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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Jun 04. 2023

미니멀리스트의 이사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

미니멀리스트라 혼자서 캐리어 하나랑 가방 하나 들고 버스 타고 이사했어요. 는 쉐어하우스 시절 이야기다. 처음으로 방을 계약해 보니 조달해야 할 물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각종 식기부터 최소한의 가전과 가구까지. 주변에서는 미니멀리스트니 이사도 금방 끝나겠네,라고 말해줬고, 당연히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이사 당일 2주 전까지는. 


생각해 보니 부동산에 전화할 때마다 '혹시 이번에 이사하시려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들었고 전근이나 취업 등의 선택지가 나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요'라고 대답했다. 뭐 딱히 커다란 이유는 없었고 예전 집의 계약을 갱신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니까. 그리고 이사를 해보고서는 왜 사람들이 전근과 취업 등 어쩔 수 없이 살 곳을 옮겨야 할 때만 이사를 하는지 아주 잘 알게 되었다. 


30분 만에 짐 정리 다하고 택시로 셀프 이사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왜 일주일 전부터 그림을 그려가며 이 짐이 모두 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며 수면부족에 시달린 것인가. 애초에 미니멀리스트란 무엇인가. 이사를 하면서 배우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컨테이너의 사이즈는 높이 1.7m x 가로 1m x 세로 1m였다. 






미션 : 작은 컨테이너 하나에 모든 짐을 넣어라 


미션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3면 도합 160 사이즈의 박스 두 개를 따로 택배로 보냈어야 했으니까. 자전거가 없었더라면 모든 짐이 다 들어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역시 조건에 맞으면서도 역에서 가까운 집을 구하는 데에 실패했다. 애당초에 조용한 곳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선로 가까이에 산다는 것만큼 굉장한 모순이 없다. 


짐은 커버 사진에 찍히지 않은 소다스트림, 전기 케틀, 무릎까지 오는 냉장고, 접이식 미니 자전거,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이들을 컨테이너에 넣고, 요가 매트처럼 크기가 애매한 물건들을 박스에 넣어 택배로 보냈다. 지금 살고 있는 나라의 모 택배회사가 제공하는 이사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왜 사람들이 돈을 더 주고 포장 이사를 하는지, 이사 전후로 휴가를 내는지 등등 이사에 대해 아주 뼈저리게 배웠다. 






이번에도 자연경관과 자연재해의 리스크를 동시에 얻었다. 






물건을 살 때도 책임감이 필요하다


실패한 것은 미션뿐만이 아니다. 예전 집에서 야심 차게 시작한 베란다 가드닝도 단기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햇빛이 들어오는 각도와 벌레 등등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너무 많았다. 이사 전에 가드닝 용품을 다 처분하고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어떻게 팔지 또는 버릴지에 대해서 찾아봤다. 내가 살던 시에서는 재배용 흙을 수거하지 않으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써져 있었다. 산에 가서 뿌려야 되나 아님 한 줌씩 갖고 다니면서 뿌려야 하나, 무얼 생각해도 법의 범위를 벗어나는 듯했다. 그때 마침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 불필요한 물건 무엇이든 처리해 드립니다 서비스였다. 종류가 뭐든 트럭에 가득 수거하러 와준다는 것이었다. 


당장 신청해야겠다며 신청 버튼을 누른 순간, 다양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 거대한 양의 흙은 어디로 가는가? 재활용은 불가능하니까 불태워버리나? 근데 흙은 불에 안 타지 않나? 그럼 처분이 안되니까 다른 나라에 수출돼서 어딘가에 묻혀버리려나? 이런 식으로 실패의 결과물을 계속 수거해 준다면 아무 생각 없이 또 실패하는 거 아니야 등등. 그 생각의 결과, 불필요한 물건으로 버려버리는 대신, 당근마켓 같은 어플에서 가드닝 용품을 무료로 나눔 했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인데,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수출하는 것 중에 쓰레기도 포함된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헌 옷을 수출하고 그중 일부는 그저 다른 나라의 어딘가에 산처럼 쌓여있다는 모양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 그렇다면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물건인가. 책임감은 물건을 살 때도 필요하다. 


