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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Aug 06. 2020

미니멀리스트는 몇 개의 물건을 갖고 있을까

1일 1개 버리기로 부족하다면 해볼 만한 물건 세기

2년 전 호기롭게 내가 가진 물건을 세겠다고 나섰다가 보기 좋게 포기했다. 세다가 차라리 자기 전 양을 세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개는 족히 되었으니, 그땐 물건을 100개 이하로 줄이는 게 목표였다.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이 유튜브와 블로그에 자신의 물건을 열심히 세어서 보여준다. 개수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은 캐리어 하나, 또는 백팩 하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그 백팩은 여러분이 학교나 직장에 들고 가는 백팩이 아닌 기내용 수화물 사이즈의 가방이니 놀라지 말자.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의 the minimalists, 조슈아 필즈 밀번은 288개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콜린 라이트는 51개의 물건뿐이라고 했고, 어떤 2년 차 미니멀리스트는 나와 같은 사이즈인 35L 백팩에 모든 물건이 다 들어간다고 적었다. 


'브런치 : 내가 이렇게 물건을 적게 갖고 산다'처럼 자랑하고 과시하는 시간이 아니다. 내가 가진 물건을 세어보는 일은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아직도 이렇게나 물건이 많다는 현실 직시이면서, 어떤 물건을 갖고 있는지 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evrything I own'이라는 제목의 콘텐츠가 어디에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는 '기준'이 어려울 뿐이다. 나는 모든 물건을 세되, 속옷 여러 장처럼 같은 종류의 물건이 있으면 그것을 그룹화했다. 즉, 속옷 3장은 3개가 아니라 '속옷'이라는 1개의 그룹이자 물건인 것이다. 


이번에 내가 센 물건들은 '소유'하며, 어디든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사할 때 가져갈 것들이다. 그렇기에 내 방에 있는 현미와 국수는 세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주 안에 내 뱃속으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간장을 포함한 5개의 조미료들도, 화장지도 전부 쉐어하우스에서 제공되고 있으니 이것도 제외했다. 이 공간을 떠나는 순간 내 것이 아닌 물건들이다. 어디까지나 이들은 임시적인 물건에 불과하다.  


물건을 세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자신을 속이지 않기'였다. '이건 빼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없이 내 방에 있는 모든 것을 셌다. 내 벽에 시계가 걸려있으면, 방에 식물이 있었다면 그것들도 모두 세었을 것이다. 별 것 아닌데 참 어려운 일이었다. 고작 물건 세는 일이라 할지언정, 자신과 마주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 기준으로 내가 가진 모든 물건은 85개이다. 조미료와 화장지를 내가 다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100개가 넘지 않는다. 물건을 100개까지만 줄였으면 좋겠다는 1년 전 목표가 어느새 달성되어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세면서 비우게 된 물건도 있었다. 미니멀리즘은 몇 년을 해도 뒤돌아보면 아직도 비울 것이 산더미다. 






지난 6개월 동안 손도 대지 않은 물건은 무엇인가? 


물건을 세는 데서 그치는 건 재미없다. 이왕 센 김에 내가 소유한 물건들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6개월 동안 손을 대지 않은 물건들에 회색 표시를 했다. 이번 겨울 이후로 10개 정도 되는 물건을 꺼내보기조차 하지 않았다. 물건이 적든 많든, 환경이나 내 상황에 따라서 안 쓰는 물건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 물건들에게는 2가지 선택지가 있다. 비우거나, 기다리거나. 예를 들어, 장갑은 딱 한 계절만 쓰는 물건이니까 사계절을 한 바퀴 돌아야만 한다. 그렇기에 두 계절을 더 기다리면 쓸 날도 올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본다. 비염 스프레이는 1년에 일주일씩 두어 번 정도, 감기 걸렸을 때 주로 사용한다. 이것도 6개월을 더 기다리기로 했지만, 그때는 이것 없이도 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스프레이 없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만성비염을 가라앉히기 위해 만성염증과 holistic treatment에 대해 공부하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울만한 물건들도 있다. 엽서는 다 쓰면 더 이상 재구매 의사는 없고, 종이테이프는 쉐어하우스에 기부하기로 했다. 1년에 한 번은 엽서를 쓸 일이 있으니까, 풀은 없어도 테이프는 필요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갖고 있던 물건들이다. 


'혹시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해'라는 말은 불필요한 물건을 쌓아두기에 최적의 변명이다. 그리고 그 만약이라고 정의한 일들은 적어도 1년에 한두 번쯤은 일어나야지 물건 가지고 있을 맛이 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비우자. 필요할 때 친구나 이웃에게 빌리는 편이 훨씬 낫다. 






대체할 만한 물건이 있는가? 

얼음보다 차가운 엑셀 시트 위에선 소설조차 냉정해 보인다. 물건을 손에 쥐고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감정과 얽힌 추억들이 떠오르지만, 엑셀에 적어보니 그냥 보통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자소서를 쓰던 시절부터 질리도록 듣던 자기 객관화 아닌가. 


리스트를 훑어가며, '이 물건이 없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 물건이 없는 삶도 충분히 상상해볼 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초록색으로 체크했다. 내가 애착을 갖는 물건이니까, 추억이 담겨있는 아이템이니까, 어렵게 구한 거잖아, 라는 이유는 통과시키지 않았다. 오로지 필요와 쓸모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15개 남짓하는 물건이 사라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필이 없어도 만년필을 쓴다든지, 소모품인데 재구매의사가 없는 것들, 내년엔 내 가방 속에 없을만한 물건들 말이다. 덕분에 앞으로는 이 물건들을 볼 때마다 이것과 함께해야 하는 삶이 아닌 없어도 충분한 삶이 더 먼저 떠오를 것이다.







5개의 물건을 비워냈다

물건을 세고, 자아를 분열시켜 열심히 토론과 재판을 거친 다음, 5개의 물건을 비워냈다. 유통기한이 지난 줄도 모르고 있던 립밤과 어차피 기내 수화물 금지품목일 눈썹 칼, 집게 클립이 있는데도 굳이 갖고 있었던 클립 등등. 


물건들을 분류하면서 어떤 종류의 물건을 많이 갖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문구류를 의외로 많이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쓸 일이 없으니 하나씩 자리를 비워달라고 내 마음에 요청을 해야지. 또, 유목민이라면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주방 용품도 내 가방에는 꽤 있었다. 이건 제로 웨이스트를 위해서 놓치지 않을 거예요.


새 물건은 더더욱이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저 있는 것이 닳고 없어지면 채울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물건을 셀 것이고, 비워낼 것이다. 물건에 애착을 갖기보다 객관적인 필요성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여전히 내 모든 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고, 그것이 곧 인생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걸어서 이사하더라도 가볍다고 느낄 때까지 비워내 보려 한다. 물건이 나를 속박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소유, 더 나아가 내 삶을 스스로 리드해나갈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고, 원하는 환경을 손에 쥘 수 있는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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