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kie Jul 23. 2020

옷장 미니멀리즘 : 8벌이면 충분하다

이러다 내년엔 4벌만 입고 다니게 생겼다

"저기... 사실 옷장이 없는데 괜찮으신가요?" 쉐어하우스를 보러 간 날, 집주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방에 있는 진짜 옷장은 집주인의 겨울 용품 창고고,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작은 행거뿐이라고 했다. "완전 충분한데요? 제가 미니멀리스트라서요." 그때까지만 해도 집주인은 이렇게 짐이 적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나 보다. 이사 온 날, 행거에는 옷걸이 한 무더기가 걸려있었다.


나는 상의, 하의, 외투를 모두 합쳐 8벌을 가지고 있다. 1년 전에는 15벌이었으니 절반이나 줄은 셈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내년엔 4벌만 입고 살지도 모르겠다. 아직 나는 엄청나게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도 아니다. 작년에는 이 옷들로 면접도 봤고 요가도 열심히 했다. 올해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아직까진 3가지 옷을 매주 돌려 입는다고 누가 뭐라 한 적은 없다.


세상 제일가는 관종은 바로 나였다. 동물옷 같은 걸 입기도 하고, 원색 디자인에 빠져있던 때도 있었으며, 생활한복을 학교에 입고 다닌 적도 있다. 그렇게 관종 라이프를 만끽하다 첫 해외생활 후 귀국을 했다. 번화가 입구에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다들 개성 있게 입고 다니는 편이야,라고 말했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다들 같은 스타일의 옷과 비슷한 색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각자 달라 보이는 건 왜일까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여러 번 대화를 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의외로 내면이 인상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징이 박힌 라이더 재킷을 입지 않아도 내면이 강한 사람은 그렇게 보인다. 사람의 눈동자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며,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은 40대부터가 아니라 20대부터 이미 시작된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얼굴과 표정에 다 쓰여있다는, 수학 선생님의 명언이었다.)


그렇게 관종은 숙연해졌다. 자연스럽게 패션 관종 생활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아니 영구 탈퇴를 한 셈이다.










옷장은 다이소가 아니라 편집샵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적은 옷으로 생활한 것은 아니다. 나도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처럼 최소 20리터 봉투 5개 분량의 옷을 비워냈다. 아파트에 있는 그 큰 붙박이장이 꽉 차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옷장계의 다이소나 다름없었다. 다이소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모아 저렴하게 판매한다. 다이소에 갈 때면 저렴하니까 뜻하지 않게 다른 물건도 사게 되고, 컵이 너무 많아 이 중에 뭘 살까 고민하느라 시간이 다 갔다.


그걸 매일 아침 옷장에서 하고 있었던 거다. 옷이 너무 많아 이 중에 뭘 입을까 고민한다. 그러다 결국 딱히 입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파 브랜드가 저렴하니 들렀다가, 괜히 다른 옷도 충동구매하게 된다. 옷장 정리하다 보면 내가 찾던 옷이 어딘가 구석에 박혀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편집샵에 가본 적이 있는가? 나는 편집샵에 가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 수줍게 공개한 자신의 취향을 샅샅이 뒤적여보는 느낌이다. 그 가게에 주인이 없어도 벌써 그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만약 그 취향이 내 취향과 어떤 공통점이 있다면 그땐 이미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방에 편집샵으로 만들기로 했다. 매일 아침 옷장을 볼 때 한숨이 나오는 게 아니라, 기분이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 옷만은 꼭 있어줬으면 좋겠어, 매일 입을 거라고 약속할게!라고 말할 수 있는 옷들만 갖고 있다. 그리고 정말 매일 번갈아 가며 입고 있다. 이곳은 소재, 색, 기능 모든 것에 대해 엄선해서 큐레이션 해놓았다. 그렇기에 내 옷장은 곧 내 취향이다.


