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한 장과 실 한 타래로 면 행주 만들기
간혹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보통 세 가지 이유로 잠이 오지 않는다. 첫 번째는 걱정거리가 생겨 생각이 많아진다거나, 두 번째는 해야 할 숙제를 끝마치지 않았거나, 세 번째는 짐이 너무 많아 집안이 어수선할 때이다. 요즘은 대개의 경우 마지막 이유로 잠을 청하지 못한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잠이 오질 않아 몇 날 며칠 수면 부족에 시달리던 때와 달리 이제는 잠이 오지 않으면 그 원인을 알기 때문에 바로 침대를 박차고 나와 나의 잠을 방해할 정도로 짐이 늘어난 거실과 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올해도 연말이 되니 밤에 눈을 감아도 답답한 기분이 들고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일 년 동안 늘어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큰 상자와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꺼내 멀쩡한 물건은 기부 상자에 담고 버려야 할 짐은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나면 청소하느라 몸이 지쳐서인지 아니면 마음이 개운해서인지 언제 불면증에 시달렸냐는 듯이 단잠에 빠지곤 한다. 매번 이런 일이 되풀이될 때마다, ‘이번에야말로 안 쓰는 물건을 전부 정리하고 미니멀 라이프를 살 거야!’라고 다짐하지만, 아직도 낡은 책이 좋고 서랍 가득 쌓여있는 천과 실에 설렘을 느끼는 나는 철 지난 옷을 기부 상자에 넣고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을 쓰레기봉투에 넣는 정도의 선에서 정리를 마무리한다.
몇 년 전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지인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물건이 적기 때문에 청소와 정돈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될 정도로 집안에는 물건이 없었다. 거실에는 소파와 티브이 대신 1인용 의자와 작은 책꽂이 하나만 있고, 부엌에는 가족 수만큼의 컵과 그릇만 있을 뿐 텅 빈 서랍장이 홀가분해 보였다. 바닥에는 언제든지 로봇 청소기가 돌아다닐 수 있도록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고 화장실은 목욕할 때 간편히 물만 뿌리면 청소가 끝날 정도로 선반에는 물건이 올려져 있지 않은 그 상태를 항상 유지할 수 있다니, 도대체 얼마큼 짐을 버려야 저런 간결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 둘을 키우며 일하는 엄마의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지인은 미니멀 라이프라는 집안일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명한 생활을 선택했던 것이다.
나는 둘째를 임신한 이후로 종종 그 지인의 집을 떠올린다. 아직 출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가진 짐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아이 둘을 돌보며 집에 쌓여있는 이 많은 짐을 정리하고 매일 깔끔하게 청소할 수 있을까? 물음에 꼬리를 잇다 보니 지금 당장 물건을 버리기 시작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지금까지 몇 번의 정리 사이클을 거치고 나니 이미 우리 가족의 옷장은 매우 간소하다. 옷이나 화장품에는 깊은 설렘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미련 없이 버려왔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별로 애정이 없는 부엌과 화장실 정리까지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정작 둘째가 태어나면 아기방을 만들어야 하는 나의 작업 방 겸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작은 방은 몇 시간을 정리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평생을 취미 부자로 살아서 그런가, 가지고 있는 재료도 다양하고 그동안 만든 물건도 많은데 문제는 아직도 이 모든 물건에 내가 설렘을 느낀다는 것이다. 뜨개실, 자수용 리넨, 양모 펠트, 자작나무, 그림 도구까지 들어 있는 수납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물건은 출산 후 적어도 일 년 정도는 내가 다시 꺼내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할 물건들 사이에서 나는 작은 파우치를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이 파우치 안에는 천 조각 위에 반쯤 완성한 사시코 자수가 놓여있었다. 색을 다양하게 구비해두어야 언제 든 바로 수놓기 시작할 수 있는 자수(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랑스 자수)나 두께별로 털실을 갖춰두어야 도안에 맞는 게이지를 낼 수 있는 뜨개와는 달리 사시코 자수는 천 한 조각과 바늘 그리고 실 한두 가지 색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바느질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래 번호 중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사시코 자수를 시작해 보길 권하고 싶다.
다양한 재료를 준비하기 막막하다
그림을 잘 못 그린다
손재주가 없다
무언가 실용적인 것을 만들고 싶다
사시코 자수는 일본어로 찌른다는 뜻의 ‘사수(sasu)’와 작은 물건을 뜻하는 ‘코(ko)’에 유래를 두고 있다.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바늘로 천을 (홈질하듯이) 찌르기만 하면 된다. 그 시작은 직물을 보강하고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직물에 장식적인 요소를 더하는 자수로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시코 자수를 할 때 기본적인 규칙 몇 가지만 유념한다면 자수를 놓는 직물과 실은 그 어떤 종류를 사용해도 상관없지만, 첫 시작은 부드러운 무명천과 면실을 사용하는 편이 손에 편하게 잡히기 때문에 좋겠다.
사시코 자수는 그 어떤 도안을 보더라도 기본적인 규칙은 동일하기 때문에 관련 자료나 도서를 많이 갖춰야 하는 부담감이 적다. 우선 첫 번째로 주의해야 할 점은 간단한 홈질이라도 반드시 일정한 크기의 땀과 텐션으로 바느질해야 한다. 그다음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1] 이정혜 (2019), 『기초부터 차근차근 사시코 자수』, 한국: 파파스.
매듭을 대신해 시작과 끝은 되돌아 박기
모서리 부분은 각지게
문양이 ‘T’ 자로 교차할 때는 땀(ㅡ)과 땀(ㅡ) 사이 빈 공간 중앙에 (ㅣ) 교차
문양이 ‘+’ 자로 교차할 때는 가운데 교차점을 비워 두기
원단 중앙에서 공간을 나누어 가며 바느질하며 원단이 밀리지 않도록 조절하기
나는 우선 천 두 장의 앞면을 맞대고 가장자리를 꿰맨 다음 창구멍으로 뒤집어 내가 만들고 싶은 크기의 행주의 형태를 만들었다. 형태가 완성되면 이제 그 위에 수놓을 도안에 따라 격자를 그리고 패턴에 맞게 홈질을 하면 된다. 격자가 이미 그려진 사시코 전용 원단을 구매해서 사용할 수도 있고, 일반적인 무지 천을 사용할 경우 수성펜과 자로 일정한 간격의 격자를 그리고 시작할 수 있다. 자수바늘을 사용해도 괜찮지만, 자수실 보다 비교적 굵은 사시코용 면실을 끼우기 편하게 바늘귀가 큼지막한 사시코 전용 바늘을 사용하는 것이 편하다. 도안에 따라 전체적으로 홈질을 완성했다면 디자인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앞면에 장식적으로 실 걸기 등의 기법을 추가할 수 있다. 만약 천이 두 장도 없고 딱 한 장만 있다고 해도 괜찮다. 사시코 자수는 매듭이 없이 되돌아 박기로 뒷면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때문에 천 한 겹만 가지고 만들 수도 있다.
완성된 사시코 자수는 부엌에서 행주로 사용해도 되고, 덮개나 코스터 등의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재료만 미니멀할 뿐만 아니라 기법도 단순한 홈질의 반복이고, 한 가지 완성품으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미니멀 라이프스타일에 걸맞은 바느질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로 결심하고 아껴둔 모든 물건을 버린 채 천 한 마와 실 한두 색만 남기는 날이 온다면, 바로 그런 날에 하기 좋은 자수가 바로 사시코 자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