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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Apr 30. 2020

미니멀리즘 식사 : 원플레이트와 생채소

단순해지면 좋은 식습관은 반드시 따라온다

    한 때 나는 대식가였다. 에피타이저로 빵과 케익을 먹고, 볶음면 3인분을 먹은 뒤에, 와플을 먹고, 과자를 먹고, 만두를 구워 먹고, 후식으로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첫 해외생활을 시작하고 몇 달 간의 내 저녁 식단이다. 스트레스를 무조건 먹는 것으로 해소하고,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했다. 나는 내가 단순히 식탐이 많아서 그랬겠거니 싶었다. 


그게 불과 5년 전의 나였다. 마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지금은 10인치 접시 하나 정도의 양만 하루에 두 번 먹는다. 이제는 고기도, 인스턴트도, 당류 가득한 음식마저도 먹지 않는다. 이제는 매일 내가 먹는 것이 나를 구성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미니멀리즘은 내 식습관까지 단순하게 만들어줬다. 삶이 담백해진 만큼, 담백한 음식들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식사가 단순해지자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새로운 식습관들을 매년 실천해오고 있다. 밀프렙, 베지테리언, 비건, 로비건, 글루텐 프리 등등, 매년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나에게 맞는 식단들을 조합한다. 올해는 계란을 먹는 오보 베지테리언이면서 동시에 설탕 끊기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식단은 매년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식사에 '마음'과 '단순함'을 담는 것이다. 식사는 음식에 대한 감사이며 나에 대한 존중이 담겨있는 매일의 의식임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실천 가능하도록 늘 단순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 식단의 기본이다. 






코코넛 요거트와 민트를 넣은 샐러드




살아있는 것을 먹는다


    작년 6개월 동안 나는 집에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식사했다. 소금을 포함한 각종 조미료도 사용하지 않았다. 생채식과 무염식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다시 계란을 먹기도 하고 종종 불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전의 식단으로 돌아왔지만, 그 6개월 동안 나의 식단을 되돌아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이후로, 되도록 살아있는 것을 그대로 먹기로 다짐했다. 익히지 않고 그대로 먹을 때는 많은 조미료, 불이나 다양한 조리도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되려 영양과 맛은 살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미니멀리즘에 제일 적합한 식단이라 생각했다. 


그 첫 단계로 조미료를 최소화했다. 예전에는 찬장에 큐민, 파프리카 파우더, 넛맥 등 이름도 생소한 조미료를 포켓몬 콜렉터마냥 모아놨었다. 확실히 여러 조미료를 넣을수록 이국적인 맛이 나고, 향이 깊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반대로 그 조미료를 하나씩 걷어냈을 때, 비로소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고 집중할 수 있다. 가지를 앞뒤로 구워 소금 간만 살짝 해 먹어 본 적이 있는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맵고 짜게 간이 된 음식에 익숙했던 나에게, 그것은 맛의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두 번째로 자극적인 음식을 더 이상 먹지 않기로 했다. 인스턴트를 비롯한 각종 가공식품은 끊은 지 오래다. 그 외에도 자극적인 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계기가 있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 - 정관스님 편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고, 사찰음식에 대해 알아보다 무오신채*를 접하게 되었다. 종교는 없지만(나는 나를 믿는다.), 현재까지도 무오신채를 실천해오고 있다. 에너지가 어떻게 움직이고 등등 복잡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먹었을 때 눈물이나 콧물 등의 분비물이 나오는 것을 또 하나의 자극적인 음식으로 분류할 뿐이다. 먹고 난 후에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식이 곧 내 몸에도 좋은 음식이라 믿는다. 


