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의 미학이 담긴 패치워크 만들기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바느질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여러 번 짧게 낮잠을 자는 신생아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가 잠들었다고 마음 놓고 바느질 거리를 펼쳤다가 30분만 자고 금세 일어나는 아기를 돌보기 위해 허둥지둥 바늘을 숨기게 된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나서는 뾰족하고 작은 바늘 대신 대바늘이나 코바늘처럼 덜 위험한 도구로 뜨개를 자주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돌이 지난 이안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 배운 것은 재봉이었다. 위험과 소음, 아이가 있는 집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두 가지를 겸비한 재봉을 배우며 그동안 육아를 전담하느라 억눌러있던 창작욕을 마구 불태울 참이었다. 그렇게 기계로 쉽게 박음질을 할 수 있는 재봉을 몇 달 동안 배우다 보니, 반동으로 느리게 한 땀씩 꿰매는 퀼트가 배우고 싶어졌다.
얼핏 보기에는 독학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이 쉬워 보이는 공예도 막상 정식으로 기초부터 배우면 새롭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나에게 퀼트는 언제나 기초가 궁금한 분야였다. 재단하는 방법, 꿰매는 방법, 패턴 블럭을 이어 붙이는 방법, 시접 처리하는 방법 등 배우고 나면 ‘아, 역시 그랬군’ 할 정도로 예측 가능한 내용이었지만 그동안 혼자 고민하며 마음속에 구름처럼 품었던 의구심이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방법은 없었지만 기초에 더 확신을 가지고 바느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다양한 천을 조화롭게 배치해서 이어 붙이는 패치워크는 마치 세상에 없는 원단을 내가 원하는 패턴으로 만드는 과정과 같아서 몇 가지 이론과 규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적인 활동이었다. 퀼트를 갓 배우기 시작했을 때 한 마짜리 원단을 펼쳐놓고 조각조각 자르는 나를 보고 남편은 왜 멀쩡한 천을 잘라서 다시 꿰매냐고 의아해했지만, 콜라주처럼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패치워크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퀼트는 바느질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안방에서 치는 골프라고 할 만큼 돈이 많이 드는 취미 생활이다. 하면 할수록 샘솟는 원단 욕심에 나도 모르게 과소비를 하게 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패치워크는 원단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각 천을 이어 붙이는 방법이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다양한 종류의 풍요로운 원단 시장의 결과로 여겨진다 [1]. 여러 조각을 이어서 만드는 만큼 어떤 원단을 선택해서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지가 중요한 과정인데, 파고들수록 새롭게 눈뜨게 되는 국내외 원단 시장의 역사와 무궁무진한 수입 원단의 퀄리티를 보면 이미 내 서랍에 천이 가득 있어도 계속해서 새롭게 갖고 싶은 원단을 장바구니에 주워 담게 된다. 그렇게 모아놓은 원단을 비슷한 색감끼리 자연스러운 배치를 하던 보색 대비가 되는 원단을 배치하여 강렬한 느낌을 주던 만드는 이의 자유지만, 강약 조절이 없어 지루하거나 조화롭지 못해 어수선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 많은 원단을 만져보고 부지런히 패치워크를 만들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수련과 같은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언젠가 자기만의 취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같은 패치워크 블럭이어도 어떤 색상과 패턴을 사용했는지에 따라서 완성된 모습이 천차만별이니 그야말로 만든 이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때문이다.
