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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Jul 30. 2020

미니멀리즘 가방 : 지갑, 꼭 필요할까?

새 지갑 사달라고 없는 척하는 게 아닙니다

"조만간 네 가방에서 비둘기도 나올 듯." 나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 가방을 가득 채워야 마음이 편해지는 보부상 타입이었다. 무언가 흘릴지 모르니까 티슈를 챙기고, 갑자기 아플지 모르니까 온갖 약을 챙겼으며, 배터리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보조배터리를, 갑자기 배고프면 화나니까 간식도 챙기고, 아 참 립밤과 로션, 필기구에 읽지도 않는 책까지.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그럴 거면 서랍을 통째로 들고 다니지 그랬냐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툭하면 물건을 잃어버렸다. 거의 하루 걸러 뭘 두고 나왔다가 허겁지겁 다시 돌아가서 가져온다든지, 영영 못 찾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나중에는 이게 병인가 싶을 정도로 자주 깜빡했다. 그렇게 많은 물건을 꺼냈다 집어넣었다 하니 중간에 누가 하나 가져가도 모를 일인 건 당연하다. 


없는 게 없는 만물상이면 뭐하나, 정작 급하게 필요할 땐 가방을 휘적휘적 샅샅이 뒤져봐야 한다. 물건이 너무 많아서 어쩔 땐 하나씩 꺼내놓고 찾으면 다시 하나씩 집어넣어야 했다. 가방 정리의 절실함을 깨닫고는 물건을 줄이는 게 아니라 가방 수납용품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각종 파우치에 무슨 케이스, 그리고 가방 속을 정리해준다는 마법같은 이너백까지. 물건은 또 다른 물건을 부르고 있었다. 











가방 없이 다녀도 멋지다


관광지에서 두꺼운 소설책 하나만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그대로 식당에 들어가 여유롭게 주문을 하고 소설책을 마저 읽어 내려갔다. 참 멋있었다. 그리고 멋있는 건 꼭 따라 해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가방 없이 외출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단 한번도 가방이 없어도 멋지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가방을 어떤 걸 들어야 하고, 어떤 소재의 무슨 패션용어의 가방을 들어야 멋지다는 이야기를 더 자주 접하게 된다. 두꺼운 소설책만 들고 나온 그 사람이 멋져 보였던 이유는 뭘까?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하나만 고를 줄 아는 능력과 그 확신일 것이다. 설령 그것이 숙소가 가까워서, 귀찮아서라고 해도 말이다. 


외출할 때는 책 한 권, 스마트폰과 이어폰만 챙긴다. 필요하다면 텀블러도 챙기지만, 어차피 카페나 식당에 들어갈 일이 있다면 굳이 챙기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텀블러를 챙겨가도 좀처럼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가방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집에 돌아와서 우리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듯 가방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이 개념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의 저자인 곤도 마리에의 책에서 발견한 것이다. 오늘 하루도 고생한 가방 속 내용물을 모두 꺼내 한 곳에 가지런히 보관하자는 이야기였다. 책에서 그 구절을 읽은 후 나도 매일 실천하고 있다. 가방을 쉬게 해주는 것에도 동의하지만, 무엇보다 가방 속 내용물을 꺼내면서 하나씩 정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가방 속에 며칠 동안 있던 영수증 또는 쓰레기, 집에 와서 설거지해야 했던 도시락 통처럼 꺼내야 했던 물건들을 가방과 함께 그냥 던져두기만한 적도 많다. 이제는 샤워하기 전에, 저녁을 먹기 전에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방 속 내용물을 정리해서 제자리에 두는 것이다. 


이 방법은 다음날 다른 가방으로 바꿔메야 할 때도 효과적이다. 나름 어제의 가방에 있던 짐들을 다 옮겼다고 생각했는데 회사 출입증을 두고 나왔더라면, 아니 그것보다 더 한 것들을 놓고 나왔다고 생각해보자. 현실 호러무비가 따로 없다. 






소지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한다


나는 강박에 가깝게 책을 깨끗하게 읽는 타입이다. 책 모서리를 접거나 밑줄을 절대 치지 않는다. 심지어 참고서와 문제집의 경우에도 그렇다. 종이나 연습장에 따로 문제풀이를 하고 답을 적는 식이다.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나에게, 종이책은 몇 년이고 곁에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대한 깨끗하게 읽어서 중고서점에 판매한다. 그렇게 물건의 쓸모를 되살리고, 순환시킨다. 


문제는 책에 표시하고 싶은 부분이 생길 때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으로 일일이 찍어서 보관했는데, 나중에 보면 어디가 밑줄 치고 싶은 부분이었는지, 이게 무슨 책이었는지 뒤죽박죽이었다. 포스트잇으로 표시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잇은 몇 번 쓰다 결국 쓰레기가 되고 만다. 그때 떠오른 것이 '북다트'였다. 중고서점 굿즈 코너에서 '걱정마 넌 이걸 평생 쓸 일이 없어'하고 지나쳤던 그 물건이었다. 그 땐 몰랐다.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종이책을 읽게되는 날도 온다는 것을. 


