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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박 Oct 26. 2022

이안이의 딸기 이불과 퀼팅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될 아이의 퀼트 이불 만들기

벌써 해가 바뀌었으니 재작년의 일이다. 잠을 잘 때 이불보다는 수면 조끼를 입는 것이 익숙하던 이안이는 아직 아기 티를 벗지 못한 3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원길에 마주친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안이가 요즘 낮잠 잘 때 이불 덮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을 꺼내셨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이안이가 이불을 덮기 싫어하면 대신 집에서 처럼 수면 조끼를 입히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어린이집이라는 공동체 공간에서는 한 아이의 작은 반항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불 덮는 문제 등의 사소한 이슈도 선생님과 호락호락하게 타협이 되지 않았다. 



아직 언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설득시켜야 하나 고민 끝에 이안이가 좋아하는 요소가 가미된 이불을 직접 만들어 주기로 했다. 더운 여름에도 딸기를 먹고 싶다고 찾는 이안이에게 딸기가 가득 그려진 이불을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고, 이불에 적합한 면 재질의 원단으로 골랐다. 뒤지로는 귀여운 분홍색 하마가 그려진 오가닉 면 원단을, 이불의 테두리는 노란 체크 원단을 바이어스로 두르려고 찾아 놓았다.



   


우리나라에서 ‘퀼트’라는 공예 분야는 패치워크, 이불, 가방, 인형, 의류 등 바느질로 만드는 거의 모든 활동을 통칭하는 용어처럼 사용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퀼트는 원단과 원단 사이에 솜을 넣고 누비는 것을 뜻한다. 특히 패치워크와 퀼트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언급되는데, 두 분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패치워크는 천 조각을 연결하여 패턴을 만드는 공예로 과거에는 대부분 퀼팅 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며, 원단 사이에 솜을 대고 누비는 퀼트와는 그 뿌리를 다르게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패치워크 한 원단에 퀼트를 하는가, 반대로 생각해보면 퀼팅은 원단에 솜을 고정하는 실용적인 바늘땀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패치워크 한 디자인을 살리기 위한 미학적인 의도로 사용된다. 


   

퀼트 이불은 원단의 사이에 솜을 넣고 누비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무게가 더 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솜의 두께와 퀼팅 라인의 디자인에 따라 올록볼록 입체감이 있는 표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포근함을 강조하는 소품과 이불 등에 즐겨 사용된다. 패치워크의 경우 패턴을 따라 테두리를 퀼팅 하면 그 내구성이 더 튼튼해지기도 하지만 패치워크가 아닌 일반 원단의 경우도 표면에 디자인적인 요소를 더하기 위하여 퀼팅을 한다. 초보의 경우 격자무늬나 기하학적인 무늬를 반복해서 퀼팅 하기도 하지만 비정형적인 무늬를 자유롭게 홈질하는 것도 퀼팅의 묘미이다. 



내가 퀼팅 이불을 처음 접한 것은 어릴 때 외할머니 방에서 덮었던 밍크 담요였다. 외갓집은 넓은 마당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가득했지만 겨울에는 외풍이 불어 추웠다. 내가 갈 때마다 할머니는 따듯한 안방으로 나를 불러들여 퀼팅으로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다홍색 밍크 담요를 덮어 주셨다. 밍크 담요는 한 겹만 해도 그 무게가 상당한데 무려 두 겹의 밍크 담요 사이에 솜을 넣고 퀼팅 한 이불을 덮고 뜨끈하게 난방을 켠 바닥에 누워있자니 금세 한증막에 들어온 것 같은 더위와 온몸을 짓누르는 무게에 이불 밖으로 뛰쳐나가 시원한 외풍을 맞으며 거실 창가에서 놀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손발이 차가워지면 다시 안방에 들어가 밍크 담요 위에 새겨진 화려한 무늬를 보며 미로 같은 선을 손으로 쫓아가 보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밍크 담요는 공장에서 기계로 퀼팅 한 담요였지만 바늘로 홈질만 할 수 있다면 가정에서도 퀼팅을 할 수 있다. 다시 이안이의 딸기 이불로 돌아와서 내가 집에서 했던 퀼팅 이불 만드는 방법을 공유해본다. 우선 이불 크기에 맞는 두 장의 원단을 가져와 겉지와 뒤지 사이에 퀼팅 솜을 샌드위치 한다. 여기에서 ‘샌드위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두 원단의 안감이 마주 보게 놓을 후 그 사이에 솜을 포개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보통 우리가 바느질로 원단과 원단의 겉면을 마주 보게 놓고 테두리를 박음질한 후 창구멍으로 뒤집는 과정과는 다른 방법이다. 원단 사이에 알맞은 두께의 퀼팅 솜을 샌드위치하고 나면 원단의 중심에서부터 바깥쪽으로 뻗어 나가는 느낌으로 공간을 나누어 시침질한다. 이렇게 시침질을 하면 큰 크기의 원단과 솜을 누비는 과정에서 천이 뒤틀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바이어스로 모서리를 각지게 마무리한 퀼팅 이불