원단을 골랐으면 이제 재단을 시작한다. 처음 패치워크를 배울 때는 나인 패치워크(9-patchwork)와 로그 케빈(Log cabin) 등 사각형을 배열한 패턴을 만들지만, 헥사곤이나 삼각형을 이용한 심화 패턴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도형에 대한 이해와 각도를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원하는 패턴을 골랐으면 원단에 도안을 옮기고 재단할 차례이다. 도안을 그릴 때에는 시접 자를 이용하는 방법과 템플릿을 이용해서 그리는 방법이 있다. 간혹 단순한 도형의 경우 수성 잉크를 사용해 도장처럼 찍어내는 방법(스탬핑)으로 도안을 그릴 수 도 있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아래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한번 결정한 방법으로 같은 작품 내 모든 도형을 재단해야 일관성 있는 크기로 블럭을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0.7센티의 시접을 남기고 조각을 자른다
조각이 큰 경우, 또는 벽걸이 작품의 경우 원단의 식서 방향을 의식해서 재단한다
여기까지 책상에 앉아서 차분히 도안을 옮기고 조각을 전부 재단해서 모아 놓았으면 이제는 비교적 자유롭게 장소나 시간을 선택해서 틈틈이 바느질을 할 수 있다. 나는 캐러멜이 담겨있던 작은 틴 케이스에 바늘꽂이와 가위, 실과 조각 원단을 가지고 다니며 이안이가 낮잠을 잘 때 거실 책상에서,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을 때 동네 벤치에서, 카페에서 지인을 기다릴 때 등 언제 어디서든 패치워크 블럭을 만들고 있다. 천을 펼쳐놓고 도안을 그리거나 가위로 재단하며 먼지를 날리는 일은 집 밖에서는 물론 집 안에서라도 가족들의 생활시간을 피해서 하게 되는 일이지만 작은 조각을 꺼내 바느질하는 것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소심한 사람도 카페에서 슬쩍 작은 파우치를 꺼내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조각을 이을 때는 시침 핀으로 고정해 놓고 시작하는 것이 좋으며 시접 부분은 나중에 방향을 정해 다림질로 넘길 것이기 때문에 가름솔을 하거나 임의로 시접을 넘겨 꿰매어 버리지 않도록 유의하며 바느질한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다 마셔갈 때쯤 완성한 조각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시접의 방향을 정해 다림질을 해 놓으면 어느새 방 한 켠에 패치워크 블럭이 쌓여갈 것이다.
지금 만들고 있는 소망의 별이라는 작품에는 패치워크에서 가장 즐겨 사용되는 패턴 중 하나인 별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완성하면 퀸사이즈 이불 정도의 큰 크기인 이런 패치워크 작업은 아무리 손이 빠른 사람이라도 단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루에 한 조각씩 꿰맨 패치워크 블럭을 모으고 모아 충분히 많은 조각이 모이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재봉에서는 시접을 가름솔을 해서 꿰매지만 핸드 퀼트에서는 시접을 한 방향으로 넘긴다. 포 패치워크(4-patchwork)나 나인 패치워크처럼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조각을 이어 붙인 경우 바람개비 시접을 만들지만, 별 패턴의 경우 다양한 도형이 만들어내는 시접이 복잡하게 겹쳐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바람개비 시접처럼 딱 떨어지게 정리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몇 가지 규칙을 유념하고 일관성 있게 판단해서 시접을 넘기면 된다:
좌우, 위아래 대칭이 되도록 시접을 넘긴다
시접이 한 방향으로 쏠려서 뭉치지 않도록 한다
여러 겹의 조각이 한 시접에 몰려있는 경우 이음새에 구멍이 나지 않는 방향으로 넘긴다
진한 원단 쪽으로 시접을 넘긴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을 가지고 규칙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수십 개의 작은 부분으로 이루어진 큰 패치워크의 경우 일관성이 없어지면 뒷면이 혼란스러워지고 앞면 또한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퀼터들 사이에서 소망의 별을 완성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자녀들의 수능 날에 맞춰 바쁘게 손을 움직이곤 하는데 소요되는 패치워크의 양과 완성품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대단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소망의 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단과 실의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완성까지 소요되는 시간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돈과 재료만 있다고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조각을 그리고 자르고 꿰매는 시간이 축적되어 비로소 손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과는 별개로 소망의 별이 특별한 이유는 성실하게 하루에 한 개씩 작은 조각이라도 잇고, 일관성 있게 규칙을 적용하고, 지구력 있게 완성까지 달린다면 우리 인생에 이루지 못할 일은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1] Patchwork & Quilting: A Maker’s Guide (2017), Thames & Hudson in association with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