Solution : 옷을 종류별로, 또는 상황별로 3개씩만 남겨보자. 괜찮으면 2개, 더 도전하고 싶으면 1개만 남기자. 종류와 가짓수를 줄여보는 것도 좋은 챌린지가 될 수 있다. 나머지 옷은 박스에 넣어두자. 한 계절이 지나도, 혹은 1년이 지나도 그 옷에 손도 대지 않았다면 그때가 과감히 비워도 될 때이다.




겨울, 여름용 옷은 없다


올해 갖고 있던 바지는 청바지 딱 하나였다. 그러다 면접을 보게 되어 정장 바지를 샀다. 포기할 수 없었던 기준은 딱 하나. '사계절을 함께할 수 있는 옷인가?'


여름이 다가오는 시즌이다 보니 얇고 가벼운 소재의 바지들이 메인이었다. 여름용으로 너무 얇거나, 겨울용으로 나온 너무 두꺼운 기모바지는 사지 않는다. 반대의 계절에는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날도 사계절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보통 두께의 바지를 골랐다.


여름엔 더워서 기어 다니고, 겨울엔 얼어 죽으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겐 한국의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이너웨어가 있다. 방한 타이즈나 내복처럼 말이다. 나의 경우 겨울에는 정장 재킷에 코트, 목도리를 겹쳐 입는다. 그 사이에 얇은 가디건을 입을 때도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여름 리넨 셔츠를 겨울에도 입고 다녔다. 나는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의 우수회원이라 늘 코트를 입지만, 롱 패딩을 즐겨 입는 여러분이라면 더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물론 패딩이 아무리 따뜻하다한들 난 끝까지 코트를 사수할 것이다.


Solution : 기모바지 대신 방한 타이즈를, 두꺼운 스웨터 대신에 내복을 속에 겹쳐 입는다. 최애 아이템을 1년 내내 돌려 입는 것만큼 하루가 +5% 더 행복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한국은 사계절 날씨라 옷장이 폭발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넣어두자.




옷의 기능은 내가 정한다.

10년 만에 바다에 가게 되었다. 수영복도 필요하다고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오랜만에 가는 바다에 설레어 수영복을 고르고 튜브도 사고 물안경에 선크림 등등 바다 수영 10종 세트를 샀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위해 이것저것 사고 싶지 않았다. 요가복을 수영복으로 입었다. 반팔에 반바지 입고도 잘만 노는 사람들처럼, 딱 그런 기분이었다.


해가 갈수록 상품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간다. 옷, 생활용품부터 음식까지 모든 물건들이 말이다. 계절별로, 피부나 몸 상태별로, 색상별로, 지역별로 그 기준도 무한하다. 내가 어떤 타입에 속하는지를 알지 않으면, 그리고 그것에 맞춘 상품을 상황별로 구비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마저도 든다. 지금은 머리만 해도 샴푸, 린스, 헤어팩, 에센스 등등으로 나눠져 있고 그 상품들은 건성/지성 두피냐 염색모냐에 따라서 또 나뉜다. 하지만 샴푸를 사용하게 된 지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말이다. 그때는 세탁도, 머리를 감고 몸을 닦는 것도 모두 비누로 해결했다.


누구를 위해 상품은 개발되고 세분화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의문을 종종 가진다. 그래서 모든 물건의 기능을 내가 재정의하기로 했다. 옷의 경우, 나는 요가복이나 내 평상복을 물놀이용 수영복으로 쓴다. 수영을 배우러 가는 게 아니니까. 면접에서만 입던 정장 재킷을 평상시에도 입고 다닌다. 청바지와도 매치해본다. 생활 한복은 경복궁 가는 날만 입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입는다. 학교에도 입고 가고, 니트와 생활한복 하의를 매치해서 평상시에 입고 다니기도 했다. 모든 세제와 샴푸는 천연 비누 하나로 대체한 것처럼 옷도 그렇게 줄여나가보려고 한다.