TIPS : 오랫동안 애용하는 브랜드를 정해둔다. 가능하다면 플라스틱보다는 천연소재로 된 물건을 만드는 곳으로. 물건을 사기 전엔 항상 어떻게 쓸지, 어떻게 소모될지, 어떻게 버려지고 재활용될지,  물건의 사이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왜 인간은 처음 보는 물건에 홀리는가


해외 수입 식료품을 전문으로 파는 유명한 체인점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식료품점에 매번 홀려 들어간다. 이곳은 외국에서 팔다 남은 재고를 들여와서 파는 것인가, 또 맛이 없다,라고 불평하면서 왜 매번 들어가서 한 바구니를 사 오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그 결과, 조미료만 한 박스, 아니 두 박스가 나왔다. 식료품은 언젠가 소모하니까 사도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하나하나 모여 태산을 만들었다. 


더 이상 SNS를 하지 않고, 유튜브도 거의 보지 않기에 신상품이 나왔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 살지만, 밖에 나가면 널려있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식료품에는 아직도 눈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사할 때 엄청난 양의 조미료와 건조식품을 보고 나서는, 더 이상 정체불명의 조미료는 호기심에 사들이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 있어 식료품점은 입구에서 마음을 다잡고 들어가는 호기심 천국이다. 


TIPS :  식료품은 가까운 마트와 시장에서 산다. 장바구니의 무게와 가져온 가방의 사이즈가 눈에 보이면 코코넛밀크 20개입을 살 일이 없다. N + N  같이 많이 사면 저렴해진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코스트코와 인터넷 주문도 멀리하자. 우리는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고, 그렇게 많이 보관할 장소도 없다. 




도심이야말로 미니멀리스트를 위한 곳


다른 미니멀리스트의 이야기를 들을 때 딱 한 가지 부러운 게 있다. 어차피 밖에서 먹는 게 여러모로 이점이 있으니 집에서는 요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집에 식기나 조미료도 두지 않는다. 비단 외식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도심은 여기저기 공유 자전거나 킥보드도 있고, 최근에는 우산 공유 서비스까지 봤다. 도심에 살지 않는 대신 자연을 선택해서 왔고, 크게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없지만, 조금 더 공유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편리했다면, 선택지가 더 많았다면 자전거나 요가매트를 무리해서 가져오지 않았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내가 아예 산속으로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조금 거리가 있지만 도서관이나 가장 기본이 되는 서비스들은 존재한다. 요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도서관에 있다면 판다든지, 요가매트를 빌려주는 요가원까지 자전거로의 접근성 등을 생각해 보는 식으로 내 나름대로 집 밖의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 어쩌면 자전거 없이 뛰어다니거나 요가매트 없이 집에서 요가하는 길을 선택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새 집은 이곳저곳 빛이 많이 들어와서 집에서 사진 찍는 일도 즐겁다. 






예전에는 무조건 버리고 버려서 무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는 게 이상적인 미니멀리스트였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어디든 안고 갈 수 있는 만큼의 물건을 오랫동안 소중하게 쓰는 것이 이상적인 미니멀리즘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상황별로 필요한 물건은 생기기 마련이니까. 


이사 온 새 집은 물건이 너무 없어서 목소리가 다 울릴 정도로 좀 더 넓어졌다. 그 대신 예전 집보다 더 많은 햇빛과 자연경관을 방안에 들이고 있다. 그게 우리 집 인테리어다. 산과 강, 그리고 바다, 여태 본적 없는 거대한 쇼핑센터, 그리고 근처의 기분 좋은 카페까지, 새로운 곳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는 만큼 더 많은 물건을 줄일 수 있기를. 이사는 생각보다 험난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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