위 사진처럼 하나씩 뺐다 다시 꼽아놓을 수 있다. 북다트라는 이름대로 끝이 뾰족하기 때문에 그냥 북마크보다 어디에 표시를 해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처음엔 그 북다트 통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갑자기 책에 표시를 하고 싶으면 가방에서 뒤적거려 북다트를 꺼내고, 뚜껑을 열고, 하나를 집고...(심지어 얇아서 급하게 하나 집으려고 하면 안 집어질 때도 종종 있어서 나를 분노케 했다.) 그렇게 전철에서 몇 번 삶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선, 북 다트 통을 안 가지고 다닐 방법을 궁리했다. 그냥 책 맨 앞장에 북다트를 몇 개 꼽아두는 거다. 


내 환경과 상황에 따라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는 물건은 매번 달라진다. 그때마다 '어쩔 수 없지'가 아니라 '어떻게 할까?'처럼 생각을 전환해보면 당신의 가방은 훨씬 더 가벼워질 것이다. 어쩌면 가방이 아예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수납력이 좋은 옷을 고른다 


정말 좋은 가방은 수납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것처럼 좋은 옷은 수납력도 좋다. 즉, 만드는 사람이 실용성까지 고려했다는 것이다. 바꿔 생각해보면 입는 사람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작은 디테일들을 사랑한다. 


겉은 화려하고 멋지지만 주머니가 제 기능은 못하는 가짜 주머니인 옷들도 있다. 주머니가 없어서 오히려 가방을 들게 만드는 그런 옷들 말이다. 가방도 아무거나 매치하기 어려운 옷이라면 그때부턴 조금 복잡해진다. 


나는 같은 옷이라도 수납력이 좋은 옷을 고른다. 스파브랜드에서 구매한 나의 재킷과 같은 옷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재킷에는 안주머니도 없고, 바깥주머니도 모양만 주머니라 사용할 수가 없다. 가성비와 디자인만을 추구했던 나의 과거를 반성하게 되어, 입을 때마다 숙연해지는 옷이다. 반대로 내 코트 주머니에는 책 한 권이 들어갈 정도로 넉넉하고, 정장 바지에는 숨은 주머니가 있어 손을 휘적거리며 물건을 찾지 않아도 된다. 


피팅룸에서 열심히 주머니를 구석구석 살펴본다. 나를 감동시킬만한 디테일이 있는 옷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이다. 가방의 수납력도 중요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수납력이 좋은 옷을 입어 가방을 필요 없게 만든다. 






회사 가는 날의 인 마이 백. 조금 보부상 같군요. 



요즘 회사 가는 날엔 가방을 들고 간다. 시간 절약을 위해 도시락을 챙겨 다니기 때문이다. 물론 점심에 30분을 절약한 만큼 집에서 30분을 쓰게 되지만,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갖는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또, 집처럼 동선이 짧은 공간도 아니기에 이것저것 가지러 다시 자리로 가는 게 번거로운 것도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가방을 갖고 다니는 게 편하다. 




더 이상 들고 다니지 않는 것



보조배터리, 충전기 : 외출하자마자 항상 시리에게 배터리 절약 모드를 켜달라고 부탁한다. 나에게 스마트폰은 노트북처럼 빨라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쓴 지 3년이 지난 내 아이폰 SE는 새것에 비하면 배터리가 정말 빨리 닳는 편이다. 그럼에도 배터리 절약 모드와 디지털 미니멀리즘 덕분에 퇴근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절반도 채 닳아있지 않다. 온종일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하는 것은 음악을 골라 듣고 팟캐스트를 재생하는 것 정도니까. 


스케쥴러 + 필기구 : 스케쥴러와 메모는 모두 디지털화했기 때문에 들고 다니지 않는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영감은 메모 앱을 켜서 적는다. 요즘은 메모술을 연습해보고 있어서 손바닥만 한 노트와 집에 있던 볼펜 하나를 가지고 다닌다. 


간식 : 밖에서 갑자기 간식이 먹고 싶으면 들어가서 먹는다. 쓰레기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구강 건강이 심하게 망가졌던 경험이 있어서, 사탕이나 초콜릿은 일체 받지 않는다. 어떤 음식이든 식사 전후가 아니면 되도록 먹지 않으려고 한다. 먹으면 또 양치해야 되니까 귀찮다. 


티슈 : 사실 티슈는 감기가 심하게 걸렸을 때가 아니곤 쓸 일이 없다. 밖에서 식사할 때는 냅킨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무언가를 닦거나 할 때 손수건을 쓰거나 물로 닦는다. 


각종 비상약 : 이것도 역시 생각보다 쓸 일이 없어서 안 가지고 다닌다. 어떤 증상이 있거나 통증이 예상될 때는 진통제를 갖고 다니지만, 그 외의 경우는 안 갖고 다닌다. 


