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부터 바빴다. 사촌 동생의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며칠 전부터 심상치 않던 천장에서 물이 샜다.
응? 남편도 나도 너무 당황스러웠다. 남편은 어머니 가게 일을 도와드리러 가야 했기에 `여보 물 샌다! 집주인한테 연락 좀 해줘`라고 외치고는 쌩하니 나가버렸다. 시간은 오전 8시 오늘 해결해야 할 일이 많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집주인과 관리사무소에 연락하기 전 급하게 집을 정리해야 했다. 일단 물이 고인 천장은 안방과 거실이니까 그곳을 중점으로 후다닥 청소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채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끊었던 영상을 틀어주며 바쁘게 움직였다. 얼추 청소를 마치고 9시쯤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니 엄청 귀찮은 목소리로 지금은 담당자가 없으니 다시 연락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가 종료됐다.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평소 배달 전화도 잘하지 못하는 편) 집주인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재작년에 비가 샌 적이 있어 이번에도 그 정도겠거니 했는데 천장에서 물이 흘렀다 설명하니 시집간 딸이 돌아오는 날이라 오늘 늦게나 방문 가능하다고 한다. 나만 마음이 급하다 나만! 배고프다는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선 긋기, 스티커 북 놀이를 잠깐 해주고 정신 차리니 11시.
관리실에서 2시간째 연락이 없어 다시 전화했다. 12시~1시 사이에 방문하겠단 답변을 받고 부랴부랴 집 앞 상가 미용실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무서워 죽겠다고 우는 아이를 사장님과 계시던 손님들이 다 같이 둥가둥가 달래서 겨우 자르고 후다닥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니 관리소 직원분이 뒤따라 타신다. 나이스 타이밍. 집에 들어와 천장 상태를 보시더니 윗집 보일러가 터진 것 같다며 함께 위층에 올라가 보잔 얘기를하는 도중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와 또 나이스 타이밍. 남편이 직원분과 윗집에 올라갔다가 잠시 후 윗집 사람과 함께 내려와 천장 상태를 살폈다. 설마설마하시면서 이걸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냐며 싫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금방 업체를 불러 확인하고 연락해주시겠다며 남편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돌아가셨다.
"여보, 맨날 천장 벽지 새로 해달라더니 해결됐네?" "그러네? 우린 진짜 운도 좋다"라며 헤실대다가 미용실 예약 시간이 가까워진 나는 남편에게 아이랑 씻고 옷만 입혀달라고 요청한 뒤 후다닥 길을 나섰다. 조금 전에 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걸린 담당 쌤은 숱 없이 가라앉은 내 머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고데기로 아래쪽에 강한 C컬을 넣어가며 미역 머리를 만들어놨다.
하…. 내 25,000원, 내 시간이여…. 기존 디자이너 그만뒀다 할 때 다른 미용실로 갔어야 했는데 오늘도 실패다. 착잡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서니 대충 입고 가겠다던 남편이 흰 셔츠에 정장 바지 코트까지 입고 아이의 옷까지 깔끔하게 입혀놓은 게 아닌가 흔치 않은 상황에는 큰 칭찬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야! 우리 애기 너무 예뻐 남편이 다 입힌 거야? (그저 내가 골라둔 옷을 입혔다) 너무 귀여워! 오빠 이렇게 입혀 놓으니까 연애할 때 생각난다. 원래 잘생겼는데 오늘 더 잘생겼어. (윙크)라며 꼴값 발언을 한참 날려주니 슬며시 올라가는 남편의 입꼬리가 마음에 든다.
잠시 후 울린 전화벨에 내 얼굴이 붉어져 버렸지만….
아주버님과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고 있던 남편의 헤드셋 마이크가 켜져 있어 게임 도중 내 꼴값에 공격당한 아주버님이 마이크를 꺼달라며 전화하셨다.
그래 김지선 평범한 적이 없지. 하지 않던 칭찬은 왜 해서 세상 창피해지고 난리다.
남편도 머쓱한지 나에게 말을 전하진 않고 후다닥 마이크를 끈다. 창피하긴 한데 상황도 어이가 없어 눈물 섞인 웃음이 났다. 아니 근데 잠시 집을 비웠다고 물 새는 곳에 임시방편으로 놓아둔 세숫대야에 물이 한가득 차 있다.
`오빠 이거 왜 이래?`라고 물으니 갑자기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며 고여있던 물이 흘러 내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윗집 아저씨와 통화한 내용을 얘기해주는데 그 표정과 말투가 너무 급하고 웃겨서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었다.
"아저씨 위에 지금 공사하세요?" "나 아무것도 안 하는데?" "지금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요!?" "아니, 나 그래서 세탁기도 안 돌리는데!"
남편이 흉내 내는 자신의 놀란 목소리와 아저씨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해서 윙윙 거리며 나를 웃긴다.
글로 다시 적어보니 아무 일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 오늘 꽤 많이 웃고 싫은 소리도 없었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볼 때도 참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그 외에도 일상에서 남편과의 티격태격 없는 평범한 대화가 나를 참 많이 웃게 한다는 걸 깨닫는다. 밉다 밉다 해도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함께'가 즐겁다. 좀 더 아껴줘야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이번 주 주제 덕분에 남편이 훨씬 소중해졌다.