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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Sep 24. 2020

미니멀리즘 건강 : 영양제도 고치지 못했던 것

건강용품이 많으면 저절로 건강해지나요

"나는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다." 그 발언 이후 회사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아연실색이었다. "무슨 <나는 자연인이다> 찍어?"


미니멀리즘을 시작하고 내 몸을 위한 물건을 더하기보다 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임상실험의 첫 번째 대상은 피부였다. 한 때는 거울을 보는 게 힘들 정도로 심각한 피부 트러블을 겪었고, 그럴 때마다 희망을 가지고 이런저런 제품들을 피부에 덧발랐다. 느리게라도 차도는 있었지만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때에 따라 오히려 더 악화될 때도 있었다. 결국 만족할 만큼 말끔히 해결해준 것은 마지막으로 찾아간 피부과에서의 치료였다.


미니멀리즘을 시작하고 아무리 그래도 스킨과 로션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킨과 로션은 현대인의 필수템이며 내 평생을 함께 해온 것인데, 그것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어버터가 들어있는 제품이 아니라 시어버터 그 자체를 사서 바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성공적. 기온도 꽤 낮은 데다 바람이 세서 피부를 다 말려버릴 만큼 건조한 한국에서 성공했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었다. 


왜 스킨&로션, 샴푸&린스는 현대인의 필수템이 되었는가? 왜 바디워시로 피부의 필요한 유분까지 지워버리고 바디로션을 덧바르게 된 걸까? 내가 항상 참고하는 100년 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그런 물건을 쓴 적이 없다고 한다. 놀랍지도 않지만 한국에서 샴푸를 쓰게 된 것도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건강을 위한 OO, 1일 OO도 마케터들의 뼈아픈 노력이 만든 트렌드가 아닐까. 가끔 1일 1깡처럼 예외는 존재하지만.


얼마 전부터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근본적인 생활습관과 마음을 돌보자는 생각으로 건강을 챙기고 있다. 물론 급성이며 증상이 명확한 것은 병원에서 치료한다. 검진은 늘 신난다. 나는 여전히 현대의학을 사랑하니까. 다큐멘터리 <HEAL>을 시작으로 holistic treatment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그 계기였다. 덕분에 지금은 건강 보조제와 각종 용품들이 넘쳐나던 전보다 더 건강하게 살고 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비상약, 건강을 위한 물건들. 진통제와 선버터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비울 예정.




비타민 D 먹으면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다며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든 건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든 건 비타민D였다. 그걸 먹으면 아침에 일어나는 느낌이 달라진다고 했다. 꼭 3000UI 이상인 걸 골라서 먹으라나 뭐라나. 사는 김에 유산균이랑 뭐 다른 것 하나도 샀다. 이 정도로 이름이 기억 안나는 걸 보면 마지막 한 개는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효과가 없었나 보다. 


영양제를 그렇게 열심히 챙겨 먹었지만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큰 효과는 없었다. 기분 탓일까 싶을 정도로 효과가 미미했기에, 차라리 공갈약을 먹어보면 어떨까 싶을 정도였다. 오히려 몇 년이 지난 지금, 건강보조제 없이도 매우 이른 시간에 아주 가볍게 일어난다. 심지어 술 먹고 나서도. (서프라이즈! 나는 지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 비타민 보조제 대신 밖에 나가서 햇빛을 쬐고, 생야채와 과일을 달고 산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와이파이를 꺼놓고 일찍 잔다. 주말 아침 만화를 보려고 새벽같이 일어나던 어린시절처럼, 내일 일어나면 어떤 일이 나를 설레게 할 지 괜히 생각해본다. "심각한 영양 결핍이군요. 당장 먹지 않으면 건강이 매우 위험합니다."라는 말을 듣지 않는 이상 다시 영양제를 살 일은 없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게 해 주고, 가뜩이나 건강한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물건과 도구는 없었다. 되돌아보면 나의 아침이 힘들었던 건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고, 유튜브와 각종 SNS를 밤늦게까지 가까이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양제로도 치료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건강 돌려막기 중이다