Solution: '기능별, 상황별로 최소 하나씩 갖고 있는 옷은 정말로 필요한가?' 그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시작이다. 그 후 나의 뒤죽박죽 통합의 시작은 사소한 것이었다. 당장 다음 주 바다에 가는데 쇼핑몰이 너무 멀어서 요가복을 입고 갔다. 증명사진 찍어야 하는데 팔에 정장 재킷을 걸고 다니기 귀찮아서 그냥 걸치고 나가봤다. 세탁된 게 없어서 생활한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그렇게 때로는 제한된 상황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3개월 동안 33벌의 옷을 입는 333 프로젝트에 도전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상의 Before&after



특급 관리가 필요한 옷은 처음부터 사지 않는다


흰 티, 흰 리넨 셔츠, 흰 정장 셔츠에는 작별을 고했다. 입을 때도 조심하게 되고, 오염이나 얼룩이 생기면 관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드라이클리닝, 다림질, 얼룩 케어나 표백이 필요한 옷들은 물건과 비용을 더 늘릴 뿐이다. 뿐만 아니라 매번 그것을 관리해야 하는 나의 에너지도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관리가 필요한 옷은 애초에 사지 않기로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고작 2개의) 셔츠들은 다림질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새로 산 정장 바지도 드라이클리닝과 다림질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구매했다. 드라이클리닝이 꼭 필요한 것은 재킷과 코트. 다행인 건 입을 때마다 세탁소에 맡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관리가 필요 없는 대체품으로 언젠간 바꾸고 싶다. 만원이면 아보카도가 6개나 되니까. 플러스 환경에 대한 생각도.


Solution: '작가 당신은 포멀한 정장을 매일 입고 출근해야 하는 내 마음을 몰라.'라고 하시는 분이 계실까 봐 추천하는 아이템은 '링클프리 셔츠'. 나도 언젠간 더 포멀한 옷을 입어야 할 때 구입할 예정이다. 그리고 항상 옷을 구매할 때 옷 안쪽에 세탁 기호가 쓰여있는 태그를 확인하자. 물세탁이 되는지 안되는지 정도는 기호 하나만 외우면 알 수 있다.





하의 Before&after





쇼핑몰보다 중고 옷가게에 먼저 간다.


내가 쓰는 모든 물건은 중고로만 사겠다고 다짐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새 상품으로 구매한 건 정장 바지 하나. 2일 전에 갑자기 면접에 오라는 연락을 받아 급하게 구매했다는 변명 반 이유 반. 속옷과 양말도 새 것으로 샀는데, 중고 옷가게에는 속옷과 양말이 없었다는 변명을 해본다. 중고나라에서 해외배송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다음엔 미개봉 제품으로 속옷과 양말도 중고로 살 것을 맹세한다.


중고 옷가게에 가면 충동구매를 할 확률이 낮다. 물론 저렴하다 보니 이것저것 더 사게 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소비자의 심리를 읽고 충동구매를 불러일으킬만한 전략적인 디스플레이는 없다. 사고 싶어도 사이즈가 안 맞아서 못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중에 딱 맞는 제품을 찾으면 종소리 같은 게 울린다. 너와 나는 운명의 데스티니.


중고 옷가게의 단골이 된 건 호주에서 보고 배운 영향도 크다. 호주에는 동네든 시티든 할 거 없이 중고 옷가게가 넘쳐났다. 빈티지라는 이름을 붙여 더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기부를 받은 물품들로 대부분의 옷들은 10달러를 넘기지 않는다. 나는 호주에 살기 전까지 중고 가게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틴에이저부터 할머니까지, 때로는 가족이 단체로 와서 쇼핑을 하기도 한다. 쇼핑몰의 풍경과 별 차이가 없다. 정말이지 편견 없는 사람들이다. 중고 물품을 사는 것은 미니멀리즘적 소비 방법이자, 제로 웨이스트에도 한 몫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Solution: 나도 안다. 한국에는 내가 말한 중고 옷가게가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와 당근 마켓이 있다. 게다가 한국은 직거래를 유독 사랑하니 온라인에서 중고 옷을 사기엔 더 유리하다. 최애 브랜드를 마음속에 몇 개 간직해두자. 그러면 중고 사이트에서 구매할 때 내가 평소 입던 그 브랜드의 그 사이즈를 알고 있으니 사이즈 선택에 실패할 확률은 낮아진다.