세 번째, 계절에 따라 살기로 했다. 제철음식을 먹는 것이다. 아무리 토마토가 먹고 싶어도 조급해하지 않고 봄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여름에는 옥수수를 먹고, 겨울에는 무와 배추를 먹는다. 요즘은 내가 장 볼 목록을 미리 작성하지 않고, 야채가게에서 눈에 띄는 것을 집어온 뒤에 요리해먹는다. 야채를 직접 재배하진 않지만, 어떤 야채들이 나와있는지를 보는 것도 계절을 느끼는 하나의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되도록 익히지 않기로 했다. 시금치가 있다면 데쳐서 먹기보다 샐러드를 해 먹는다. 익히지 않으면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리과정도 줄어들어 여러모로 편리하다. 브로콜리는 1분 데쳐야 할 것을 20초만 살짝 데쳐서 먹는다. 최종 목표는 익히지 않아도 맛있게 먹기. 그러려면 맛에 대한 내 감각을 먼저 기르고, 살아있는 것 그대로의 맛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아, 이 글의 요지는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고기는 익혀서 먹도록 하자. 사이드로 익힌 야채를 놓기보다 샐러드를 놓아보는 건 어떻냐는 작은 제안일 뿐이다. 


*무오신채 :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채소인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를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양파를 포함하기도 한다. 







원플레이트, 원팬 요리


    나는 반찬을 해 먹지 않는다. 반찬을 사 먹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냥 원플레이트 요리를 해먹을 뿐이다. 남을 위해 반찬을 만든 적도 있고, 나만을 위해 만든 적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귀찮은 건 매한가지다. 두세가지 반찬만 해도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다. 설거지도 두세개 늘어난다니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반찬 여러 개를 만들기보다 포케같은 덮밥류를 많이 해 먹는다. 국은 거의 안 해 먹지만, 만든다면 찌개보다는 5분 만에 만들 수 있는 된장국이나 계란국을 만든다. 귀찮으면 파스타 호로록 해먹으면 된다. 


오리지널 레시피도 좋지만, 간단 레시피는 우리의 수고를 덜어준다. 나는 레시피를 검색할 때 '간단'이라는 키워드를 넣거나 the minimalist baker와 같은 사이트를 참고한다. 







이렇게 해 먹고살았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콜리플라워로 만든 치킨, 마지막 사진은 표고버섯과 잣으로 만든 떡국




냉장고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100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미니멀리즘을 비롯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해답이 필요할 때 이 질문을 떠올린다. 그중 하나의 답이 "그들은 냉장고가 없는 채로 식재료를 보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냉장고와 자동차는 사람들이 한 번에 더 많은 식재료를 마트에서 퍼다나를 수 있게 해 준, 지금의 소비주의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발명품들이다. 냉장고 깊숙한 곳에 정체불명의 재료가 썩어있고, 유통기한이 2년은 족히 지난 소스통이 있는 것은 비단 예능 프로그램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쉐어하우스에 이사할 때마다 냉장고를 체크하면 매번 발견할 정도로 아주 흔한 일이다. 


어떤 식단을 먹느냐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 냉장고 없이 사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다. 나 이전에도 이미 냉장고 없이 사는 미니멀리스트는 존재했으니까. Van life, 승합차를 개조해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냉장고 없이 잘만 살아간다. 나는 생채식을 하는 6개월 동안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때는 40도까지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이었다. 좋은 소식은, 나 자신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거친 결과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내가 엄청난 구두쇠라 그런 것은 아니다. 작년의 경우, 공과금은 월세에 포함되어있었으니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중을 생각해보면 냉장고를 사지 않아도 되고, 전기세를 절약하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 될 수는 있겠다. 


음식을 차게 먹지 않고, 야채와 과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이것이 냉장고를 쓰지 않는 주된 이유다. 마트에 가면 모든 채소와 과일이 냉장고에 보관되어있는가? 통조림과 곡물이 냉장 보관되어있는가? 생각보다 냉장 보관되어있는 제품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내가 사랑하던 두유마저도 말이다. 종류에 따라, 예를 들어 감자나 바나나처럼, 상온에 보관했을 때 보관 기간이 늘어나는 채소와 과일들이 있다. 여기 30일 동안 과일을 방바닥에 보관하는 사람도 있다. 


잎채소는 2~3일이 지나면 축 쳐지지만, 감자나 당근은 그보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제일 좋은 것은 쟁여놓지 않고 3일에 한 번씩 신선한 재료를 사 오는 것이다. 단, 이미 씻은 채소나 손질한 채소는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그렇기에 한 번에 먹을 만큼만 씻어서 조리한다. 