보통은 시침질을 마치면 바로 퀼팅에 들어가도 되지만, 이번에 만드는 이불처럼 테두리에 바이어스가 들어간 경우 바이어스를 먼저 고정시켜 완성한 후 퀼팅을 하는 것이 편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 이불은 테두리를 박음질한 후 창구멍으로 뒤집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시접에 대한 여유를 두지 않고 완성하고자 하는 이불 크기에 맞게 원단을 재단해서 정렬한 후 겉면부터 바이어스를 반박음질로 고정한다. 겉면에 바이어스를 꿰매고 나면 이번에는 바이어스로 테두리를 감아서 안감에 고정하는 느낌으로 공그르기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테두리에 바이어스가 헐렁하게 남으면 이상하니 짱짱하게 당겨가며 바짝 공그르기를 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점과 겉감에 고정한 바이어스가 뒤틀리지 않게 신경을 써가며 일정한 굵기로 바이어스를 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각진 모서리를 바이어스로 감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둥글게 잘라서 만들어도 무방하다. 엄마가 만든 이불인데 테두리가 어떻든 사실 아이가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렇게 겉감과 뒤지 사이에 솜을 넣고 테두리에 바이어스까지 두르면 이불이 완성된다. 여기서 멈추고 이대로 이불로 사용해도 기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퀼팅으로 디자인적인 선을 가미시키면 어릴 적 내가 할머니의 밍크 담요를 덮고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퀼팅 선을 따라 눈을 굴리던 것처럼 아이들이 이불속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늘릴 수도 있다. 



구름과 별 모양의 퀼팅을 하기 위해 잘라둔 도안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퀼팅선을 부지런히 만들고 있는 이불의 겉면


나는 구름과 별이 들어간 퀼팅 선을 만들기로 했다. 이때도 퀼팅을 원단의 중심부터 공간을 나눠가며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가듯 바느질해야 원단이 밀리거나 쭈글거리지 않는다. 보통 바늘보다는 길이가 짦뚱한 퀼팅 바늘을 이용하여 원단에 수직으로 바늘을 꽂아가며 일정한 땀의 크기로 홈질을 하는 것이 유일한 팁이라고 할 만큼 기법 자체는 간단하다. 이때 겉감과 솜 그리고 되도록 뒷면까지 홈질하듯이 바느질하려면 손가락이 아프기 때문에 검지와 중지에 골무를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가로와 세로가 각 105센티에 달하는 이불의 바이어스를 두르며 지구력에서 밀려 멈춰있던 나의 손이 퀼팅을 시작하자 바빠지기 시작했다. 표면에 생기는 입체적인 무늬의 퀼팅선을 보면 바느질하는 손을 멈출 수가 없는 퀼팅의 매력이 있다. 



내가 딸기 이불을 세월아 네월아 만드는 동안 다행히도 이안이의 낮잠 이불 사건은 저절로 해결되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낮잠 이불을 다시 덮게 된 것이다. 이안이를 키우면서 육아하는데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에 자다가 수시로 깨서 울던 것,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거부하던 것, 그리고 언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에 말을 더듬던 것 등등 아이를 믿어주며 모른 척했더니 서서히 해결된 문제들이 수없이 많다. 이안이는 올해 5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매일 아침 딸기를 찾을 정도로 좋아하고 집에서는 이불을 덮지 않는다. 중간에 내가 포기하고 싶을 만큼 큰 크기의 이불을 만드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지만 이 정도로 크기가 크기 때문에 앞으로 이안이가 덮을 세월이 아직 많이 남았겠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즐겁게 퀼팅 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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