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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Aug 01. 2023

30일간 에어컨 없이 살기

나는 한 마리의 딤섬이다

'여름이니 열사병 조심하세요!' 마치 겨울에 감기 조심하라는 말처럼 열사병 조심하라는 말이 이곳에서는 흔한 계절 인사다. 실내에서도 열사병에 걸린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요즘 심심찮게 들려온다. 다양한 나라의 여름을 경험하며 느낀 바로는, 한국은 프라이팬 위의 계란프라이, 일본은 찜기 속 물만두, 호주는 사막 위 알로에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일본에 살고 있다. 


우리 집에 에어컨이 생긴 것은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였다. 우리 집은 얼음도 안 나오는데 무려 에어컨도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에어컨은 거실에만 있었다. 에어컨을 살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 시절에 에어컨이 없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의 여름을 생각해 보면, 학교를 마치고 와서 유리잔에 얼음과 망고주스를 부어놓고 선풍기를 틀며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게 천국이었다. 커다란 수박을 반으로 갈라서 혼자 다 먹거나 너무너무 더우면 욕조에 찬물을 한가득 받아서 북극곰인 척을 하기도 했다. 늘 그렇게 여름을 났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에어컨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고, 밖에 잠깐만 나가도 녹아버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름의 전철은 너무 추웠고, 때로는 실내의 에어컨이 그 어떤 겨울보다 혹독한 추위를 선사했다. 마치 굳이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되는 조미료가 냉장고에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였다. 어딜 가나 에어컨의 덕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중간이 없는 삶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어른으로써의 혹독함을 경험했다. 


작년에는 재택근무를 하며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집에서 에어컨을 틀었다. 방이 작으니 살짝만 켜놔도, 일할 때도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24시간 뽀송뽀송하고 쾌적한 여름을 날 수 있다니 너무나 행복했다. 하지만 실외기는 너무나 시끄러웠고(믿기지 않겠지만 가끔 실외기가 재부팅되면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차가 나갈 때의 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온도가 안 맞으면 춥거나 더워서 짜증이 났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한껏 덥혀진 방의 온도와 습도가 감당이 안되었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지난겨울과 봄에 냉장고 없이 살기에 성공했고, 여름이니 냉장고를 키는 대신 다른 자극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냉장고 없이도 살았으니 에어컨 없이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주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한다. 






비가 오고 난 후의 정원은 그 어떤 때보다 운치 있다. 




선풍기는 나의 편


에어컨 없이 살기 위해 오랜만에 선풍기라는 문명을 집안에 들였다. 바로바로 발뮤다의 선풍기를 중고로 구매한 것이다. 요즘 선풍기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풍에 가깝고 바람이 부드럽다. 하지만 가격은 부드럽지 못하다. 나는 이 부드러운 듯 부드럽지 않은 선풍기를 옆에 끼고 산다. 문자 그대로 잘 때는 손을 살짝 뻗으면 선풍기를 쓰다듬을 수 있는 거리에 두고 지금도 내 옆에서 열일 중이다. 미팅이 있어서 모든 창문을 다 닫아야 할 때도 선풍기가 옆에 있으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에어컨 없이 살기, 그 첫 번째 단계는 여름이 덥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부채나 휴대용 선풍기 등 다양한 여름 액세서리가 난무하지만, 이제는 부채도 없이 그냥 묵묵히 가방을 메고 걸어 다닌다. 여름은 원래 덥고 땀이 나는 그런 계절이니까. 약간 수행하는 기분으로, 땀이 나면 나는 대로, 열사병이나 건강에 이상이 오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걷다가 그늘에 들어가거나 카페에 들른다. 그렇게 매주 지내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와있다. 어쩌면 내가 40도까지 올라가는 지역에 살지 않아서 이런 여유로운 소리를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울과 비슷한 정도까지는 기온이 올라간다. 거기에 습도 10% 를 살짝 첨가한. 


에어컨 없이 살기 챌린지를 시작한 초반에는 장마 기간이라 사실 에어컨 없이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니 매일 부담스러울 정도로 쨍쨍한 날씨가 계속되었고 조금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럴 때 더 의식적으로 하게 된 것은 찬물 샤워와 냉침. 냉침은 차가운 물에 오랜 시간 찻잎을 우려서 마시는 건데, 자기 전에 준비해 두고 자면 딱 오전에 마실 수 있다. 어느 날 낮에 갑자기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왜인가 봤더니 적당히 찬 음료를 마시면서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이 날 이후로 집에서든 밖에서든 의식적으로 수분 보충을 하려고 노력한다.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찬물로 샤워를 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게 오히려 일과 삶의 경계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낮엔 땀이 나면 나는 대로, 옆에 선풍기를 끼고 일한다. 너무 더울 땐 '나는 한 마리의 딤섬이다.'라는 주문을 외우곤 했는데, 이제는 더운 것도 적응이 돼서 덥다는 말도 잘 안 나온다. 무엇보다 곤란할 때는 '요즘 너무 덥죠?'로 시작되는 이야기. 적응돼서 별로 안 더운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고 사회생활이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반토막이 난 전기세


에어컨을 하루종일 틀고 살았을 때 3만 원 정도 나오던 전기세가, 이제는 절반인 1만 5천 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선풍기가 에어컨에 비하면 전기세가 10분의 1밖에 안 나온다는데. 절반밖에 안 줄어서 조금 실망이긴 하다(?). 하지만 집에 하루종일 있는 것치고는 그럭저럭 절약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전기세 만원 이하로 줄이기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꿈과 소망이자 목표이다.  