회사 점심시간의 도시락파 회원들을 보면 그중 3분의 1은 라면을 먹고 있다. 항상 한 팀은 패스트푸드를 같이 먹는다. 점심먹으면서 이런 분석을 하고 있을 정도로 이젠 인스턴트 음식이 남의 이야기만 같다. 벌써 라면과 패스트푸드를 안 먹은지도 1년이 되어간다. 사실은 1년에 두어 번은 먹는다. 그럼에도 점심엔 삼각김밥에 라면을 곁들여먹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으며, 패스트푸드는 나의 친구였던 때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는다는 걸, 내가 그 3분의 1과 한 팀에 속해있을 때는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내 삶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 같은 염증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비염이고 다른 하나는 입 안 염증이다. 증상이 거의 없이 몸속에 숨어 지내기도 하고, 비염쯤이야 흔하니까 괜찮겠거니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내 몸에 대해 공부한 후,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먹는 패스트푸드와 각종 과자들이 염증을 만드는 원인 중 하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쓰는 비염 스프레이와 염증에 듣는 약 말고,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내 생활 속 작은 캠페인은 '유통기한 없는 것을 먹기'이다. 간장이나 올리브유 같은 조미료를 제외하고 과자를 비롯한 각종 가공식품은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염증을 유발하는 음식으로 자주 소환되는 '설탕'도 거의 안 먹다시피 한다. 집에서는 일체 쓰지 않고, 설탕이 들어간 음료와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집어먹은 설탕은 아마 일주일 전쯤. 


라면, 패스트푸드, 과자, 설탕을 매일 몸에 쌓으면서 그것을 운동과 약으로 내 몸과 협상을 보려 했던 것부터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건강을 위한 체중 감량이 필요하지만 먹는 양은 그대로 두겠어요, 처럼. 술을 더 오래, 많이 먹기 위해 밀크씨슬을 챙겨 먹는 게 아니라 술을 끊으면 되는 것처럼.






운동의 시작은 각종 용품이 아니다


요가는 좋아하지만 요가매트는 소유하지 않는다. 요가매트를 늘 짐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도 일이고, 어차피 매트가 제공되는 요가 스튜디오에 가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호주에서 사각팬티 한 장만 입고도 잘만 요가하는 사람들에 영감을 받아 요가복도 없다. 요즘엔 요가 스튜디오에 가지 못하지만, 이 모든 게 없이도 집에서 잘만 요가한다. 어플이나 유튜브도 없이 몸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게 그 날의 플로우다. 


꼭 매트, 요가복, 폼롤러, 블록, 엘라스틱 밴드, 담요를 모두 갖춰야 진정한 요가는 아닌 것처럼, 각종 도구를 소유하지 않아도 잘만 운동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도구들은 요가원과 헬스장에 항상 구비되어있다. 운동이 절박한데 아무 것도 없을 땐 주변을 달리면 된다. 


운동 용품 외에도 주변에서 워터픽부터 각종 마사지 기계까지 영업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있으면 편하겠지만, 없어도 불편하진 않다는 것. 유목민 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물건이 있으면 이사가 더 불편해질 뿐이다. 마사지가 필요하면 요가를 하거나 스파에 가고, 워터픽을 데리고다니기보다 생분해 치실을 열심히 쓰기로 했다.  




내 몸도 공부해야 한다


지금까지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파괴하면서 별의별 공부를 다 했는데, 한 가지 빠뜨린 게 있었다. 바로 '몸'을 공부하는 일이었다. 염증이 있으면 만성염증에 대한 책을 읽고, 충치가 생기면 올바른 양치법과 충치를 유발하는 음식과 습관에 대해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그것을 토대로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고쳐나간다. 기름진 음식과 설탕이 안 좋다는 걸 알지만 책으로 읽고 내 미래를 시뮬레이션해봤을 때 그 공포감은 차원이 다르다. 책을 자주 보지 않는다면 넷플릭스도 괜찮다. 건강과 몸에 관한 각종 다큐멘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몸을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이다. 내 몸 상태는 계절별로 어떤지, 환절기에는 어떤지, 이 음식을 먹었을 때, 이런 환경에 있을 때는 또 어떤지를 먼저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의사가 아닌 자기 자신이다. 비록 가벼운 것일지라도, 어떤 증상이 있을 때마다 기록해두는 것도 나를 관찰하는 데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어벤저스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도 기억하자. 나는 내 몸이 200%, 300% 기능하길 바라면서 몸을 공부하고 건강을 챙기지 않는다. 하루 4시간만 자도 쌩쌩하게 돌아다닐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 몸이 100% 제 기능을 하는 것이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건강이지 않을까. 오랜 기간 하루 12시간을 공부하고 일하면서도 왜 건강하지 않냐고 자신을 채찍질했던 날들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나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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