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함은 나의 몫
왜 사람들은 기부와 같이 좋은 일을 하고도 그 사실을 종종 숨기려고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엄청난 액수를 기부한 것도 아니면서, 쓰레기 줍기를 하며 멋대로 감정이입을 하게 된 것이다. 나도 멋있게 '플로깅'이라는 신조어를 붙이고 싶었지만, 조깅을 하진 않았기에 그냥 플로, 아니 소박하게 쓰레기 줍기만 한 걸로.
쓰레기 줍기의 계기가 된 건 올해 예정된 이사였다. 이곳에서는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넓은 대자연을 닮아 넓은 마음을 가진, 이 마을의 주민들에게 1년 동안 감사했다는 마음을 담아, 은혜 갚은 '까마귀'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물론 그전부터 강가의 길을 걸어 다니며 가끔 보이는 쓰레기들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한 것도 있다. 그렇게 나는 까마귀처럼 쓰레기를 먹어치우진 않았고, 주워 담기 시작했다. 우린 이걸 '쓰레기 헌터'라고 부르기로 약속했어요.
쓰레기 헌터 활동은 생각보다 창피했다. 지나가면서 동네 주민들을 몇 번이고 마주치는데, 그럴 때마다 마치 내가 착한 사람이고 환경을 위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누군가가 지나가면 쓰레기 집게를 슬쩍 뒤로 숨기기도 했다. 쓰레기 집게만 펼치면 내성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탓에,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는 '쓰레기를 줍는 것은 아주 쿨한 것이다'라는 주문을 속으로 외우며 밖을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쓰레기 줍기의 귀갓길에 동네 가게 아저씨로부터 '오하요'라는 아침 인사라도 듣는 날에는, 플래시가 고장 난 플래시맨처럼 약간 움츠린 채로 집에 들어가곤 했다.
매일 일상적으로 쓰레기 헌터가 되기 위해, 나는 걷기와 겸사겸사를 중시했다. 장 보러 갈 때, 병원 갈 때, 자전거를 집에 두고 걸어가면서 쓰레기를 주웠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걸어가는 길에 줍고 돌아올 땐 그냥 오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일정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까마귀의 눈으로 쓰레기가 어디 있는지 스캔을 하고 다녔다. 그리고 며칠 뒤에 가면 놀랍게도 대부분의 쓰레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럼 포켓몬을 수집하는 마음으로 얼른 가서 줍는다.
쓰레기 줍기의 좋은 점은, 의도치 않게 생긴 비닐봉지를 쓰레기 줍기용 봉투로 활용하여, 죄책감을 덜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 비닐봉지가 일상적으로 여기저기서 쓰이는 일본이기에, 내가 필사적으로 가방을 갖고 다니며 비닐봉지의 발생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는 때가 있다. 그런 비닐봉지들을 모아놨다가 외출할 때 필수템으로 한 장씩 챙기고, 접이식 집게도 챙겨두면, 쓰레기가 있을 때나 귀갓길처럼 언제든지 쓰레기 헌터 활동을 개시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장점이 있다고 해도 나의 비닐봉지를 받지 않으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부가적인 장점은 걷기 운동, 일광욕 가능, 그리고 원한다면 주위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나 착한 사람이라는 점을 어필할 수 있다.
당연히 환경에도 이롭다. 해변에 파도와 함께 올라오는 쓰레기의 여정과도 관련이 있다. 길가의 쓰레기들은 바람에 날려 강가로 흘러가게 되고, 그 쓰레기는 강에서 바다로 흘러가 마치 세탁기 속 빨래와 같이 부러지고 산산조각이 난 채로, 파도를 타고 육지로 다시 올라온다. 차라리 쓰레기가 버려졌을 때의 원상태 그대로 올라오면 다행이지만, 애매하게 조각이 나거나, '마이크로 플라스틱'과 같이 아주 미세한 크기로 조각이 난다면, 쓰레기를 줍는 플래시맨이 있어도 다 깨끗하게 청소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쓰레기가 육지에서 버려져 다시 육지로 돌아오기 전에, 주워서 올바른 방법으로 쓰레기가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쓰레기를 주으면서 온화한 미소보다는 약간의 분노를 머금은 채로 아스팔트 길에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걸어 다닌다. 처음에는 다들 의도치 않게 쓰레기를 길에 떨어뜨린 거겠지, 그러니 걷다가 가끔 한 번씩 주으면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10m에 하나씩 담배꽁초가 있었고 마치 그걸 줍는 나의 모습은 미술 작품인 '이삭 줍는 여인들'이었다. 하루는 맥도널드에서 세트 메뉴를 사서 강가에서 먹은 뒤 그대로 그 자리에 봉투로 묶어 두고 간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적응돼서 '맛있었겠네' 라며 아무렇지 않게 줍고, 어떤 상황에서 버려진 쓰레기일까 상상을 하며 줍기도 한다.
몇 년 전, 일본인 친구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방 속에 쓰레기봉투를 항상 들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와본 적이 없는 곳이기에 쓰레기통을 못 찾아서 쓰레기를 못 버리면 곤란하니까 가져왔다는 말에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내가 매일 줍는 쓰레기들은 누군가가 의도한 걸 수도, 의도치 않게 그곳에 떨어뜨리고 간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일본인 친구처럼, 여행 갔을 때 쓰레기를 담을 봉투를 따로 갖고 다니거나, 일회용품을 재사용 가능한 아이템으로 대체하려는 노력만으로도 그 의도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어느 날 쓰레기를 줍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쓰레기 줍기에 진심인가? 그 이유는, 대단히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려는 것도, 엄청나게 착한 사람이라는 어필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생각만 하고 있던 걸 매일 밖에서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러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의 쓰레기 헌터 활동을 우연히 보고, 담배꽁초를 더 이상 길에 버리지 않게 되고, 10m에 하나 있던 담배꽁초가 30m에 한 개 꼴로 줄어든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호주에 살았을 때 배운 것은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뿐만이 아니다. 문을 열어주고, 짐을 들어주고, 홈리스에게 빵 하나라도 나의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처럼, 내가 여력이 있다면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거액을 기부하지도 않았고, 따로 봉사 활동을 가지도 않지만, 내 방식대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이 동네와 지구를 도와주고 있다고 믿는다.
쓰레기를 줍지 않아도, 쓰레기를 길에 버리지 않는 것,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봉투에서 쓰레기가 튀어나오지 않게 잘 묶어서 버리는 것만으로도, 지구에 큰 도움이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완벽할 순 없으니, 오늘도 죄책감 없이 즐겁게 지속 가능한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