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를 몰라도, 재료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
이안이를 임신했을 때 안정기인 임신 중기로 접어드니 난데없이 불면증이 찾아왔다. 뜬 눈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괴로워 작은 방에 들어가 아끼던 포그린넨(Fog Linen)의 조각 천을 무작정 자르고 꿰맸다. 고운 결의 리넨 천은 그대로 두고 바라만 봐도 좋지만 색과 무늬를 생각하며 배열을 새롭게 해서 이어 붙이는 과정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느질에 몰두할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퀼트의 기본기도 모르는 시절이라 시접 자로 치수를 재며 재단한 것도 아닌 눈대중으로 대충 만든 것이지만 지금 꺼내보아도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것을 보니 원래 퀼트라는 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만들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매듭이 어떻고 시접을 어떻게 처리하고 등등의 이론적인 지식은 알고 있으면 유용하지만 모른다고 해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시접을 넘기는 방향을 결정하거나 조각이 이어지는 이음새를 바느질하는 등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하면 되는 것이다.
바닥에 앉아서 원단을 펼쳐놓고 바느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두 세시가 되어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불편했던 허리를 펴고 침대에 누우면 몇 시간 전에 불면증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단잠에 빠져들었다. 고요한 밤이 오면 침대 위에 멍하니 누워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온갖 걱정을 하던 내가, 작은 방에 들어가 천을 자르고 바느질을 하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임신 기간이 아쉬울 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바느질 메이트였던 이안이는 2월의 한 겨울에 태어났고 여름이 되자 배밀이를 시작했다. 처음 하는 배밀이가 얼마나 신이 나는지 열심히 온 집안의 바닥을 쓸고 돌아다녔다. 남에게 물려주기도 민망할 정도로 옷이 해지고 아이가 훌쩍 커버려 여름옷들을 버리려고 하니 그 시절의 귀여웠던 아기의 모습이 생각나 쓰레기통에 버릴 수가 없었다. 몇천 원 밖에 하지 않는 내복도 버리지 못하다니 미련스럽게 보이지만, 그해 여름에 찍은 사진 속에 아이는 유니폼처럼 항상 그 옷들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냥 버릴 바에는 뭐라도 만들어서 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에 나는 또다시 천에 가위를 대었다.
리넨보다 신축성이 좋고 부드러운 아기 옷은 패치워크를 하기에 적합한 원단이 아니었다. 게다가 바지의 허벅지 부분, 티셔츠의 배 부분 등 면적이 나오는 대로 잘라서 만들다 보니 사각형으로 딱 떨어지는 형태의 패치워크가 나올 수도 없었다. 조금 삐뚤빼뚤하지만 만지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부드러워지는 아이 옷을 바느질하고 있자니 리넨으로 패치워크를 만들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물질이 넘쳐나는 세상에 항상 새로운 천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만들다가 이렇게 보드라운 촉감의 소재를 재사용하니 공간의 분위기가 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패치워크를 완성한 후에는 양모 솜을 두툼하게 깔고 부드러운 천으로 안감을 대서 퀼팅 하였다. 원단이 쉽게 늘어나고 두께도 제 각각이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었는데 완성품에 값어치를 매기자면 몇천 원짜리 아기 옷에 수십 배에 달하는 수고로움을 쏟은 셈이었다.
빨간색, 하늘색, 노랑 체크무늬 등 포그 린넨의 원단으로 배열에 신경을 써서 만든 패치워크와는 달리 아이 옷으로 만든 방석은 주어진 옷감 안에서 제한 적으로 선택하다 보니 엉성한 결과물이었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아이는 이 방석을 너무나 좋아하였다. 방석에 사용된 황토색, 노란색, 연두색 등의 원단을 보고 흙이라고 상상하며 자동차 놀이를 할 때 공사장 바닥으로 깔기도 하고 양모 솜을 채운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멍하니 누워서 쉬기도 했다. 반면, 나중에 얇은 솜과 안 감을 퀼팅하여 아기 이불로 만들려고 했던 리넨 패치워크는 깔끄러운 리넨 소재가 아이 용품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지금은 쓰임새가 완성되지 않은 채로 바구니에 고이 접혀있는 포그 린넨의 원단으로 만든 패치워크를 보고 있자니 아이를 낳기 전의 나의 모습 같다. 실용성보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신축성이 없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리넨 원피스를 좋아하고, 집안에 모든 물건이 각이 잡힌 듯 정돈된 깔끔한 일상을 살던 삶.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랑 놀기 편한 츄리닝을 입고 바닥에 먼지가 있어도 모른 척하고 있다. 이안이가 태어나고 하루아침에 나의 모습이 리넨 패치 워크에서 헌 옷 방석으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서서히 엉성해졌고 대충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이와도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안이가 원하면 놀이터 바닥에 앉아서 모래 놀이도 하고 빨래를 각 잡아 개키는 대신 아이와 그림책을 옆에 쌓아두고 읽었다. 포그린넨 원단의 배열이나 뻣뻣한 촉감이 지금 꺼내보아도 만족감을 주는 것을 보니 나는 분명히 출산 전의 그 삶도 여전히 사랑한다. 하지만 매일매일 아이에게 쓰임이 있는 헌 옷 방석이 된 지금, 이안이가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포근한 삶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