요리 잘하는 사람은 정리도 잘한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한 번은 참가자가 음식 외의 것으로 크게 지적을 당한 적이 있다. 경연을 마친 주방이 설거지도 하나 되어있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가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나도 요리를 막 시작했을 때엔,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채로 밥을 먹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요리는 요리를 하는 그 순간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리를 하면서 틈틈이 설거지도 하고 주변 정리도 해야 한다. 플레이팅도 최선을 다하고, 때로는 좋은 음악과 꽃을 고르는 센스도 필요하다. 

 

모든 것을 정리한 후에 식탁에 앉는 것은 내 식사에서 양보할 수 없는 규칙 중 하나이다. 마치 누가 주방을 썼냐는 듯 깔끔하게, 마지막은 뜨거운 물을 뿌려 가스레인지까지 싹 닦는다. 식사가 끝나고서도 마찬가지다. 밥 먹고서 양치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설거지이다. 야채를 데치는 1분 동안, 또는 스튜를 끓이는 10분 동안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식사 후 정리도 심플해지자. 틈틈이 정리를 해두면 설거지를 다 하고 자리에 앉아도 당신의 파스타 면은 불어있지 않을 것이다. 





음식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


    한 번은 한국에서 급식처럼 밥이 나오는 곳에서 일한 적이 있다. 어른들의 급식이니 배식을 해주는 분은 없고 모든 것이 셀프서비스였다. 그런데도 모두가 하나같이 음식을 남기고 잔반으로 버리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마치 음식을 남기자고 약속한 것처럼, 그것이 미덕인 것처럼, 사람들은 매일같이 반찬과 밥을 남겼다. 


나도 처음부터 음식을 절대 버리지 말자 주의는 아니었다. 오히려 '음식을 절대 남기면 안 된다'는 소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것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선 음식을 억지로 먹지 않고 남겨도 되는 이것은 자유의 프리덤이라고 외치며 좋아했다. 


요리를 시작하고, 미니멀리즘을 식습관에도 적용했다. 식사를 하나의 의식처럼 여기고 '마음'을 담았다. 그러고 나니 절대 음식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도, 요리를 한 나에 대한 존중에도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요리를 하는 동안에도 음식물 쓰레기가 한주먹이 나올까 말까 한 정도다. 감자, 당근, 최근에는 키위까지 대부분의 야채와 과일은 껍질채 먹는다. 끓이면 뭐든 다 먹을 수 있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뿌리나 잎처럼 안 먹는 부분도 국이나 스튜에 넣으면 오히려 맛이 살아난다. 썩은 부분이 야채 전체에 퍼진 게 아니라면, 그 부분만 잘라내서 요리해먹으면 된다. 남는 야채는 피클로 만든다. 셀러리 잎처럼 잘 먹지 않는 부분은 얼음물에 담가 쓴 맛을 제거한 뒤에 가볍게 무쳐먹으면 된다. 


장보기는 모든 재료를 다 비운 후에야 허락된다. 그래서 나에게 냉장고 파먹기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일상이다. 아무리 그래도 양배추 하나만 남았는데 뭐해먹느냐 묻는 다면, 나는 생양배추를 간장에 식초 섞은 것에 찍어먹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구질구질한 게 아니라 진짜 맛있다. 










나는 나의 가장 중요한 손님이다

    나는 절대 냄비째로 식사하지 않는다. 아무리 대충 해 먹더라도 밥 위에 깨 하나 더 뿌려준다. 유리잔에 흠집이나 손자국은 없는지, 접시는 완전히 깨끗한지, 테이블클로스가 냄새나진 않는지 반드시 체크한다. 그 기준은 "손님에게도 똑같이 대접할 것인가?", "캐주얼한 레스토랑에서도 용납될 수 있는 정도인가?"이다. 


나의 식사는 이제 양보다 질로 승부한다. 위를 채우는 것은 음식의 양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적은 양이어도, 조금 간이 심심해도, 이런 잠깐의 노력들만 있다면 포만감을 200% 느낄 수 있다. 음식은 미각으로만 맛보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느냐고? 요리 과정과 마지막까지 공을 들이면 식사만으로도 10%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것이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마음'을 담은 나의 식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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