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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Sep 04. 2022

미니멀리스트의 재난 대비 키트

쓰나미 주의보가 오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새벽 12시, 쓰나미 주의보가 울렸다. 자다가 놀라 허겁지겁 휴대폰의 재난 알림을 확인하고는, 너무 당황해서 그대로 사고가 정지되어버렸다. 일단 큰 가방을 챙겼는데, 어디로 대피해야 하지? 그냥 집에 있어도 되나? 다른 사람들은 왜 조용하지? 


내가 지금 일본에 살고 있는 곳은 굉장한 배산임수를 자랑한다. 그 뜻은 그만큼 재난재해의 리스크가 더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가 많이 내리면 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오고, 강은 범람하며, 바다로부터 쓰나미가 올 수 있는 삼박자를 갖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재난 대비에 너무나도 무른 미니멀리스트였다. 물건도 별로 없으니 그저 큰 가방에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쓸어 담아서 높은 곳으로 허겁지겁 뛴다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사는 동네에 쓰나미는 오지 않았고, 근처 주민들은 아무도 대피를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나에겐 나만의 재난 키트가 생겼고 뜻밖의 타이밍에 머릿속에서 재난훈련 시뮬레이션을 하게 되었다. 일본에 오기 전엔 지진이 오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기본적인 지식도 없었던 내가, 쓰나미 주의보 이후로 재난 키트까지 준비하게 되기까지의 깨달은 것들을 미니멀리스트의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당시에 받았던 재난속보 알림. 회사폰과 개인폰이 동시에 몇 번이고 울려서 잠을 자지못했던 기억이 있다.






대피소로 지정된 곳은 다 이유가 있다

저 옆에 있는 산으로 뛰어가면 금방인데, 도대체 왜 도보 10분도 넘게 있는 거리에 위치해있는 체육관으로 대피하라는 거야? 집 근처 대피소 안내문을 유심히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쓰나미 주의보가 오고, 머릿속으로 쓰나미가 오고 난 후의 3일간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깨달았다. 대피소 지정에는 깊은 뜻이 있음을. 


내가 생각한 대로 옆산으로 뛰어가면 금방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 같은 시설이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봤을 땐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며칠간 바깥에서 추위에 덜덜 떨고 있어야 할 위험이 있다. 


오케이, 그렇다면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정 대피소는 어디인지 알아놨다. 그럼 끝일까? 어떤 동선으로, 어떤 수단으로 그곳에 가야 할지도 정해놓으면 좋다. 차로 가면 빠르지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해서 차가 막혀버린다면? 너무 비가 많이 왔을 때 자전거로 가는 게 안전한 길인가? 만약 시간 내에 전속력으로 달려갈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생각할만한 장소는 어디인가? 


Todos : 각 지자체의 대피소를 찾아보고, 위치를 잘 숙지해두자. 어떤 동선과 수단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두면 더욱 좋다.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만약 재난재해가 발생한 경우, 연락이 불가능할 때를 대비해서 어디에서 만날 지를 미리 정해두라는 팁을 본 적이 있다. 애완동물이 있는 경우에도 충분히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일본에서 쓰나미의 위험이 있는 곳은 곳곳에 해발 몇 m인지 써져있다. 출처 : https://www.jiji.com/jc/d4?p=eqa200-jlp10865426&d=d4_top






대피할까 말까?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쓰나미 주의보가 울리고 몇 분 뒤, 우리 동네는 조용했으며 아무도 대피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일까? 그건 이곳의 지반 높이와 바다와의 거리를 생각했을 때, 0~1m의 쓰나미가 가장 가까운 바다에서 온다고 해도, 이곳에 도달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능성을 재면서 대피를 하지 않았다가 피해를 입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대피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밤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도보 10분 넘는 거리에 있는 곳으로 뛰어서 대피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고, 대피소가 열리지 않아 헛걸음을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쓰나미 주의보가 울릴 당시에도 이걸 대피해야 돼 말아?로 몇 분 간을 고민한 채로 가만히 베란다 창문 앞에 서있었다. 재난재해 시에는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대피 기준을 정했다. 그 기준은 1m 이상의 쓰나미가 예상될 때 울리는 쓰나미 경보. 


Todos : 재난 재해시에는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 각 자연재해 별로 어떤 상황일 때 대피를 할지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두는 게 좋다.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누굴 믿을 것인가? 

친구, 가족, 뉴스, 방송사, 라디오, 인터넷, 트위터, 카카오톡, 등등.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어느 정보통을 믿을 것인가? 트위터는 빠르지만 정보가 불확실할 가능성이 있고, 카카오톡이나 인터넷은 빠르지만 재해가 일어난 후 최악의 경우 인터넷이 제대로 터지지 않는 이슈가 생길 수도 있겠다. 나는 뉴스와 라디오를 믿기로 했다. 친구와 카톡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신뢰도 높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빠르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줄 수 있는 채널로써 일본의 국영방송인 NHK를 선택했다. 


Todos : 재해 발생 시 신뢰도가 높고 빠른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 나에게 최적화된 수단과 채널을 하나 정해두자.
내가 구매한 재난 대비 키트. 출처 : https://www.muji.com/jp/ja/store/cmdty/detail/4550344909430






미니멀리스트의 재난 키트 목록

재난 키트는 현관문의 제일 가까운 곳에, 가방 속에 꼭 필요한 물건만, 최대 3일 치를 버틸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준비해두고 있다. 이렇게 최소한만 구비해 둔 이유는 미니멀리스트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물건이 적으면 무엇이 들어있는지 파악하기 쉽고, 무게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 키트의 구성은 집집마다 다르다. 어떤 집은 커다란 상자 안에 일주일, 한 달을 버틸 만큼의 레토르트 식품과 생수 등을 구비해둔 곳도 있다. 


무인양품에서 구입한 재난 대비 키트(휴대용 화장실, 몸을 감쌀 수 있는 시트,  양초 등)

자가발전이 가능한 라디오

호루라기

핫팩

보조배터리

간단한 식량


Todos : 가족 구성과 상황에 따라,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씩 구비하는 것이 힘들다면, 재난, 생존 키트를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쿄도의 도쿄방재 가이드북. 출처 : https://www.bousai.metro.tokyo.lg.jp/1002147/1007120.html






자연재해는 나라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진이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한국도, 몇 년 전부터 종종 지진이 오기 시작했다, 올해는 한국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들이 이상기후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나라는 절대 지진이 안 올 테니까, 이 지역은 쓰나미에서 안전해, 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진설계가 정말 잘되어있는 백화점 같은 경우에는, 진도 4.0에도 천장 조명만 살살 흔들린다든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지진이 오기 전에 반드시 알림이 울리는 이곳도, 예상치 못한 일은 종종 벌어지고, 대규모 자연재해에는 인간이 막을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대비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많이 준비해서 독이 되는 경우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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