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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Mar 05. 2020

사진 미니멀리즘: 하루 1장의 사진만 남길 수 있다면

생각보다 고르기 어려울 걸

더 많은 물건을 두기 위해서 더 큰 집을 사고, 창고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은 비단 오프라인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더 많은 돈을 주고 한 단계 큰 용량의 스마트폰을 구입하거나, 외장하드 같은 물건을 소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대부분의 파일은 어떤 것인가. 


나 또한 몇십 기가의 사진 파일을 갖고 있었고, 그 때문에 다른 파일들은 500기가 외장하드에 꽉꽉 채워 저장해야 했다. 그 외에도 매년 먼지가 쌓여가는 거대한 앨범과 졸업앨범들이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래된 사진들은 추억이고 다시 찍을 수도 없는, 아주 소중한 것이기에 반드시 남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수 천장, 수 만장의 사진을 후대에 물려주더라도 결국 곤란해할 뿐이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사진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옛날 선조들, 그 위대하다는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사진 몇 장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아냈다. 내 인생을 말하기 위해 몇십 기가의 디지털 파일이 정말로 필요할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진인가'를 기준으로 잡고 사진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앨범에 있는 사진이든, 컴퓨터 속에 있는 사진이든, 마치 처음 미니멀리즘을 하기 위해 서랍을 다 들어냈던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사진을 꺼내보았다. 


음식 사진, 시도 때도 없이 찍은 셀카, 책 내용이나 각종 정보를 스크랩하기 위해 찍어둔 것들을 모두 삭제했다. 초점이 나가거나 중복된 사진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이 사진도 저 사진도 버리기 싫을 땐, 슬라이드 쇼를 이용했다. 사진이 나를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달의, 혹은 그 해의 사진이 하나의 '스토리'처럼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슬라이드 쇼로 넘겨봤을 때 하나의 ‘스토리’로 자연스럽게 보이는지가 핵심이었다. 그렇게 한 해 동안 찍은 1000장의 사진은 금세 100장이 되었다. 


오래된 앨범은 더 엉망이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들과 어색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찍은 단체사진들을 보면서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지간히도 찍기 싫었구나. 어렸을 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찍힌 사진들 천지였다. 그렇게 단체 사진들은 고민 없이 전부 버렸다. 졸업앨범도 내 사진만 따로 찍어두고 그 자리에서 안녕.


그렇게 앨범 속 사진들은 연도별로 한 장씩만 남기고 모두 버렸다. 남은 사진은 스캔해서 보관한 뒤 모조리 처분했다. 스캔은 Camscanner라는 어플을 이용하거나, 애플 기본 앱인 메모 속에 있는 스캔 기능을 이용하면 되니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바탕 이렇게 뒤집어엎고 나니 모든 오프라인 앨범과 사진은 사라지고, 내 구글 드라이브 속 사진들은 1기가 남짓한 정도만 남았다. 







모든 서류, 사진 등 파일이 담겨있는 나의 구글 드라이브. 많이 줄이고 줄여 지금은 3기가가 채 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음식 사진도, 셀카도 더 이상 찍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찍었다가 다시 시간을 들여서 그것을 다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 때문이다. 물론 농담이다. 


우리의 스마트폰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들은 그런 마음에서 찍은 것들이다. 어쩔 때는 내가 여길 사진 찍으러 온건가 싶기도 하고,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보다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로 보는 시간이 더 길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사진 미니멀리즘에 하루 반나절을 다 쏟고, 애초에 불필요한 사진을 덜 찍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나의 '사진 덜 찍기 운동'은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은 어차피 다른 사람이 더 잘 찍어서 공유하겠지, 라는 마음이었다. 그 게으른 마음이 지금은 여유로 이어졌다. 나는 여행이든 무엇이든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보다, 다시 또 올 수 있으니까 일일이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매 순간을 즐기고 있다. 


한국의 식문화는 외식할 때 식사가 나오면 먹기 전에 사진 먼저 찍는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기억한다. (외국인 친구에게 함부로 그런 농담을 하지 말길 바란다. 그런 풍경들은 지금도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에 진짜로 믿어버린다. 생각보다 일이 심각해진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 때, 한국, 중국, 일본인만 유독 모든 것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같이 살 땐 몰랐는데 밖에 나오니 유독 눈에 띄었다. 나도 한 때 그랬는데 괜히 신기했다. 여행하면 누구나 다 그럴까? 글쎄, 최근에 서울로 여행 온 외국인 친구들이 사진을 한 번도 찍지 않아서 꽤 놀랐다. 그리고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결국 남을 위해 사진을 찍어온 것은 아닐까. 


이제는 어딜 가도 사진은 거의 찍지 않는다. 그것보다 마음에 담아두고 그 순간을 더 만끽하는 데에 온 정신을 기울인다.


하루에 한 장의 사진만 남길 수 있다면, 당신은 오늘 무엇을 찍을 것인가? 마치 미니멀리스트들이 물건을 새로 사지 않는 대신 경험으로 채우는 것처럼, 앞으로 나는 사진을 최소화하고 생각과 글은 최대화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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