가글 : 회사에서 점심 먹고 양치하는 게 귀찮아서 가글만 쓸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냥 정성스럽게 양치로 끝낸다. 정 바쁠 때는 집에서 만든 가글을 가져온 적도 있다. 물 + 소금 + 베이킹소다 + 페퍼민트 오일을 몇 방울 섞는 게 레시피의 전부다. 


선글라스, 선크림 : 예전에 제로 웨이스트 책에서 보고 의아했던 방법이 있다. 선크림 햇빛을 적당히 피해 다닌다는 것이다. 이게 뭔 소린가 했는데, 어느새 나도 태양이 강한 시간은 적당히 피해 다닌다. 태양의 남중고도 시간에는 카페 같은 실내에서 한두 시간을 보낸다든지처럼 말이다. 선크림을 까먹고 안 바르고 나올 때도 많아서 한여름엔 선크림을 갖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장마거나, 야외활동이 불가능한 시기에는 거의 쓸 일이 없다. 


립밤 : 립밤을 안 쓴 지 1년 정도 되었다. 양치하고 입술을 문지르는 게 나의 립 케어의 전부다. 이런 습관을 들이고서 립밤은 쓰지 않게 되었다. 









지갑, 꼭 필요할까?

나는 머니클립은 지갑도 아니라고 생각하던 장지갑파였다. 해외 생활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장지갑을 쓰면서 지폐를 새 것처럼 빳빳하게 보관하는 모습에 반한 게 계기였다. 하지만 지갑도 우리의 방과 마찬가지다. 수납장이 많아지면 물건도 같이 늘어나듯이, 내게 장지갑 또한 그랬다. 12개는 족히 되는 카드 수납공간에 각종 신용카드와 신분증, 포인트카드를 모아서 전시해두고, 사진도 넣어놓고 밴드도 넣어놓고 난리가 났었다. 


호주에 간 지 얼마 안 되었던 때, 호스텔에 묵으면서 도난이 가장 두려웠다. 장지갑은 다 좋은데 여권이 안 들어갔다. 여권이 들어가는 지갑을 사기엔 주머니에 넣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늘 벨트백(힙색의 포멀한 버전)에 여권과 카드부터 돈, USB, 이북리더기까지 전부 넣고 다녔다. 내게 세상 제일 중요한 것들이기에 심장 가까운 곳에 둬야 한다는 소릴하며. 


편리했다. 주머니도 양손도 훨씬 가벼워졌다. 어쩌면 돈과 카드를 보관하는 형태가 꼭 지갑은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모두 당연하게 지갑을 들고 다니긴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도 지갑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지금은 핸드폰 케이스에 넣어둔 체크카드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현금은 들고 다니지 않는다. 정말 나에게 이득인 건지, 내 정보를 받는 가게에게 이득인 건지 알 수 없는 포인트카드와 쿠폰 도장도 받지 않는다. 덕분에 쓰지 않는 카드들은 다 해지했으며, 갖고 있는 건 체크카드와 유용한 멤버십 카드 한 장이다. 수납공간에 제한을 두니 내게 정말 필요한 물건들만 남았다. 


물론 누군가에겐 현금이 필요할 수 있다. 나 또한 갑자기 금융기관과 핀테크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며 현금으로 다시 돌아설 수도 있다. (내가 절대 <현금 없는 사회>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아니면 현금을 너무 사랑하는 나라에 살게 되면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 할 수도 있다.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시는 텀블러만 한 장지갑을 들고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에 나는 카드와 신분증, 현금을 집게 클립으로 집거나,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명함케이스를 '지갑'으로 부르기로 했다. 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는 '지갑'에 가까운 반자동 메탈 카드지갑을 쓸지도 모르겠다. 동전은 어쩔 거냐고 묻는다면, 팁이라고 하면서 점원에게 주고 가는 리치 코스프레를 해보려고 한다. 팁 문화가 없는 곳에선 어떤 반응이 나오려나 생각만 해도 흥미롭다. 항상 변화를 주고 대체품을 생각하는 일이 이렇게 즐겁다. 






퇴근길에 장 보러 가는 날 챙기는 장보기 세트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멨던 어깨가 아프고, 전철에서 가방을 내려놓으면 '쿠궁'하고 지구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하나라도 덜 가지고 나오면 불안했다. 몸이 힘들어도 정신은 평화로워야 한다며 합리화를 했다. 


그때의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 정확히 어떤 물건이 나에게 필요한 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일단 다 가져와본 것이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그런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자신도 없었다. 


당신이 지금 당장 가방을 탈탈 털어서 텅 빈 가방을 내일 들고 가길 바라는 게 아니다. 가방 없이 양 손에 주렁주렁 물건을 걸고 다니는 게 멋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만 삶에 들일 수 있는 분별력에 대한 이야기다. 0에 수렴할 만큼 비우자는 게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것만을 남겨두고 살자. 그렇게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바란다. 내일은 덜 불안하고 더 확신 있는 삶에 가까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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