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처음으로 하루 10통의 스팸문자를 받았다. 귀국 후 새로 만든 한국 번호가 문제였던 거다. 이 번호의 전 주인이 여기저기에 번호를 뿌려 널리 scammer들을 이롭게 한 모양이다. 당시 일을 찾고 있던 차라 연락이 오면 바로 확인을 했는데, 열에 여덟은 스팸문자였다. 통신사의 스팸 차단 서비스를 사용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인 사사키 후미오의 '거절력'에 대한 글을 읽었다. (번역) 미니멀리스트들은 이미 거절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과 더 나아가 제로 웨이스트로도 이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거절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이미 물건은 많이 거절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것 외에도 내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것들은 무엇인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스팸문자들이었다. 알림을 꺼놓는 것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거절해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작한 것은 'NO SPAM WEEK'.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스팸 문자와 전화를 0개로 만들자는 생활 속 프로젝트였다.
스팸 문자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도 쫓아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통신사의 스팸 문자 차단 서비스에 '국외 발신', '투자' 등 각종 차단 문구를 추가했다. 스팸전화 차단 앱을 설치하고, 스팸으로 뜨는 전화번호를 오는 족족 일일이 차단했다. 그러고 나니 스팸 연락이 0에 수렴했다. 스팸문자가 쏘아 올린 작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더없이 후련했다.
왜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실질적으로 눈 앞에 보이는 게 아니니 잠깐 안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귀찮으니까 그냥 두자. 어차피 조만간 이 번호도 안 쓰게 될 테니까. 그렇게 광고, 연락, 인간관계는 불필요한 게 있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잠깐 쓱 보고 넘기면 되는데 뭐가 대수냐 싶겠지만 30초, 1분씩 내 주의를 끄는 것들이 쌓인다면, 3시간 집중할 수 있는 것이 30분 단위로 끊긴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나의 집중력을 내가 리드하기 위해, 생각을 비우기 전 정리정돈 단계로써 더 강렬하게 거절해보자.
거절하는 게 귀찮아서,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에 전단지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내 친구들이다. '전단지를 받아주지 않는 당신은 냉혈한이군요'라고 누군가 내게 말한다면 나는 할 말이 또 많다. 첫 번째는 어차피 나는 그 전단지에 1도 관심이 없으니 받아도 낭비일 뿐이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내가 마지못해 한 장씩 받다 보면 또 그만한 전단지 뭉텅이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선에서 최대한 정중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거절한다. (그것은 손이다.) 물론 나도 아르바이트할 때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해봤다. 가게가 한산하면 밖에 내보내 졌는데, 꼭 한겨울에 그런 일이 걸렸다. 그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단지를 얼떨결에 받고 다섯 걸음 지나가서 길바닥에 버리는 것보다는 거절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우편함과 현관에 있는 전단지도 받지 않으려 한다. 호주의 우편함들처럼 광고는 거절한다고 붙여놓든지,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의 저자 비 존슨처럼 전화해서 지구 끝까지 쫓아갈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쓰레기인 것들도 거절한다. 때로는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필요 없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봉투와 영수증뿐만 아니라 빨대, 냅킨, 커트러리 등등 가게만 들어갔다 나오면 쓰레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나오지 않는가. 나는 귀찮아서 말하지 않는 것보다 쓰레기를 가득 들고 가게를 나서는 게 더 싫은 기분이 들어 매일 적극적으로 거절한다. 아니면 단골이 되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최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포인트 카드도 거절한다. 대부분의 포인트카드는 귀찮거나, 내 개인정보와 구매이력과 맞트레이드를 하는 느낌이 들거나(그것에 비해선 좀 짠 거 같지만), 포인트가 얼마네 곧 소멸되네 하는 핑계로 메일이나 문자를 보내오기 때문이다. 봉투든 포인트카드든 결국 광고와 마케팅의 일종이고 그것이 지나치면 스팸이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원래는 '그래 누군가에겐 광고가 수익일 수도 있는데'라며 광고를 차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도를 넘는 광고 소재들, 내 유저 경험을 방해하려고 작정한 듯한 광고 사이즈와 배치, 그리고 무단으로 남의 콘텐츠를 긁어오거나 짜깁기 한 곳에 광고를 올려 수익을 올리려는 사람들 등등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렇게 광고 차단하는 기능을 쓰기 시작했다.
광고를 차단하고 끝나버리면 너무 매정하긴 하다. 뉴스 사이트 등 실제로 광고가 꽤 비중이 큰 수익인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멤버십 구독과 후원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 좋아하는 플랫폼과 사이트에는 광고 차단 기능을 풀어놓기도 한다. (그걸 브런치라 말하고 싶지만 브런치는 배너 광고가 없다.) 또, 음악이나 영화, TV 프로그램을 볼 때는 항상 돈을 지불한다. 지금은 못 가지만 영화관과 공연장도 정말 자주 다닌다.
