모습을 골랐다. 요즘 이안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 ‘늑대가 와서 후우 불어도 벽돌집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라고 귀여운 문장을 스스로 말하며 읽기도 한다. 아기 돼지 삼 형제가 밖에 나가서 열심히 집을 지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엄마 돼지가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서 했을 것 같은 자수가 바로 크로스스티치이다. 나도 내 아이가 막내 돼지처럼 궂은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견뎌내며 늑대가 ‘후우~’ 불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자기만의 집을 완성해 낼 수 있기를 바라며, 벽돌 하나하나를 옮기는 정성처럼 한 칸 한 칸 정갈하게 크로스스티치를 수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