외투 Before&after




분기별 옷장 결산, 쓰지 않는 물건은 순환시킨다.


룸메이트가 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보고는 미니멀리즘을 도와달라고 했다. 호주에 오고 나서 짐이 자가 번식을 하는 것처럼 계속 늘어나서, 귀국할 때 다 들고 가지도 못하게 생겼다며. 미니멀리즘 맛집을 잘 찾아왔다며 반긴 나는 딱 한 가지 룰을 제시했다. '네가 지난 계절에 건들지도 않은 옷은 중고 옷가게에 기부한다.'


작년에는 적어도 3개월에 한 번, 짧게는 일주일마다 거처를 옮기며 살았다. 2년 동안 미니멀리즘을 했어도, 막상 내가 가진 모든 물건을 다 가지고 다니기엔 늘 무거웠다. 처음 묵었던 숙소에서 자기 물건을 기부하고 가는 공간이 있어 그곳에 옷을 몇 개 두고 갔다. 그것만으로도 홀가분해졌고, 이사를 할 때마다 물건들을 몇 개씩 내려두고 갔다. 그 기분에 중독된 나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괜히 가방을 탈탈 턴다. 그리고 하나씩 신중하게 가방에 담는다.


지난달에 내가 이 물건을 한 번도 안 썼나? 그럼 왜 안 썼지? 이 물건이 정말 필요한가? 이 물건이 없어도 B로 대체할 수 있지 않나? 단순한 가방정리지만 수많은 생각들을 거치며 물건을 하나씩 다시 집어넣는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한 달에 한 개 정도의 물건이 기부되고, 다시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어 선순환을 일으킨다.


Solution: 옷장 정리가 연례행사가 되어버리는 건 네이밍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옷을 꺼냈다 집어넣기'라고 명명하겠다. 옷장에 있는 옷을 모두 밖으로 꺼낸다. 그리고 다시 집어넣는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필요하지 않은 옷, 정말 필요한 옷을 무의식 중에 구분하고 있을 것이다.





기타 Before&after




요가복을 버리고, 귀걸이는 잃어버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제 둘 다 없이 산다. 요가복을 버린 건 호주 요가원에서 사각팬티 한 장만 입고, 또는 반바지나 헐렁한 바지를 입고도 잘만 요가하는 사람들을 만난 게 계기였다. (물론 자세를 보고 교정받기 위해서 헐렁한 옷보다는 요가복을 입는 게 좋다고는 하다. 요가 선생님 왈.) 그 후로 중고 옷가게에서 산 민소매와 반바지만 입고 요가를 한다. 좋은 점은 민소매는 정장을 입든 뭘 입 든 안에 받쳐 입는 용도로도 사용하고, 반바지는 어디서나 입을 수 있으니 이보다 유용할 수 없다.


귀걸이와 피어싱은 치과에서 엑스레이 찍고 왔다가 몽땅 잃어버렸다. 다시 살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안 사기로 했다. 이로써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 하나 더 줄어서 행복해요.


나의 옷장 미니멀리즘은 의문을 갖고 창의성을 발휘하고의 연속이다. 이래도 될까? > 이래도 되겠는데? > (편안). 점점 줄어드는 옷장을 볼 때마다 괜히 좋아지는 이유는, 그것이 더 확고해진 내 가치관과 싱크빅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유목민으로써,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살 거라는 목표에 매일 더 가까워진다.


이제 나는 비워진 옷장을 내 태도와 자신감으로 채워간다. 내 옷이 화려하진 않아도 오랜 시간 사고한 과정과 결과, 그리고 매일 체화한 지식들을 보여주는 순간 나는 그 누구보다 돋보인다. 그래서 나는 8벌로도 충분하다.

이전 06화 미니멀리스트는 몇 개의 물건을 갖고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