투두 리스트 추천으로 '매일 2개씩 광고 메일 구독 해지하기'라는 게 있는 걸 보면, 스팸에 시달리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스팸 문자와 메일을 받지 않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애초에 내 연락처를 널리 알리고 다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전체 동의'를 경계한다. 그 전체 선택 속에는 종종 '(선택)'이 숨겨져 있고, 그것에 체크하는 순간 광고와 마케팅 문자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이미 저지른 일이거나 나도 모르게 받고 있는 광고 메일이 있다면 간편하게 메일함을 정리하고 구독 해지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사용하자. unroll.me 사이트가 그중 하나이다. 심지어 무료다. 다만 네이버 메일은 열심히 시도해봤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네이버 계정은 그냥 삭제했다.
메신저 아이디와 연락처는 받지 않는다. 메신저 아이디로 오는 게임 메시지,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염탐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은 한 번씩 겪어봤을 것이다. 또 한 번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가 그 번호가 인스타그램과 연동되어있는 바람에 내 사생활을 작정하고 다 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그 대신에 약한 연결의 의미로 페이스북 계정을 준다.
이전에 봤던 채용 공고 중에 회사의 장점으로 이런 게 써져있었다. '우리는 카톡으로 업 무안해요.' 그때는 카톡으로 업무를 하는 곳이 얼마나 많길래 이게 장점인가 싶었다. 얼마 안가 그게 사실이란 걸 몸소 체험했다. 클라이언트들은 당연하게 모든 것을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하거나, 보내준다고 했다. 카톡이 없다고 하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카톡이 편하고 빠르다는 게 이유겠지만.
워라밸을 챙기자는 말이 나온 지 꽤 오래되었지만 업무 내용을 카톡으로 주고받는 곳은 아직도 많다. 사내에서 기업용 메신저나 협업 툴을 써도 외부 연락할 땐 결국 카톡을 쓴다든지, 사내에서 카톡이 금지되었는데 주말마다 임원진들이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한다는 고충을 들어본 적도 있다. 개인이 쓰는 메신저 계정으로 업무 이야기가 주고 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일과 삶의 경계가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면접 볼 때 어떤 협업 툴을 쓰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카톡은 몇 년 전에 이미 탈퇴해놨다. 이것이 내가 카톡 업무를 거절하는 방법이다. 2016년 프랑스에 이어 이탈리아와 뉴욕시까지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법이 제정되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권리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어딘가에선 전혀 당연하지 않다. 내가 한국에서 일하는 여러 곳의 사람들은 카톡으로 무언가를 재촉하진 않지만, 아직도 어떤 오피스에서는 카톡 소리가 열심히 울려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학교 신입생들에게 가장 큰 난제는 OT와 MT부터 시작해서 있는 각종 행사들에 꼭 가야 하는가? 일 것이다. 나도 그랬고, 나는 결국에 있는 데 없는 데 다 참석하면서 다녔다. 지금은 좀 덜한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참석하지 않으면 '아싸'가 되어버린다는 게 무서웠다. 그땐 밥도 혼자 못 먹을 때였다.
나에게 모든 만남과 인간관계, 때로는 연애까지도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니까, 혼자서 하긴 좀 어색하니까, 그건 무서우니까. 각종 스터디, 모임, 밋업을 쫓아다녔다. 지금 돌아보면 남은 관계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좋은 인간관계는 꼭 자리를 만들어준다고 생기지 않는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관계는 저절로 따라온다. 또, 상황에 따라 맞는 친구와 연이 있는 법이다. 더 이상 나와 같은 세계를 걷지 않는 사람들을 굳이 끌고 갈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 우정 포에버 이런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무자비한 인간관계와 모임의 끝에서 배운 것들이다.
스터디를 빙자한 술 모임 겸 미팅, 단합을 빙자한 뭔가 불편한 자리, 필수처럼 느껴지지만 생각해보면 굳이 왜 갔나 싶은 자리들, 나와 같은 세계를 걷지 않는 예전 친구들, 혹시 몰라서 남겨둔 관계들은 모두 청산했다. 거절하는 것도 처음만 힘들다. 우리 필요할 땐 잘만 둘러대잖아요. 딱 그렇게 한마디만 하면 된다.
이제는 혼자 먹는 밥이 제일 마음 편하다. 글을 쓰고 깊게 사고하기 시작한 것도 혼자서 밥을 먹으며 시작했다.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든, 누구와 함께하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과 지낸 시간만큼 나 혼자서 지내는 시간도 늘 동일하게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