갑자기 준비 없이 강에서 수영을 할 수는 없지만, 강이나 계곡에 발을 잠깐 담그는 건 언제든 가능한 일이다. 






매일의 미묘한 변화를 즐기는 삶


해풍과 육풍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어렸을 때 졸면서 육지에서 바다로 불다가, 바다에서 육지로 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거 같긴 하다. 졸면서 들어서 낮이 육지에서 바다였나? 바다에서 육지였나? 아무튼 그런 게 있던 거 같은데, 정도로 밖에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게 되면 그만큼 창문을 열고 있는 시간도 길어지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 시간에는 어느 쪽에서 바람이 많이 부네, 오늘은 바람이 세네 약하네, 등 바람의 방향과 세기의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된다. 그리고 해풍과 육풍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니까 과학책에 쓰여있었겠지만, 실제로 매일 그걸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내일은 비가 올 것 같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휴먼 기상청이 따로 없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온도가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왠지 열기, 더위가 더 세게 느껴지면서 바람이 몰아치듯 불면 내일 비가 오나? 흐리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매일 미묘한 변화를 즐기는 것을 넘어서, 관심은 생물다양성과 지구온난화까지 이어졌다. 이전에 제인 구달 박사님의 다큐멘터리나 유튜브를 보면서 아주 얕은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주제들이다. 전철이나 실내 에어컨에 덜덜 떨고 있을 때는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더운지 어쩐지 알 길이 없었다. 창문을 열지 않을 때는 모기가 확연히 적어졌는지 어쩐지, 어떤 벌레가 더 많아졌는지 관심도 없었다. 어쩌면 이런 관심과 공부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 자만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에어컨 없는 삶은 계속된다


그렇지만 역시 너무 덥기때문에 30일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에어컨을 켰다!라는 결말을 기대했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고 나는 올해 한 번도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물론 에어컨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나 공간은 존재한다. 하지만 집에서 노트북 붙잡고 일하는 나에게, 에어컨은 역시 필요 없다고 느꼈다. 그 대신 주말에 옆동네 숲에 가서 산책을 하고, 강에 발을 담그고 책을 보기도 한다. 거짓말 같겠지만 한여름에 숲에 가면 정말 시원하고 강물은 얼음장같이 차갑다.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아서 먹지 않고, 커피는 무조건 뜨거운 걸 시키지만 집에서는 소다스트림으로 탄산수를 만들어 내내 마신다. 지금 내 몸에는 탄산이 흐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심플하고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그 답은 100년 전에 살던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을 만나보지 않았지만 여름에는 각자의 지혜를 활용해서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물론 그 시절에 소다스트림은 없었겠지만. 나는 이처럼 편리하진 않아도 덜 의존하는 삶이 자유롭다고 느낀다.






이끼 정원의 성지 순례를 한다면, 교토의 西方寺(苔寺)






暑さというどうやっても勝てるはずのない巨大な存在を敵認定するのでなく、味方認定する。

더위라는, 뭘 해도 이길 수가 없는 거대한 존재를 적으로 두기보다, 내 편으로 생각한다. 


「家に冷房なし」でも我慢せずに夏を乗り切る方法 (집에서 에어컨 없이도 참지 않고 여름을 이겨내는 방법) 중에서


이나가키 에미코 선생님은 말하셨지 더위를 내 편으로 두어라. 더위 속에서도 시원함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에어컨 없이, 심지어 선풍기조차 없이 여름을 지내시지만, 낮에는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일을 하신다고 써져 있어서 '조금 반칙인데...?'라고 생각했지만, 도심에 살고 계시니 그 점을 감안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10년 넘게 일본의 여름을 그렇게 나신 다고 하니 그저 존경할 따름이다.


여름은 지겨울 정도로 쨍쨍한 날씨가 이어지지만 그 덕분에 강은 더 파랗게, 멀리 있는 산은 더 푸르게 보인다. 여기저기 여름 축제가 열리고, 얼마 전에는 강에 등불을 흘려보내는 걸 한 시간 동안 멍 때리고 보기도 했고, 인생 첫 불꽃축제도 즐겼다. 그리고 사랑해 마지않는 수박을 무제한으로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계절도 바로 여름이다. 


여러분의 여름을 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분명 에어컨이 없어도, 휴대용 선풍기가 없어도 여름을 지낼 수 있었던 때의, 우리만의 여름 나기 꿀팁을 다시 기억해 보자. 무리해서 더위에 맞서 싸울 필요는 없지만, 여름은 적이 아니라 우리 편일 수도 있다. 에어컨을 키든 안키든, 무더위에 괴로운 여름이 아닌 여러분만의 즐거운 여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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